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쓰는 것과 서예와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가?
사람들은 글씨를 쓰는 것이 곧 서예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완전히 같은 종류의 것은아 니다. 간단히 말하면 글씨를 쓰는 것은 실용에 목적이 있는 것이고, 서예는 사람들에게 예술 을 감상하게 하는 것이다. 서예는 실용가치 이외에 많은 예술형식이 있다. "일정한 대상에 기탁하여 아름답고, 단정하고, 웅건하고, 깨끗하며, 용이나 호랑이가 위엄을 가지고 날며 움직이는 듯한 형세를 가중시킨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꿋꿋한 기개로 근본을 삼고 변화로 쓰임을 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사당에 들어가 귀신을 보는 듯 하게 하며, 곳간을 살핌에 밑바닥이 보이지 않게 하는 듯하여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것이다.
진(晉)나라 때 왕희지는 "글씨를 쓰려고 하는 자는 먼저 먹을 갈면서 정신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글씨의 자형을 미리 생각하여 크고 작은 획과 아래나 위로 향한 획과 평평하고 바른 획들을 움직여 맥이 서로 연결되게 구상한다. 이것은 뜻이 붓보다 먼저 있게 한 연후에 글씨를 쓰는 방법이다. 만약 평평하고 바른획이 마치 주판알 같이 위아래가 반듯하고 앞뒤가 고르면 글씨가 되지 않고, 단지 점과 선만 연결시켜 놓은 꼴이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글자와 서예와의 관계를 천명한 말로서 글씨 쓰는 것과 서예는 반드시 일치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글씨 쓰는 것과 서예는 각각 실용성과 예술성의 특징을 공유하고 둘다 한자(漢字)를 빌려 글씨를 쓰나 특성과 창조성이 다르다. 글자와 서예는 모두 미의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나, 다른 점은 미의 관점이다. 하나는 실용미를 추구하여 발전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예술미를 추구하여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 예술미의 일면은 먼저 한자의 조형과 규율을 흐트리지 않고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감정의 동태와 사상의 조화를 이루어 법(法)을 타파하여 의(意)를 얻게 한다. 그리고 자기의 감정을 펴내어 글자의 기세와 풍모로 하여금 예술미와 매력을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게 한다. 실용미의 일면도 비록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나 반드시 멋있고 힘있고 풍채있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실용적인 면만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대중적이어야 하고 한자를 쓸 때 상하가 반듯하고 앞뒤가 고르면서 좌우가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도 범위를 넘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글씨와 서예의 다른 점이면서 동시에 구별되는 점이기도 한 것이다.
작성일 : 13-08-20 11:26
전각이란? | |
글쓴이 : 학정서예원 조회 : 1,806 | 전각 [篆刻] 서예나 그림을 그린 후에는 자기 이름이나 호(號)를 쓰고 도장을 찍는다. 이 도장은 문인묵객(文人墨客) 스스로가 새기는 것이 통례이다.
예부터 중국에서는 인장이 쓰였는데, 가장 발달하였던 시기는 한대(漢代)였다. 11세기 송대(宋代)에 이르자 새로운 금석학(金石學)의 발달로 한나라의 인장이 부활하게 되었고, 15세기 명대(明代)에 이르러 새기기 쉽고 아름다운 석재(石材)의 발견으로, 이전에 상아를 쓸 때와 같이 장인(匠人)들에게 인장을 의뢰하지 않아도 쉽게 새길 수 있게 되어 문인(文人)들은 장인예(匠人藝)로서는 이룰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이루어놓았다. 수많은 문인들의 손을 거치는 동안, 전각은 시(詩)·서(書)·화(畵)와 병칭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초기의 창시자는 문팽(文彭)과 하진(何震)이며, 청대(淸代)에 이르면 정경(丁敬) 등의 한인(漢印) 연구로 더욱 새롭게 발전하였다. 그들은 출신지인 항저우[杭州]의 아명(雅名)을 따 '절파(浙派)'라는 세력을 이루기도 하였다. 청대는 전각의 흥륭기(興隆期)로, 등석여(鄧石如)·조지겸(趙之謙)과 같은 명인이 잇따라 나타났고, 청대 말에서 중화민국 초에 걸쳐 활약한 오창석(吳昌碩)은 구중국(舊中國) 전각의 마지막 대가였다.
