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중국의 각종 차문화 ⑦‘뢰차(?茶)’ .삼도차(三道茶) ⑧‘다예’는 차(茶)가 주제로 이루어진 예술적 행위

2017. 8. 1. 17:07

.

 

 

중국의 각종 차문화 ⑦

 

장비 군대 전염병 격퇴한 양약(良藥) ‘뢰차’

 

▲ 토가족의 뢰차

 

 

7) 토가족(土家族) ‘뢰차(擂茶)’

 

토가족(土家族)은 호남, 호북, 사천 귀주 등과 호남의 무릉산(武陵山)1) 일대에 매우 많이 분포하여 살고 있으며, 천백 년 동안이나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그들의 전통적인 ‘차먹는 법〔吃茶法〕’을 지금까지 잘 보존해오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뢰차(擂茶)’를 마시는 것이다.

 

‘뢰차’는 ‘삼생탕(三生湯)’이라고도 한다. ‘삼생탕’이란 이름은 차나무에서 갓 따낸 신선한 생 찻잎과 생강, 그리고 생쌀을 원료로 하여 세 가지를 함께 섞어 빻아 갈은 후 물을 붓고 끓여서 만들어낸 탕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삼국(魏・蜀・吳)시대 때 장비가 병사를 이끌고 무릉의 호두산(壺頭山)2)을 공격한 적이 있었다. 마침 그때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무더운 여름인지라, 불행히도 현지에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있었고, 장비의 부하 장병 수백 명이 전염병으로 쓰러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비 자신도 전염병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이때 마을에 있는 어느 민간요법 한의사가 장비의 군대가 기율이 엄격하고 전혀 민폐를 끼치지 않고 있음을 보고 감복한 나머지 역병을 퇴치할 수 있는 비방의 ‘뢰차’를 장비에게 갖다 바쳤다.

이를 복용한 장비와 그의 병사들은 전염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전한다. 그 뒤로 ‘뢰차’는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하는 양약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현재 ‘토가족’이 마시는 ‘뢰차’는 고대의 그것과 비교할 때, 원료 배합 면에서 이미 커다란 차이를 보이며 변해왔다.

 

현재는 ‘뢰차’를 만들 때 통상 찻잎 외에도 볶아서 익힌 땅콩, 깨, 쌀 튀밥 등을 배합하여 넣는다. 그 외에도 또 생강, 식염, 후추 등을 넣기도 한다. 통상 차와 각종 식품 및 조미로 등을 특별히 제작된 도기로 만든 ‘뢰발(擂鉢)’3) 속에 넣고 단단한 나무재질의 연마(硏磨) 공이로 힘껏 돌려가며 각종 재료를 혼합하여 갈아서 골고루 섞이게 한 뒤, ‘뢰발’의 귀때기 모양으로 터진 쪽으로 기울여 차완에 쏟아 넣는다. 그리고 끓는 물을 부어 죽을 개듯이 수저로 가볍게 몇 번 휘저어주면 곧 ‘뢰차’가 완성된다.4)

사람이 많아서 대형 ‘뢰발’을 사용할 경우에는 끓는 물을 ‘뢰발’에 직접 붓고 개어서 곧바로 국자나 큰 숟가락을 이용해서 차완에 담기도 한다. 그 외, 일부 지방에서는 첨가식품을 빻거나 갈지 않은 채, 직접 그대로 차완에 넣어서 끓는 물에 우려마시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반드시 펄펄 끓고 있는 물을 곧 바로 부어서 우려야 한다.

 

‘토가족’들은 모두 ‘뢰차’를 마시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토가족의 일반사람들은 낮에 육체노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항상 식사 전에 먼저 ‘뢰차’ 몇 잔을 마시며, 이를 생활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심지어 어떤 노인들은 하루라도 ‘뢰차’를 마시지 않으면 곧 온몸이 무기력해짐은 물론 정신까지 멍해짐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뢰차’ 마시기를 밥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에 친지나 친구들이 찾아올 경우에는 ‘뢰차’만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다과 또는 다식도 몇 접시 함께 내어와 대접하는데, 다과나 다식은 주로 담담하고 향긋하면서 바삭한 식품들이다. 예를 들어 땅콩, 포테이토칩, 해바라기씨, 호박씨, 쌀 튀밥 강정 및 생선 튀김조각 등을 내어와 ‘뢰차’를 마시는 정취와 분위를 한결 돋운다.

