손곡(蓀谷) 이달(李達)
2017. 8. 18. 16:39ㆍ한시
손곡(蓀谷) 이달(李達)
손곡 이달의 시선 몇 수 (1) 산사(山寺) - 불일암(佛日庵) 인운(因雲)스님에게 寺 在 白 雲 中 (사재백운중) 흰구름 속에 절이 있네 白 雲 僧 不 掃 (백운승불소) 스님은 흰 구름을 쓸지 않네 客 來 門 始 開 (객래문시개) 손님이 찾아와서 비로소 문이 열리니 萬 壑 松 花 老 (만학송화로) 온산의 송화꽃이 쇠어 버렸네. (해설) 속세와 떨어져 구름 속에 묻힌 절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문을 닫은 채 쓸지도 않는다. 다만 손님이 와 비로서 문을 여니 어느덧 산은 송홧가루가 날린다는 표현은 한 폭의 동양화 같기도 하지만 세월을 초월하여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스님의 마음을 잘 표현한 詩이다. 나그네가 문을 두드림으로써 선경(仙景)의 이미지가 깨어진다. 구름 속에 파묻힌, 俗世와 멀리 떨어진 절은 평소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문을 닫은 채 길도 쓸지 않는데, 쓸리는 것이 낙엽이 아니라 구름. 손님이 와서 비로소 문을 열어 보니 어느 듯 온 산에 松花로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채 自然과 함께 지내는 경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글이다. (2) 제총요(祭塚謠) - 제사를 끝내고 白犬前行黃犬隨 (백견전행황견수) 흰둥이가 앞서고 누렁이는 따라가는데 野田草際塚?? (야전초제총류류) 들밭머리 풀 섶에는 무덤이 늘어서 있네. 老翁祭罷田間道 (노옹제파전간도) 늙은이가 제사를 끝내고 밭 사이 길로 들어서자, 日暮醉歸扶小兒 (일모취귀부소아) 해 저물어 취해 돌아오는 길을 어린 아이가 부축하네. (해설) 손곡(蓀谷)은 청아한 시편들을 많이 남겼다 그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작품 중 한 시골 늙은이가 어린 아이와 더불어 밭머리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 작품 제총요(祭塚謠)이다. 노인과 어린 아이가 어떤 사이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조손간(祖孫間)으로 짐작된다. 무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노인의 아들, 그러니까 아이의 아버지일 것만 같다. 당시 임짐왜란(壬辰倭亂)으로 말미암아 농촌의 젊은이들은 징집되어 얼마나 많이 목숨을 잃었을 것인가. 그래서 마을엔 노인과 아녀자들뿐 젊은 사람은 없다. 죽은 아들의 기일을 맞아 노인은 어린 손자를 데리고 묘를 찾았으리라. 무덤 앞에 쪼그려 앉아 어린 손자를 바라다본 노인은 세상을 원망하며 한 잔 두 잔 기울인 술에 그만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비틀거리면서 밭 사이 길을 들어서는 모습이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앞서 가는 두 마리의 무심한 개.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3) 예맥요(刈麥謠) 보리 베는 노래 田家少婦無夜食 (전가소부무야식) 시골집 젊은 아낙이 저녁거리가 없어서 雨中刈麥林中歸 (우중예맥림중귀) 빗속에 보리를 베어 수풀 속을 지나 돌아오네. 生薪帶濕煙不起 (생신대습연불기) 생섶은 습기 머금어 불도 붙지 않고 入門兒女啼牽衣 (입문아녀제견의) 문에 들어서니 어린 딸은 옷을 끌며 우는구나. (해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저녁에 먹을거리가 떨어졌다. 젊은 아낙은 빗속에 들로 나가서 보리를 베어 집으로 돌아온다. 