한국의 전각역사는 인장이 사용되기 시작한 고려 때부터이다. 당시는 대부분 동인(銅印)·석인이었고, 모양도 4각형, 6각형, 원형이었다. 자체(字體)는 대부분 구첩전(九疊篆)이며 배자(配字)는 방사선식으로 되어 있어 원주를 향하여 머리를 두고 있다. 이같은 고려 전각의 유풍은 조선으로 계승되어 상서원(尙瑞院)에서는 구첩전과 소전체(小篆體)로 동인 ·철인 등을 만들었다. 역대 임금의 많은 어보(御寶)가 만들어졌으며, 서예 ·회화의 발달과 함께 문인 스스로가 전각하는 사인(私印)이 유행하였다. 미수(眉戒) 허목(許穆)은 한국 전각의 제1인자이며, 전각을 남긴 많은 사람 중에서 자기 스스로가 전각하였다고 믿어지는 문인문객은 정학교(丁學敎)·정대유(丁大有)·윤두서(尹斗緖)·오경석(吳慶錫)·이상적(李尙迪)·김정희(金正喜)·김명희(金命喜)·김상용(金尙容)·오세창(吳世昌) 등 20여 명을 손꼽을 수 있다. 재료는 대개 부드러운 납석계(蠟石系)의 돌을 사용하고 도구는 철필(鐵筆)이라는 양날의 손칼을 사용한다.각법의 종류는 양각과 음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양각은 주문인(朱文印)이라 하며 바탕 부분을 새겨내는 것으로 찍었을 때 붉은색의 글씨가 된다. 음각은 백문인(白文印)이라 하며 글씨부분을 새겨내는 것으로 찍었을 때 흰색의 글씨가 된다.
전각의 종류에는 성명을 새긴 성명인, 호를 새긴 아호인, 좋아하는 문구를 새긴 사구인(詞句印), 작품의 소장을 확인하기 위한 수장인(收藏印), 새·물고기 등 동물문양을 새긴 초형인(肖形印) 등이 있다. 성명인에는 백문인이, 아호인에는 주문인이 주로 쓰이며, 사구인에는 서화 폭의 우측 상단에 찍는 두인(頭印)과 중간에 찍는 유인(遊印)이 쓰인다. |
작성일 : 13-08-20 11:26
조선시대의 서예 | |
글쓴이 : 학정서예원 조회 : 1,470 | 조선시대의 서예 조선시대 초엽의 서예는 고려 말의 경향이 그대로 계승되어 조맹부의 서체, 즉 송설체가 유행하였다. 송설체로 된 증도가(證道歌) ·천자문(千字文) ·적벽부(赤壁賦) 등이 왕부의 명령으로 간행되어 일반에게 전습(傳習)되었다. 1435년(세종 17)에는 승문원(承文院) ·사자관(寫字官)의 자법(字法)이 해정(楷整)하지 못하였다 하여 왕희지체로서 궤범(軌範)을 삼게 하였으므로 이로부터 양체가 안행(雁行)하였으나 주류는 역시 송설체였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은 중망(衆望)을 한몸에 모은 예원(藝苑)의 중심 인물이었고, 당시의 최고 화가인 안견(安堅)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의 발문(跋文)은 30세라는 약년(若年)의 서(書)이나 호매(豪邁) 늠늠하고 품위 또한 높다. 따라서 당시 천하제일이라 하였다.
선조(宣祖) 이전에 서명(書名) 높은 사람으로는 강희안(姜希顔) ·김종직(金宗直) ·정난종(鄭蘭宗) ·소세양(蘇世讓) ·김구(金絿) ·성수침(成守琛) ·이황(李滉) ·양사언(楊士彦) ·성혼(成渾) 등이 있다. 대체로 조선 전기는 조맹부 ·왕희지 이외에도 명나라 문징명 ·축윤명의 서풍도 들어와 혼류(混流)되어 행하여졌다. 성종(成宗) 때의 권발(權撥)은 수윤(秀潤)한 행 ·초서의 대가로 초서는 조선시대를 통하여서도 가장 뛰어났다.
선조(宣祖) 때에 한호(韓濩)가 나온 후로는 조선시대의 서풍이 크게 변모하였다. 즉 한호는 한국 서예사상 매우 이름 높은 사람으로 진체(晉體:왕희지풍의 체)를 연수한 듯하며 적공(積功)하여 해 ·행 ·초서에 능하였으나 누기(陋氣) ·속기(俗氣)가 많았다.