 

 

8) 백족(白族)의 삼도차(三道茶)

 

백족(白族)은 중국 서남지구에 흩어져 살지만, 주로 풍경이 수려하기로 유명한 운남의 대리(大理)지역에 많이 집중된 편이다. 백족은 손님맞이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대개 명절이나 회갑, 남녀 혼인 또는 스승께 배움을 청하는 등의 경사스러운 날, 혹은 친지나 친구, 손님이 방문할 때, 바로 그 유명한 ‘일고(一苦)’, ‘이첨(二甛)’, ‘삼회미(三回味)’의 삼도차(三道茶)를 만들어 대접한다.

 

삼도차(三道茶)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그 기원이 당나라(618~907년) 초기에서 비롯되어 꾸준히 발전해오다가 남조국(南詔國)5) 중・후기 때에 이르러 불교가 운남 대리(大理)에서 흥기하자 불교사찰에서 승려들이 좌선할 때 많이 애호하던 차이기도 하다. 송나라와 원나라를 거쳐 명・청에 이르자 ‘삼도차’는 백족 일반가정에까지 널리 보급되어 모두 차를 구워〔烤茶〕 마시기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첨차(甛茶)를 손님에게 접대하는 등, 명절이나 혼인, 회갑 등의 집안 경사에는 어김없이 삼도차(三道茶)를 만들어 즐겨 마시게 되었다.

 

‘삼도차’는 세 단계 과정을 거쳐 만드는데, 매 단계마다 차를 만드는 방법과 쓰이는 원료가 모두 다르다.

 

첫 단계인 ‘제일도차(第一道茶)’는 순수하게 쓴 차란 뜻의 ‘청고지차(淸苦之茶)’로도 부른다.

여기에는 ‘사람의 도리’를 일깨워주려는 깊은 교육적 철리가 숨겨져 있다. “자신의 사업(또는 창업)을 일으키려면 먼저 쓴맛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즉, 먼저 숱한 고생을 해봐야 자신의 사업을 일으키고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차를 만들 때는 먼저 물을 끓인다. 그 다음 차를 만드는 사람은 ‘사관(砂罐)’6)을 약한 불 위에 올려놓고 달군다. ‘사관’이 달구어지면, 곧 그 안에 적당한 양의 찻잎을 통 안에 넣고 안에 넣은 찻잎이 골고루 열을 받을 수 있도록 ‘사관’을 계속 방향을 바꾸어 움직여준다.

찻잎이 골고루 열을 받으면서 안에서 ‘땅땅’하는 소리가 나고 찻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캐러멜(caramel) 향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미리 끓여놓은 물을 즉시 ‘사관’안에 따라 붓는다.

잠시 후 주인은 사관 속의 끓는 찻물을 차충(茶盅)7)에 기울여서 따라 붓고 ‘차충’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쳐 들고 손님께 올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일도(第一道)’의 차는 굽고 끓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색깔은 호박(琥珀)8)과 같고, 향은 진한 캐러멜향이 코를 찌를 듯이 진하여, 마시게 되면 그 맛이 무지하게 쓰고 떫다. 그래서 ‘쓴 차’란 뜻으로 ‘고차(苦茶)’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맛이 워낙 쓰기 때문에 통상 반잔만 채워서 한 번에 마셔버린다. 이렇게 해서 인생의 쓴 맛을 간접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그 다음 ‘제이도(第二道)’에서는 달콤한 인생을 맛볼 ‘제이도차’가 기다리고 있다.

 

‘제이도차(第二道茶)’는 달콤한 차란 뜻의 ‘첨차(甛茶)’라고도 한다.9)

손님이 제일도차를 마시고 나면 주인은 다시 ‘제일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사관’ 안에 차를 넣고 굽고 끓이는데, 이때는 앞에서와 다르게 약간의 흑설탕을 첨가하여 넣는다. 차가 다 끓여지면 주인은 ‘제일도’에서와는 다르게 첨차를 손님의 잔에 8부정도 가득 따라준다. 이렇게 완성된 ‘제이도차’는 달콤하고 향긋하여 누구나 마시기에 좋다. 이 차의 함의는 “사람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인생의 쓴맛을 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달콤한 인생이 찾아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교훈을 일깨워주는 것이라 하겠다.

