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진황축객서

2016. 2. 11. 13:29한문기초書

이사_상진황축객서(李斯_上秦皇逐客書)/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後集/ 古文眞寶

2010.02.11. 22:01

 

1

臣聞吏議逐客하니 竊以爲過矣니이다. 昔者에 繆公求士할새 西取由余於戎하고 東得百里奚於宛하고 迎蹇叔於宋하고 求邳豹公孫支於晉하니이다. 此五子者는 不産於秦이로대 而繆公用之하사 幷國二十하여 遂覇西戎하니이다. 孝公用商鞅之法하여 移風易俗하여 民以殷盛하며 國以富強하여 百姓樂用하며 諸侯親服하고 獲楚魏之師하여 擧地千里하여 至今治強하니이다. 惠王用張儀之計하여 拔三川之地하고 西幷巴蜀하고 北取上郡하고 南取漢中하고 包九夷制鄢郢하고 東據成皐之險하고 割膏腴之壞하고 遂散六國之從하여 使之西面事秦하여 功施到今하니이다. 昭王得范雎하사 廢穰侯逐華陽하고 彊公室杜私門하며 蠶食諸侯하여 使秦成帝業하시니이다. 此四君子는 皆以客之功이니이다. 由此觀之컨대 客何負於秦哉리오? 向使四君으로 郤客而不內하고 踈士而不用이런들 是는 使國無富利之實이오 而秦無彊大之名也리이다.

신이 듣건대 관리들 중에는 외국 출신 인사들을 쫓아낼 것을 발의(發議)한 사람이 있다는 데, 제 생각으로는 잘못된 일이라 여깁니다. 옛날 목공(穆公)은 선비들을 구한 끝에 서쪽에서는 융(戎) 땅에서 유여(由余)를 구하였고, 동쪽에서는 완(宛) 땅에서 백리해(百里奚)를 얻었으며, 송(宋)나라에서는 건숙(蹇叔)을 마중해 왔고, 진(晉)나라로부터는 비표(邳豹)와 공손지(公孫支)를 데려왔었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진(秦)나라 출신이 아닙니다마는 목공은 그들을 임용하여 이십 국을 합병 시켰고, 마침내는 서융(西戎)의 패자가 되었었습니다. 효공(孝公)은 상앙(商鞅)의 법을 응용하여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들을 잘살게 하고 나라는 부강케 하여 백성들은 부림을 당하는 것을 즐기고 제후들은 친해지고 복종케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楚나라와 魏나라의 군대를 쳐부수고 천리의 땅을 더 넓히어 지금까지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惠王은 張儀의 계책을 사용하여 韓나라 三川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는 巴蜀 땅을 합병하였으며, 북쪽으로는 上郡을 거둬들이고 남쪽으로는 漢中 땅을 빼앗았으며, 여러 南夷들을 합병시키고 언영(鄢郢)을 제압하였으며, 동쪽으로는 성고(成皐)의 험한 지형에 의지하고 비옥한 땅을 떼어내게 함으로써 마침내는 六國의 合從策을 무산시키어 그들로 하여금 서쪽으로 향하여 秦나라를 섬기도록 하였으니, 그 공로는 지금까지 혜택이 미치게 하고 있습니다. 昭王은 범저(范雎)를 등용하여 재상인 양후(穰侯) 위염(魏冉)을 파면시키고 華陽君 후융(芋戎)을 쫓아내어 진나라 公室을 강하게 하고 개인적인 집안의 세력을 막았으며, 제후들을 蠶食하여 진나라로 하여금 제왕의 大業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들 네 임금은 모두 외국 출신 인사들의 공로에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이로써 본다면 외국 출신 인사들이 진나라에 무엇을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전날 만약에 이 네 임금들이 외국 출신 인사들을 물리치고 나라 안에 들여놓지 않고, 이들을 멀리하고 등용하지 않았더라면 이는 진나라로 하여금 富하여지고 이롭게 되는 실리를 갖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며, 진나라는 강대하다는 명성도 얻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註解>

- 繆公 : 繆은 穆과 통하는 글자. 秦나라 임금의 시호. B.C. 624에 晉나라를 쳐서 西戎의 覇者가 되었었다.

- 由余 : 본시 晉나라 사람으로 戎으로 들어가 융왕을 섬겼다. 융왕은 진나라 목공이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유여를 진나라로 보내어 사실을 알아보게 하였다. 목공은 이때 유여를 만나보고는 유여를 잡아두었다가 뒤에 진나라 재상 자리에까지 올라앉혔다. 그 뒤 융을 칠 계책을 내어 천리의 땅을 개척하게 하고 목공을 서융의 패자가 되게 하였다. <兵法> 《六篇》도 지었다 한다(《史記》秦本記·匈奴傳 등).