그 후에는 삼대가(三大家)라 불리는 백하(白下) 윤순(尹淳) ·원교(圓喬) 이광사(李匡師)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이 있으며, 미불(米) ·백송(白松) 지창한(池昌翰) 등이 유명하며 이들의 필적은 오늘날에도 전해진다.
작성일 : 13-08-20 11:25
서예의 바른 자세는 | |
글쓴이 : 학정서예원 조회 : 1,400 | 서예의 바른 자세는 어떠한 것인가?
처음 글씨를 배우는 사람이 때때로 자세에 대한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장차 글씨도 좋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심신의 건강에도 해가 된다. 그러므로 글씨를 쓸 때에는 앉은 자세나 선 자세가 항상 올바르게 유지되도록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어떠한 자세가 올바른 자세인가? 먼저 마음을 평정시키고 기를 고르게 하고 정서를 안정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영정치원(寧靜致遠)이라고 하는 것으로 심수쌍창(心手雙 暢)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다음은 아래와 위의 세 가지 자세와 몸과 기가 서로 결합하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아래의 세 가지란 두 발과 척추 끝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앉은 자세를 정확히 하려면 발을 안정시키고 몸을 올바르게 하여야 한다. 위의 세가지란 양손과 등뼈를 말하는 것으로 위 아래가 평형을 이루면서 기운을 집중시켜야 한다. 한 손은 자연스럽게 책상에 놓고 힘은 안배하여 붓 잡은 손이 합리적으로 힘을 발휘하게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붓 잡은 손이 지탱할 수가 없어 오랫동안 글씨를 쓰지 못하게 된다. 등과 어깨는 기를 움직이는 길인 까닭에 붓을 종이에 대기 전에 먼저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쉬면서 의식적으로 기를 가라 앉혀야 한다. 그런 뒤에 천천히 기를 등으로부터 어깨를 통과하여 팔꿈치와 손에 이르도록 한 뒤에 서서히 붓을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열 손가락에 기를 통하게 한 다음 붓 끝에 모든 것을 집중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좀더 상세하게 말하면 글씨를 쓸 때 두 발바닥은 평행을 이루게 하면서 허벅다리는 약 한자 정도로 자연스럽게 벌리고 양 무릎도 허벅다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벌려야 한다 .엉덩이는 의자 위에 편안히 앉으면서 허리는 곧게 펴고, 가슴은 책상 위에 있는 법첩을 응시하고 있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몸이 기울어져서는 안되며, 등과 허리가 낙타처럼 굽어서도 안되며, 머리를 너무 숙여서도 안된다. 만일 이와 같은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면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신의 건강에도 좋지 못한 영향이 미치게 된다. 앉아서는 1촌(寸) 정도의 해서(楷書)를 쓰는 것이 좋으며 이 이상의 큰 글씨를 쓰려면 서서 쓰는 것이 좋다. 만약 앉아서 큰 글씨를 쓰게 되면 글자의 점과 획이 착각을 일으키게 할 뿐 아니라 글자의 형태도 이상하게 되기가 쉽다. 더욱이 중요한 작품을 할 때 앉아서 글씨를 쓰게 되면 전체의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동감도 이루기가 어렵 다. 역대 서예가들이 큰 글씨를 쓸 때에는 서서 현완법(懸腕法)의 자세를 취하면서 작품을 하였다. 서서 글씨를 쓸 때에는 두 다리는 자연스럽게 땅에 디디고, 몸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 이고, 허리는 약간 굽히면서 머리는 숙이고, 눈은 종이를 바라보고, 왼손은 종이를 누르고, 오른손은 붓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두 다리는 꼭 평행되게 할 필요가 없으며 앞뒤를 약간 어긋나게 하면서 편안하게 하되 손은 긁듯이 책상을 잡아서는 안된다. 이상의 것을 종합하여 말하면 앉은 자세나 선 자세를 막론하고 획일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심신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선 든 것을 고려하여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하여야 한다. |
작성일 : 13-08-20 11:25
한글서예 | |
