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해석>
①歲已新春又半 尙阻一候 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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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해가 벌써 바뀌고 새봄이 또 반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한 번 문후도 드리지 못하고 다만 그리워할 뿐입니다. ②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정사(政事)에 임하는 동정(動靖)이 편안하시리라 생각하니 우러러 위안이 되고 그립습니다. ③기하(記下:발신인)는 몸에 병이 든 것은 노쇠한 소치이니 민망함을 어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영남(嶺南)에서 치르는 과거(科擧)에는 많은 선비들이 병필(秉筆)의 소임(所任)을 바라는 것을 면치 못할 것 같습니다. ④한결같이 칭송받는 사람이 있으니 성주(星州)의 사인(士人) 이원호(李源祜)입니다. 곧 정언(正言) 이원조(李源祚)의 백씨(伯氏)인데, 그 명성(名聲)이 교남(嶠南)에서 매우 자자하니, 혹시라도 들어 알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⑤ 좋은 집안의 노유(老儒)로 실로 재주가 높은 것은 방안(榜眼 : 갑과(甲科)에 둘째로 급제(及第)한 사람)에 들 만하니 사적인 것이 아니라 이것은 공적인 것입니다. 보내 드리는 글은 초장(初場)과 종장(終場)의 의(義)입니다. ⑥ 서로 알아보는 방법은 본 읍의 예리(禮吏)에게 들으면 그의 자호(字號)를 알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지면(紙面)에 쓰겠습니까? ⑦ 기하(記下)에게는 긴박(緊迫)하고 간절(懇切)한 것이 없으니 특별히 유념하여 반드시 시행하셔서 당일 장원(壯元)으로 뽑아 주시길 더욱 소망합니다. ⑧ 나머지는 우선 예를 갖추지 못합니다. 신묘년(1831, 순조31) 2월 초7일 기하(記下) 성원묵(成原黙) 올림 |
<풀이>
1831년(순조31) 2월 7일 성원묵(成原黙)이 양산(梁山) 군수에게 보내는 청탁 서간이다.
새봄을 맞아 상대의 안부를 묻고, 영남(嶺南)에서 치르는 과거(科擧)에 상대가 시관(試官)으로 참여할 듯하기에, 성주(星州 )의 사인(士人) 이원호(李源祜)의 실명을 거론하며 잘 봐달라고 청탁했다.
그는 정언(正言) 이원조(李源祚)의 백씨(伯氏)로 한결같이 칭송받고 있으며, 그 성명이 영남에서 자자하고, 좋은 집안의 손꼽히는 노유(老儒) 실재(實才)로 방안(榜眼)에 들 만하니 부탁하는 것이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서로 알아보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쓰고 있으며, 본인에게는 긴박하고, 절실한 것이 없으니 특별히 유념하여 반드시 당일 장원(壯元)으로 뽑아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용어 및 지명>
사군(使君) : 임금의 명령(命令)을 받들고 나라 밖으로나 지방(地方)에 온 사신(使臣)의 경칭(敬稱).
외방의 관직에 나가 있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
옥서(玉署) : 홍문관(弘文館). 조선(朝鮮) 때, 삼사의 하나로 궁중(宮中)의 경서(經書), 사적, 문서(文書), 따위를
관리(管理)하고 임금의 자문(諮問)에 응(應)하였음.
초한(峭寒) : 살을 찌르는 듯한 추위.
병필지임(秉筆之任) : 사필(史筆)을 잡은 소임(所任)이라는 뜻으로, 예문관(藝文館)의 검열(檢閱)을 이르던 말
교남(嶠南) : 영남(嶺南).
방안(榜眼) : 갑과(甲科)에 둘째로 급제(及第)한 사람을 이르는 말.
성원묵(成原黙, 1785(정조 9)∼1865(고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계연(季淵). 노주(老柱)의 아들이다. 순조(純祖) 31년 (1831)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9위. 1829년(순조 29)에 왕세 자가 친림한 감시(柑試)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였고, 1831년의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모사도감(模寫都監)의 도청(都廳)을 지냈다. 1846년(헌종 12)에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에 대사성을 거쳐 1849년(철종 즉위년)에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1851년에 동지부사(冬至副使)로서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그뒤 공조판서·의정부우참 찬·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856년에는 예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이원호(李源祜, 1790~1859)
본관은 성주(星州), 호는 한고(寒皐), 부(父) 이형진(李亨鎭), 이원조(李源祚)의 형. 자(子) 이진상(李震相, 1818∼1886), 순조(純祖) 31년 (1831)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二 等) 17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