 

제삼도차(第三道茶)는 맛이 돌아오는 차란 뜻의 ‘회미차(回味茶)’로도 부른다.

차를 달이는 방법은 비록 다르긴 해도, 대동소이하다. 단지 차충(茶盅) 속에 이미 바꾸어 준비해 놓은 적당량의 꿀과 약간의 볶은 튀밥, 약간의 산초열매, 호두 한 움큼 등 원재료를 넣고 차탕을 6내지 7부정도 채우는 정도이다.

 

제삼도차를 마실 때는 일반적으로 차탕 속의 첨가물들이 고르게 섞이도록 찻그릇을 흔들어가며, 또 한편으로는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식기 전에 마신다.

 

삼도차는 단맛・신맛・쓴맛・매운맛 등의 온갖 맛이 다 갖추어져 있어 돌아오는 맛이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제삼도의 ‘회미차(回味茶)’가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는 또 다른 교훈은 “이렇게 회미차의 무궁무진한 온갖 맛처럼 모든 일에서 좋은 결과가 많이 돌아오길〔回味〕 바란다면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이치를 잘 기억하라는 것이다.

 

※ 기타 소수민족의 차는 아래 도표를 참고바람

 

 

 

주) -------

1) 무릉산(武陵山): 호남성 안의 서북쪽에 위치한 산으로써 부근의 유명한 도시로는 장가계(張家界)시가 있다.

2)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상덕(常德) 경내.

3) 뢰발(擂鉢): 차와 함께 여러 가지 식물이나 조미료를 넣어 빻는 것으로 귀때기 사발 모양으로 생긴 우리나라의 가정용 작은 ‘절구’같은 것이다.

4) 우리나라에서 ‘미수가루’를 타서 먹는 원리와 같다. 또는 몸에 좋은 수 십 가지의 곡식을 빻고 갈아서 만든 건강식품인 선식(禪食)과 매우 흡사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5) 당나라 때의 운남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만족(蠻族) 지방정권으로 남조왕 ‘피라각(皮邏閣)’이 흩어져 있던 각 부족을 통일하여 태화성(太和城:현 대리시 남쪽)에 도읍하고 남조국(南詔國)을 건국하였다. 당 현종 때 운남왕에 책봉되었고, 그 후에도 강역을 확대하여 운남 사천 및 귀주 일대를 점령하였었다. 당과 티베트의 투뽀어(土蕃)왕조에 위협적 존재였다.

6) 사관(砂罐): 모래흙으로 빚은 깡통 모양의 작은 통.

7) 차충(茶盅): 차 그릇. 다완(茶碗)과 같은 말이다.

8) 호박(琥珀): 지질 시대의 수지(樹脂) 따위가 땅 속에서 수소・산소・탄소 등과 화합하여 돌처럼 된 광물(황색으로 거의 투명하며 광택이 있어 장식용으로 씀)

9) 첨차(甛茶): 중국어로 ‘티옌차(tián chá)’라고 부르며, 첨(甛)이란 혀가 달콤하다는 뜻으로 감(甘)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오룡차를 마시고 나면, 은은하게 입안에 단맛이 돌아오는 것을 ‘회감(回甘)’ 또는 ‘회첨(回甛)’한다고 한다.

 

 

 

 

중국의 각종 차문화 ⑧

 

‘다예’는 차(茶)가 주제로 이루어진 예술적 행위

 

 

 

5. 중국의 다예(茶藝)와 다도(茶道)의 개념

 

십 수 년 동안,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의 여러 대학과 차문화 단체들을 돌아다니면서 차학(茶學)을 강의하다 보니, 초심자들로부터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바로 “‘다도(茶道)’와 ‘다예(茶藝)’가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필자는 20여 년 넘게 고민해왔다. 반면에 또 필자 나름대로 그 개념을 정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하였지만, 한 번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여 명쾌하게 정의를 내려 준 적은 없었다. 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으면서도 개념을 정리하지 못해서 늘 안타까워하다가, 지금에 이르러 ‘다예’와 ‘다도’에 대한 대만과 중국의 몇몇 차학 전문가들의 견해와 각각의 주장을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대만 지이예(季野) 씨의 견해

 

대만의 지이예 씨는 “다예는 차(茶)를 주체로 하여 예술을 생활에 용해(溶解)시킴으로써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일종의 인문(人文)임을 주장하며, 그 목적은 생활에 있지 차에 있지 않다.”고 했다.