어서 보리밥이라도 지어서 자식들 끼니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땔나무도 습기를 먹어서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게다가 어린 딸은 어머니 옷을 붙잡고 울기까지 한다. 비와 습기에 젖은 땔나무 등의 소재들은 그 당시 백성들의 처량한 삶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손곡(蓀谷) 이달이 동산역(洞山驛)이라는 곳을 지나며 지었다고 한다. 이달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비참하게 사는 민초들의 모습을 보고 그 정황을 곡진하게 그린 시를 여러 수 남겼는데,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이다 (4) 화학(畵鶴) 그림 속의 학 獨鶴望遙空 (독학망요공) 학 한 마리 먼 하늘 바라보며 夜寒擧一足 (야한거일족) 밤도 추운데 다리 하나 들고 있구나. 西風苦竹叢 (서풍고죽총) 서녘 바람은 대나무 숲을 괴롭히고 滿身秋露滴 (만신추로적) 온몸을 가을 이슬이 적셨구나. (해설)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슬픔, 모순적 현실을 차가운 밤으로 비유한 글은 자신을 둘러싼 짙은 어둠과, 발이 시린 추위 속에서도 학은 이슬로 제 몸을 씻으며 먼 하늘을 응시(요공 遙空)하고 있다. 그처럼 학이 어떤 현실의 질곡과 간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원대한 기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대숲을 건너온 투명한 이슬, 이 가을밤 그토록 해맑은 정신이 있어 처참한 현실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 박조요(撲棗謠) 대추따는 노래 隣家小兒來撲棗 (린가소아래박조) 이웃집 꼬마가 대추 따러왔는데 老翁出門驅小兒 (노옹출문구소아) 늙은이 문 나서며 꼬마를 쫓는구나. 小兒還向老翁道 (소아환향노옹도) 꼬마 외려 늙은이 향해 소리 지른다. 不及明年棗熟時 (부급명년조숙시) 내년 대추 익을 때는 살지도 못할걸요. (해설) 파란하늘 아래 빨갛게 대추가 익어가는 농촌의 가을 풍경을 소묘한 시이다. 이웃집 대추가 먹고 싶어 서리를 하러 온 아이를 쪼기 위해 작대기를 들고 나서는 늙은이가 있다. 서슬에 놀라 달아나던 꼬마 녀석도 약이 올랐다. 달아나다말고 홱 돌아서더니 소리를 지른다. 그래봐야 오래살지 못할거야. 내년에는 마음놓고 대추를 따먹을 수 있을거라는 심정... (6) 습수요(拾穗謠) 이삭줍는 노래 田間拾穗村童語 (전간습수촌동어)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의 말이 盡日東西不滿筐 (진일동서불만광) 하루 종일 동서로 다녀도 바구니가 안 찬다네. 今歲刈禾人亦巧 (금세예화인역교)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도 교묘해져서 盡收遺穗上官倉 (진수유수상관창)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관가 창고에 바쳤다네. (해설) 당시 농촌의 수탈당하는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농민의 뼈아픈 아픔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관리들의 수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이 시다.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들은 이삭줍기마저 어려워 바구니가 차지 않는다는 것은 관가의 수탈이 혹심하여 농민들의 마음까지도 빼앗아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7) 이가원(移家怨) 이사가는 도중에 老翁負鼎林間去 (로옹부정림간거) 영감은 솥을 지고 숲으로 사라졌는데, 老婦携兒不得隨 (노부휴아부득수) 할미는 아이를 끌고 따라가지를 못하는구나. 