글쓴이 : 학정서예원 조회 : 1,368 | 한글 서예 서예는 한자를 대상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한국에는 한글이라는 고유문자가 15세기에 만들어졌으며, 당시로는 그것이 심미(審美)의 대상으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서예라고 하면 먼저 한자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 오면서 한글 서예가 발달하고, 또 조선말엽에 궁체(宮體)라는 서체가 이루어지면서 한자와 함께 서예의 한 영역이 되었다. 궁체는 맑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다만 여러 체로 다양하게 발달하여 폭넓은 예술성을 지닌 한자와는 성격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한자 필법이 원용(援用)되기는 하나, 문자 구조상의 단순성으로 인해 발달에 한계가 있다. 최근 이러한 제약성을 탈피하기 위해 몇몇 서예가들이 한글 서예의 새로운 형태화를 시도하였다. |
작성일 : 13-08-20 11:24
붓은 어떻게 잡아야 하나? | |
글쓴이 : 학정서예원 조회 : 1,115 | 붓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서예는 모필(毛筆)을 사용하는 특수한 예술이기 때문에 먼저 이것을 잡는 방법을 정확히 알아야 한는 것이 급선무다. 붓을 잡는 방법에 관하여 역대 서예가들이 많은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초학자들은 오직 붓 잡는 방법을 이해하고 오랜 숙련을 하여 자유자재로 붓을 운용할 수 있으면 글씨는 좋아 지게 된다. 붓을 잡는 방법에 대하여 옛날부터 많은 이론들이 전해져 내려왔다. 예를 들면 '오지집필 법'(五脂執筆法), '사지집필법'(四指執筆法), '삼지집필법'(三指執筆法), '악권집필법'(握拳執筆 法) 이외에 소동파(蘇東坡)의 집필무정법(執筆無定法)등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오지집필법'(五脂執筆法)이 비교적 가장 유행하고 있는 집필법이다. 이 방법은 다섯 손가락을 합리적으로 배합하여 엽( ), 압(壓), 구(구), 게(揭), 저(抵), 도(導), 송(送) 등 으로 진행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발등법(撥등法)'이라고 하는 집필법이다. 발 이라고 하는 것은붓대에 나타난 셋째와 넷째 손가락이 둥글고 활동적이어서 움직이기가 원 활한 것을 말한다. 등이라고 하는 것은 말을 탈 때 디디고 올라가는 등자를 말하는 것으로 호구(虎口)가 둥글고 텅빈 것이 마치 등자와 같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등자를 얕은 데 서 디디고 올라 가면 쉬운 것과 마찬가지로 붓도 아래로 잡을수록 움직이기가 쉬워진다. 그 러면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엽( ) : 첫째 손가락의 끝마디로 붓대의 아랫부분을 잡고 힘써 곧게 한다.
압(壓) : 둘째 손가락으로 첫째 손가락과 힘을 균등히한다.
구(구) : 셋째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하여 붓대의 아랫쪽을 향하게 한다.
게(揭) : 넷째 손가락으로는 붓을 올리는 듯하게 하여 셋째 손가락과 부닥뜨리게 한다.
저(抵) : 셋째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한 것을 손가락으로 막는 역할을 한다.
도(導) : 다섯째 손가락으로 넷째 손가락을 당겨 오른쪽으로 지나가게 한다.
송(送) : 다섯째 손가락으로 넷째 손가락을 보내어 왼쪽으로 지나가게 한다.
이상 소개한 것은 붓을 잡는 방법의 요령을 설명한 것이다.
다섯 손가락들의 간격을 조밀하게 할면 손바닥은 비게 하면서 세워야 하고, 팔목은 평평 하게 하며, 붓대는 곧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둘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의 사이를 자연스럽게 서로 의지하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만약 둘째와 셋째 손가 락 사이가 떨어지게 되면 다섯 손가락의 힘은 균등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초학자들이 범하 기 쉬운 결점이니 특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붓을 잡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의 종류가 있어 획일화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 을 막론하고 꼭 지켤야 할 것은 손가락 사이는 조밀하여야 하며, 손바닥은 비게 하여야 하 며, 팔목은 평평하게 하여야 한다. 붓 끝은 세우되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면서 힘을 쓸 수 있 도록 하여야 한다. 긴장을 억지로 하면 안되며, 활발하게 하되 헝클어져서는 안된다. 이것은 붓을 잡을 때 꼭지켜야 하는 법칙이다. 그리고 붓을 잡는 위치는 글자의 크고 작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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