즉, 차를 주체로 하는 행다(行茶)의 예술적 행위가 일상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생활의 윤택함과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윤활유적 역할이 되는 것이 다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차가 주체가 되어 행해지는 다예이지만 그 모든 활동이 인간생활에 활력소가 되는 부수적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茶)를 주체로 하는 다예행위 그 자체가 주목적이 되어 인간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거나, 또는 사람이 자신의 일상을 제쳐놓고 다예의 행위에 속박되거나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대만 판쩡핑(范增平) 씨의 견해

 

대만의 판쩡핑 씨는 “다예는 과학과 인문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괄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가 말한 다예의 과학이란 ‘기예(技藝)’이며, 이는 차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잘 우려내야 한다는 뜻이다. 다예의 인문학적 측면은 ‘예술(藝術)’적 측면을 뜻하며, 과학적으로 잘 우려낸 한 잔의 차를 미묘(美妙)하게 음미하며 마시는 예술적 경지의 음차행위를 뜻한다. 대만 다예의 아름다움은 심령학적(心靈學的) 미(美)를 추구함에 있기 때문에 다예를 감상하고 즐긴다는 것은 바로 행다(行茶)의 전체 과정의 매 절차가 행해질 때마다 자아(自我)를 완전 몰입하여 그 속에 순간적으로 머무르며 심신이 일체되어 그 아름다움을 관조하며 무아지경에서 차를 음미하며 마신다는 것이다.2)

 

필자의 견해로는 판씨가 주장하는 전자의 과학적 부분은 ‘다예(茶藝)’이고, 후자의 인문학적 측면은 바로 다예를 통한 ‘다도(茶道)’를 의미한다고 본다.

 

(3) 대만 차이룽짱(蔡榮章) 씨의 견해

 

대만의 차이룽짱 씨는 “‘다예’란 음차의 예술적 측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단순히 해갈을 목적으로 차를 마시는 것을 ‘음차(飮茶 = 喝茶)’라고 하며, 섬세하게 차의 맛을 음미하며 마시는 행위를 ‘품명(品茗)’이라고 한다. 만약에 찻잎의 품질, 포다(泡茶)의 기예, 다구를 감상하고 즐기는 것, 차를 음미하고 마시기에 적절한 환경 및 인간 관계 등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고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면, 보다 폭 넓고 깊이 있는 다예(多藝)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3)

아울러 그는 차를 우리는 과정이 찻잎의 품질만을 완전히 발휘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을 뿐 아니라, 차를 우리는 그 모든 과정 자체가 바로 개성 있는 행다(行茶) 예술의 발전적 결과라고 여기고 있다.

 

차를 우리고 음미하며 마시는 과정은 반드시 전심(專心)으로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좋은 차를 우려낼 수 있고, 차의 색과 향기와 맛을 제대로 잘 우려냈을 때 비로소 차의 진정한 경계를 느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를 우려내는 정확한 단계와 과정이 필요하며, 이러한 과정이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차(茶)가 인간의 미적(美的)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으며, 차와 인간의 아름다운 주객의 관계를 표출해 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립된 차와 인간과의 관계는 더 나아가 인간의 수신(修身)과 양성(養性)은 물론 인륜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사교적 공능의 역할도 하게 된다.

 

(4) 중국 왕링(王玲) 교수의 견해

 

북경의 차문화 전문가인 왕링교수는 “다예와 다도 정신은 중국 차문화의 핵심이다. 우리들이 여기서 말한 ‘예(藝)’란 것은 제다(製茶), 팽다(烹茶), 품다(品茶) 등 차의 예술적 기교(藝茶之術)이다. 우리들이 여기서 말한 ‘도(道)’란 예다(藝茶)4)의 과정 중에서 관철된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5)

 

즉, 여기서 그가 말하는 ‘다예(茶藝)’란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마시는 보편적 차의 품질을 뛰어넘어 좀 더 정밀하고 섬세하게 만들어내는 기술, 차를 우려내는〔烹茶〕 일련의 절차와 그 과정을 좀 더 심미학적 차원에서 감상할 수 있는 우아하고 미적 감각을 발휘한 행다(行茶)의 기술, 그리고 차를 음미하며 마시는 품다(品茶) 과정에서 표출되는 일상의 차를 마시는 행위와 동작들을 한층 더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출해내는 기교적 행위나 방법 등이 모두 예술적 경지로까지 승화되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렇게 예술적 행위로 승화되어 완성된 ‘다예(茶藝)’의 각각의 모든 과정을 통해 심신을 수양하거나, 혹은 자신의 품성을 배양함은 물론 양생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 등,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정신으로 추구되고 관철될 때, 이것이 바로 ‘다도(茶道)’라는 것이다.