- 百里奚 : 춘추시대 虞(우)나라 사람. 字가 井伯이며 가난하게 자랐으나 뒤에 虞公을 섬기어 大夫가 되었다. 晉나라가 우나라를 멸하였을 때 포로가 되었는데, 秦나라 穆公夫人의 媵臣(잉신)으로 삼으려 하자 백리해는 치욕을 못이기어 宛땅으로 도망쳤다가 楚나라 사람들에게 잡혔다. 진 목공은 그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다섯 장의 검은 양 가죽(五羖大夫)을 주고 백리해를 데려다가 나라의 정치를 맡겼는데 그가 재상이 된 지 7년 만에 목공을 覇者가 되게 하였다 한다(《史記》正義 등).

- 蹇叔 : 본시 岐州 사람으로 宋나라에 가 있었는데, 백리해의 추천으로 목공이 후한 弊帛을 주고 데려다가 上大夫로 삼았었다 한다.

- 邳豹 : 본시 晉나라 사람으로 秦으로 가서 벼슬했던 사람.

- 公孫支 : 본시 岐州 사람. 晉나라에 가 벼슬하다 뒤에 秦나라로 와 大夫가 됨.

- 孝公 : 秦나라 임금. B.C. 362- B.C. 338 在位.

- 商鞅 : 전국시대 衛나라의 庶出 公子로 성은 公孫씨. 刑名 法術之學을 좋아하여, 진나라 효공의 재상이 된 뒤로 變法自强의 정책을 써서 진나라를 강성케 하였다. 商땅에 封해져 商君이라고도 부르며, 그가 재상으로 있는 동안 法治가 잘 되었으나, 법이 너무 엄하여 많은 사람들의 원망을 샀으므로 효공이 죽자 마침내 車裂의 刑을 받고 죽었다 한다.

- 獲 : 본시 잡는다는 뜻. 그러나 여기서는 상앙이 魏나라 安邑을 쳐서 뺏고, 공자 卯를 쳤던 일을 가리킨다.

- 擧 : 개척의 뜻.

- 惠王 : 秦나라 임금. B.C. 338에 즉위하여 王이라 자칭하기 시작함.

- 張儀 :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 처음에 蘇秦과 함께 鬼谷子에게 배웠는데, 뒤에 소진이 趙나라 재상이 되었을 때 찾아갔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秦나라로 갔다. 진나라 혜왕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는데, 그는 六國을 유세하여 소진이 내걸었던 合縱策을 어기고 자신의 連橫策을 따라 秦나라를 섬기도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진나라의 遠交近攻策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였고, 그를 武信君이라 불렀다. 惠王이 죽고 武王이 즉위하자 여러 신하들이 그를 모함하였다. 그리고 다른 육국들이 다시 합종하여 진나라에 덤비기 시작하자 장의는 진을 떠나 魏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으나 일 년만에 죽었다.

- 三川 : 涇水, 渭水, 洛水의 세 강물. 秦나라에서는 三川郡을 둔 일이 있으며, 모두 황하 중류의 지류들이다.

- 巴蜀 : 지금의 成都를 중심으로 한 四川省 지역.

- 上郡 : 지금의 陝西省 서북쪽 일대에 걸쳐있던 땅 이름.

- 漢中 : 지금의 섬서성 남부와 湖北省 서북부에 걸쳐 있던 郡 이름.

- 包九夷 : 包는 합병시키는 것. 九夷는 여러 오랑캐들, 楚地에 있던 여러 夷族들을 가리킴.

- 郤客而不內 : 외국 출신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

2

今陛下致昆山之玉하며 有隨和之寶하며 垂明月之珠하며 服太阿之劍하며 乘纖離之馬하며 建翠鳳之旗하며 樹靈鼉之皷하시니 此數寶者는 秦不生一焉이어늘 而陛下說之는 何也니꼬?

必秦國之所生然後可인댄 則是夜光之璧이 不飾朝廷이오 犀象之器가 不爲玩好요 鄭衛之女가 不充後宮이오 而駿良駃騠가 不實外廐요 江南金錫이 不爲用이오 西蜀丹靑이 不爲采며 所以飾後宮充下陳하여 娛心意說耳目者가 必出於秦然後可인댄 則是宛珠之簪과 傅璣之耳와 阿縞之衣와 錦繡之飾이 不進於前이오 而隨俗雅化하여 佳冶窈窕趙女가 不立於側也리이다. 夫擊甕叩缶하고 彈箏搏髀而歌呼嗚嗚하여 快耳目者는 眞秦之聲也요 鄭衛桑間韶虞象武者는 異國之樂也니이다. 今棄擊甕叩缶而就鄭衛하며 退彈箏而取韶虞하니 若是者는 何也니이까? 快意當前하여 適觀而已矣니이다.