逢人却說移家苦 (봉인각설이가고) 사람들 만날 때마다 집 떠난 괴로움을 하소연하는데, 六載從軍父子離 (육재종군부자리) 여섯 해 동안 종군하노라 애비, 자식마저 헤어졌다네. (해설) 무거운 부역으로 인해 민중들이 제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유랑하는 괴로운 모습을 그리고 있는 시이다. 허균은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시를 보게 한다면,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깜짝 놀라서 깨달을 것이다. 그들이 병들어 파리해진 백성들을 살릴 수 있도록 훌륭한 정치를 베푼다면, 백성들을 감화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니, 어찌 이것이 작은 일이겠는가? 글을 지으면서도 세상의 가르침에 벗어난다면, 이 또한 헛되게 글을 지을 뿐이게 된다. 이러한 글들을 짓는 거스장님이 글을 읽거나 공교롭게 분간을 하는 것보다 어찌 현명하지 않겠는가?" (8) 도망(悼亡) 죽은 아내를 애도하며 羅?香盡鏡生塵 (나위향진경생진) 깁 방장엔 향(香)내 사라지고 거울엔 먼지 가득한데 門掩桃花寂寞春 (문엄도화적막춘) 문은 닫히고 복사꽃 피어나 봄은 더욱 쓸쓸하구나 依舊小樓明月在 (의구소루명월재) 작은 누각(樓閣)엔 옛날처럼 달이 밝은데 不知誰是捲簾人 (부지수시권렴인) 누가 있어 저 주렴(珠簾) 걷을 것인고 (해설) 손곡(蓀谷)이 자신(自身)의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시(詩)로서 소동파(蘇東坡 : 1036~1101)의 시어(詩語)를 본받아 지은 작품(作品)인데, 교산 허균(蛟山 許筠)은『학산초담(鶴山憔談)』에서 “시(詩)가 너무 아름답고 정(情)을 끌기에 옛 사람의 말을 빌어다 쓴 것도 생각지 못하였다.”고 평(評)을 하기도 했다. (9) 선산도중(善山道中) 선산 가는 길 西風吹葉 葉聲乾 (서풍취엽 엽성건) 가을바람 불어와 잎새마다 마른 소리 長路悠悠 厭馬鞍 (장로유유 염마안) 먼길은 아득하여 말안장도 싫증나네 數口在京 家食窘 (수구재경 가식군) 두어식구 서울에선 먹을것 없을테고 一身多病 旅遊難 (일신다병 여유난) 이 한 몸 병이 많아 여행길도 어렵구나 (10) 영화 1 (詠 畵. 一) 그림을 보며 1. 積雪滿山逕 (적설만산경) 산길 가득 눈이 쌓이고 蕭蕭林葉飛 (소소림엽추) 숲에는 낙엽이 흩날리네 渠家在何處 (거가재하처) 저 사람 집은 어디 있는지 日暮擔焦歸 (일모담초귀) 날 저무는데 나뭇짐 지고 돌아가네 (11) 영화 2 (詠 畵 · 二) 그림을 보며 2. 封着錦囊去 (봉착금낭거) 비단 주머니 차고 童子隨山翁 (동자수산옹) 동자가 산 노인을 따라 나서네 微?起林葉 (미양기림엽) 수풀에서 서늘한 바람 일어 滿山風景中 (만산풍경중) 온 산 풍경이 서늘해라 (12) 영화 3(詠 畵 · 三) 그림을 보며 3. 江樹濃陰合 (강수농음합) 강가 나무들 녹음이 우거졌는데 騎驢江上行 (기려강상행) 나귀를 타고 강길 따라 가네 魚舟向何處 (어주향하처) 고깃배는 어디로 가는지 日暮風浪生 (일모풍랑생) 날은 저문데 물결까지 이네 (13) 영화 4 (詠 畵 · 四) 그림을 보며 4. 新霜昨夜重 (신상작야중) 간밤에 서리 두텁게 내려 木落江水寒 (목락강수한) 나뭇잎 지는 강물 차갑기만 해라 舟人望秋色 (주인망추색) 뱃사공은 가을빛 바라보며 持楫下危灘 (지즙하위탄) 노 저어 여울을 내려가누나 (14) 제김열경사진첩 (題金悅卿寫眞帖) 김시습의 초상화에다 悅卿道高下 (열경도고하) 김시습의 도는 어디에나 있네 留影在禪林 (유영재선림) 남은 그림자 절간에도 있네 一片水中月 (일편수중월) 한 조각 물 속의 달 千秋鐘梵音 (천추종범음) 천년 쇠북 소리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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