 

(5) 중국 띵원(丁文) 작가의 견해

 

섬서(陝西)의 작가 띵원(丁文)씨는 “다예(茶藝)는 제다(製茶), 팽다(烹茶), 음차(飮茶)의 기술을 가리키며, 그 기술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바로 한 분야의 예술을 이루게 된다. 다예(茶藝)는 바로 ‘다도(茶道)’를 완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조직 성분이다.”6)라고 말하였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북경의 왕령(王玲)교수의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이 거의 같은 견해로 보인다.

 

(6) 중국 꺼우단(寇丹) 씨의 견해

 

절강성 호주(湖州)의 차문화 전문가인 꺼우단 씨는 《농업고고(農業考古)》란 학술지에 발표한 <다예초론(茶藝初論)>이란 논고에서 각 가(家)의 학설을 종합하여 “다예도 광의적 의미와 협의적 의미로 분류하여 볼 수가 있다. 광의적(廣義的) 다예란 차엽의 생산, 제조, 경영, 음용의 방법과 차엽의 원리, 원칙을 탐구함으로써 물질과 정신이 모두 만족하도록 하는 학문이다. 협의적(狹義的) 의미의 다예는 어떻게 하면 차를 잘 우려낼 수 있을까와 어떻게 하면 차를 잘 음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예술적 행위이다.”7)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꺼우단 씨의 주장은 이제까지 위에서 언급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좀 색다른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즉, 꺼우 씨가 주장하는 ‘광의적 다예’란 차의 산업을 의미하며, ‘협의적 다예’는 위에서 줄곧 언급되어 온 ‘다예(茶藝)’의 범위 중에서 오직 ‘품명(品茗)’에만 국한된 다예(茶藝)를 의미한다. 그리고 오히려 ‘광의적 다예’에서 산업적 측면을 거론한 마지막 끝 부분에서 ‘물질과 정신’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가 언급한 ‘물질’은 차의 산업에 해당하고, ‘정신’은 바로 ‘다도’의 개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위에서 언급한 여섯 분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약간의 견해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귀결해 볼 수가 있다.

 

‘다예(茶藝)’란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드는 절차에서부터 차를 우리고, 음미하며 마시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전체과정이 섬세하고도 정교한 기술, 우아하고도 아름다운 품다(品茶)의 행위적 기교 등이 총망라되어 일상의 편리한 음차의 수준을 넘어서 과학적, 심미적, 예술적 경지로 승화된 일체의 차의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다도(茶道)’란 다예의 일체 모든 절차와 행위가 바탕이 되어, 그 속에서 심신(心身)의 수양과 양생(養生)의 도를 추구하는 정신이 하나로 집중되고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위에서 제일 처음 거론된 지이예 씨의 주장이다.

즉, “다예는 비록 차(茶)가 주체가 되어 이루어진 예술적 행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사람의 일상을 뛰어 넘어서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차를 바탕으로 한 ‘다예’가 인간의 일상생활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미게 하여 인간이 주체가 되어 다예를 객체로 활용하여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

1) 季野 《茶藝信箱》 98쪽. 臺灣茶與藝術雜誌社 출판.

2) 《臺灣茶文化論》 280쪽, 臺灣碧山岩出版公司 출판.

3) 蔡榮章 《現代茶藝》 202쪽, 臺灣中視文化事業股份有限公司 출판.

4) 예다(藝茶): 다예(茶藝)의 또 다른 표현이다.

5) 王玲,《中國茶文化》87쪽, 中國書店 출판.

6) 丁文, 《中國茶道》46쪽, 49쪽, 陝西旅遊出版社 출판.

7) 《茶藝初論》,《农业考古》1997年 4期.

 

 

박영환 | 중국 사천대학 객좌교수

 

 

/ 불교저널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