今取人則不然하니 不問可否하며 不論曲直하고 非秦者去하며 爲客者逐하니 然則是所重者는 在乎色樂珠玉이오 而所輕者는 在乎人民也니이다. 此非所以跨海內하고 制諸侯之術也니이다.

지금 폐하께서는 崑崙山의 옥을 가져오게 하시고 隨侯의 구슬과 和氏의 옥을 갖고 계시며, 明月의 구슬을 늘어뜨리고 太阿의 칼을 차고 纖離의 말을 타고 계시며, 翠鳳의 깃발을 세우고 신령스런 악어가죽으로 만든 북을 달아 놓고 계십니다. 이 여러 가지 보배도 秦나라에서는 하나도 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그것들을 좋아하고 계신데 어째서이겠습니까?

꼭 진나라에서 생산된 것이라야만 한다면은 곧 夜光의 구슬은 조정을 장식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외뿔소 뿔과 코끼리 이빨로 만든 그릇을 愛玩할 수 없게 될 것이며, 趙나라의 여자들이 後宮에 채워질 수 없을 것이고, 駃騠(결제)같은 좋은 말들이 외양간에 매어질 수가 없게 될 것이며, 강남의 금과 주석도 쓸 수가 없고, 西蜀의 丹靑도 채색으로 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후궁을 장식하고 후궁 집들에 채우는 것들이나 마음과 뜻을 기쁘게 하고, 귀와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이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온 것들이어야만 한다면, 宛 땅의 구슬이 장식된 비녀와 모난 구슬로 장식한 귀고리와 齊나라 東阿에서 나는 고운 흰 비단 옷과 蜀에서 나는 수놓은 비단 장식이 폐하의 앞에 바쳐지지 않게 될 것이며, 우아함이 習俗을 좇아 변화하여 아름답고 얌전한 趙나라의 미녀들도 폐하 곁에 서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물독을 두드리고 물동이를 치며 箏을 뜯고, 넙적다리를 두드리며 신나게 노래하고 소리 지름으로써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참된 진나라의 노래입니다. 그러나 鄭나라, 衛나라의 노래와 桑間의 노래 및 韶虞(소우)와 象武의 음악은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지금 물독을 두드리고 물동이를 치던 방식을 버리고, 정나라와 위나라의 노래를 즐기고, 쟁을 뜯는 음악을 물리치고 소우의 음악을 취하고 계신데 그와 같이 하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당장에 기분이 좋고 보기에 흡족하기 때문일 따름일 것입니다.

지금 사람을 쓰는 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부를 묻지도 않고 곡직을 따지지도 않고서 진나라 출신이 아니면 물리치고 외국 출신 인사면 내쫓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히 여기는 것은 여색과 음악과 구슬과 옥같은 것들이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사람들이라는 셈이 됩니다. 이것은 四海에 군림하고 제후들을 制御하는 술법이 되지 못하는 일입니다.

<註解>

- 昆山 : 곤륜산, 황하의 근원이 여기에서 시작되며, 옛날부터 옥의 산지로 유명했다. 지금의 곤륜산맥의 어느 봉우리일 것이다.

- 隨和之寶 : 隨侯의 珠와 和氏의 璧. 수후의 구슬은 수후가 큰 뱀이 두동강이 난 것을 보고 약을 발라 고쳐준 일이 있는데, 일년 뒤에 그 뱀이 물어다 주었다는 明珠로 흔히 隨珠라고도 불렀다(《淮南子》說山訓, 《史記》正義). 화씨의 벽은 초나라 사람인 卞和가 荆山에서 발견했다는 寶玉임(《韓非子》和氏篇).

- 明月之珠 : 밤에도 밝은 달처럼 빛을 발한다는 야광주(《淮南子》說山訓).

- 太阿之劍 : 초나라(또는 오나라)의 名匠인 干將이 만들었다는 명검.

- 纖離 : 옛날 좋은 말 이름. 周 穆王의 八駿 중의 하나였다 한다(《荀子》性惡편).

- 翠鳳 : 비취새 깃으로 봉황새 모양을 만든 깃대의 장식, 이 깃발은 天子의 수레에 세웠었다 한다.

- 靈鼉(영타) : 신령스런 악어. 큰 악어 가죽으로 좋은 북을 만들었었다.

- 犀象(서상) : 외뿔소의 뿔과 코끼리 이빨.

- 鄭衛 : 정나라와 위나라. 그곳 노래가 음탕한 것으로 유명하여 여자들도 잘 노는 것으로 생각했던 듯함.

- 駃騠 : 잘 달리는 좋은 말 이름. 낳은 지 7일이 되자 그 어미보다도 빨랐다 한다(《玉篇》).

- 下陳 : 後列, 또는 後宮의 列屋을 가리킴.

- 宛珠 : 둥근 구슬, 宛 땅에서 나는 구슬.

- 傅璣(부기) : 모가 있는 구슬(璣)을 붙여 장식하는 것.

- 阿縞(아호) : 齊나라 東阿 땅에서 나던 희고 고운 비단.

- 隨俗雅化 : 習俗을 따라 우아함이 변화하는 것.

- 佳冶窈窕 : 아름답고 얌전한 것.

- 擊甕 : 물독을 치면서 박자를 맞추는 것.

- 叩缶 : 토기로 된 동이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는 것.

- 彈箏 : 쟁을 뜯다. 箏은 비파처럼 생긴 현악기로 十二絃 또는 십삼현이다.

- 搏髀(박비) : 자기 넙적다리를 두드리는 것. 자기 넙적다리를 치면서 장단을 맞추는 것. 髀는 본시 넙적다리 뼈의 뜻.

- 歌呼嗚嗚 : '오오'하고 즐거운 소리로 노래하는 것.

- 鄭衛 : 정나라와 위나라의 노래. 《詩經》시대부터 음란한 亂世의 음악으로 알려져 왔음.

- 桑間 : 역시 망해가는 나라의 음탕한 노래 이름. 보통은 「桑間」과 「濮上」을 연이어 놓고 亡國之音을 나타낸다. (《禮記》樂記). 모두 衛나라 땅 이름.(《漢書》地理志).

- 韶虞(소우) : 舜임금의 음악 이름.

- 象武 : 象은 周公이 지은 음악. 武는 주무왕의 음악 이름.

- 快意當前 : 당장 마음이 상쾌한 것. 바로 그 때에 마음이 즐거운 것.

- 跨海內 : 사해에 걸쳐 군림하다. 온 천하를 지배하는 것을 뜻함.

곤륜산(崑崙山) 평균 해발 5,500-6,000m

3

臣聞地廣者粟多하고 國大者人衆하고 兵強則士勇이라. 是以泰山不讓土壤이니 故로 能成其大하고 河海不擇細流라 故로 能就其深이니이다. 王者不卻衆庶라 故로 能明其德이니이다. 是以地無四方하며 民無異國하여 四時充美하고 鬼神降福하나니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니이다.

今乃棄黔首하여 以資敵國하고 郤賓客하여 以業諸侯하여 使天下之士로 退而不敢西向하고 裹足不入秦하니 此所謂藉毬兵而齎盜糧者也니이다. 夫物不産於秦이로대 可寶者多하고 士不産於秦이로대 願忠者衆이어늘 今逐客以資敵國하고 損民以益讎하여 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하니 求國無危라도 不可得也리이다.

신이 듣건대 땅이 넓은 나라는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한 나라는 군사들이 용감하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泰山은 흙을 외부에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거대해질 수가 있는 것이고, 황하와 바다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물이 깊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王者는 여러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음으로써 그의 덕을 밝힐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은 사방을 가리지 않고 모두 그의 땅이 되고, 사람이라면 다른 나라를 따지지 않고 모두 그의 신하가 되면 사철 언제나 충실하고 아름답게 되고 귀신도 그에게 복을 내려주게 됩니다. 이것이 옛날 五帝와 三代의 임금들에게는 적이 있을 수 없었던 근거입니다.

지금 그러나 백성들을 버리어 적국의 자산이 되게 하고, 다른 나라 출신 인사들을 물리침으로써 다른 제후들의 覇業을 돕고, 천하의 선비들로 하여금 모두가 물러나며 감히 서쪽 진나라로 향하지 않고 발을 싸매 놓은 듯이 진나라로 들어오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대어 주는거나 같은 일입니다. 물건 중에도 진나라에서 나지 않는 것이면서도 보배가 될 만한 것이 많고, 선비 중에서 진나라 출신이 아니면서도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지금 외국 출신 인사들을 내쫓음으로써 적국에 보탬이 되게 하고 백성들을 버림으로써 원수에게 이익이 되게 한다면 나라 안은 자연히 허하게 되고 밖으로는 제후들에게 원한만을 지니게 할 것입니다. 그 나라가 위태롭지 않게 되려 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註解>

- 不卻衆庶(불각중서) :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다. 백성들을 버리지 아니하다.

- 四時充美 : 사철 봄, 여름, 가을, 겨울할 것 없이 언제나 物産이 충실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것.

- 黔首 : 백성들, 본시 '머리가 검은 사람들', 곧 冠을 쓰지 않은 평민들을 가리키는 말임.

- 業 : 일을 도와 주다. 覇業을 돕다의 뜻.

- 裹足(과족) : 발을 싸매어 놓다. 곧 발을 움직이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史記> 范雎傳).

- 藉毬兵(자구병) : 도둑에게 무기를 대주다. 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다.

- 齎盜糧(재도량) : 도둑에게 양식을 대주다.

- 損民 : 백성을 덜어내다. 백성의 일부를 버리다.

출처 : 고문진보 후집/김학주/명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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