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6. 10:11ㆍ사람과사람들
모든 것은 거룩한 것
사물로부터의 이탈은 마치 하나님은 또 다른 하나의 '것' , 하나님의 창조물이 하나님의 경쟁자인 양 '하나님'과 '사물'들을 맞세워 놓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기 위해서 사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안에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고 사용하기 위해 '우리 자신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관점으로서 진정으로 덕을 닦으려 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에는 그 어느 것에도 악이란 없습니다. 그분의 어떤 것도 그분과 우리의 일치에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장애는 우리의 '자아' 안에 있습니다. 즉 격리되고 외적이며 자기 본위의 의지를 유지하려는 고집스런 우리의 욕구에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현실과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이 외면적인 거짓 '자아' 에게 돌릴 때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짓 자아는 우리의 신이 되고, 우리는 이 자아를 위해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가상적 자아인 이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사물을 악용하고 부패시키거나 사물과 우리와의 관계를 타락하고 죄스러운 관계로 만듭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사물을 죄악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물을 우리 환영의 자아에 애착을 더 갖게 하는 데에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좋은 것들을 마치 죄악인 것처럼 취급함으로써 이런 환경으로부터 헤어나려는 사람은 엄청난 착각에 스스로 빠질 뿐입니다. 그들은 에덴에서 하와를 탓하는 아담과 뱀에게 책임을 돌리는 하와와 같습니다. '여인이 나를 유혹했습니다. 술이. 음식이 나를 유혹했습니다. 여자는 위험하고 술은 독약이며 음식은 죽음입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증오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싫어함으로써 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어린아이의 생각과 태도이며 자기본위의 자아를 찾고 보호하기 위해 주술을 외우고 저주를 하고, 자기 안에 있는 만족할 줄 모르는 작은 신을 즐겁게 하는 우상 숭배자와 미개인의 생각과 태도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우상을 놓는 것은 가장 불행한 자기 기만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광신자로 만들어 진리와의 접촉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고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없게 합니다.
광신자들은 자아(ego)를 '신성한' 어떤 것으로 믿으려 하면서도 다른 모든 것은 부정(不淨)한 것으로 봅니다.
성인들과 위대한 관상가들은 사물을 절대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고, 세상. 세상에 사는 사람들, 보이는 광경 그리고 들리는 소리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 진가도 몰랐다고 하는 것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그들도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물들의 사랑과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반영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해 주는 사물에 대한 증오가 공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하나님께 푹 빠져서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돼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돌과 같이 굳은 얼굴로 다니며 자기네에게 말하는 사람의 소리를 듣지 못했거나 주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인들이 사물을 올바로 보고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몰입했기 때문이며 그들이 모두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만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은 사물에 대해서 어떤 관심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의 자발성이나 즐김도 '타락한 본성'의 죄가 되는 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자연적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부하고 임의적 해설로 모든 자발성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이른바 이런 진부한 사상의 목적은 모든 것을 가까이 유지하는 것이고, 자발적 반응을 좌절시키는 것이며 죄책감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혹은 그런 감정을 유발하는 것일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그런 정신 자세가 결국은 죄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인의 삶은 죄악과의 끊임없는 투쟁 외에는 다른 것이 될 수 없고, 그리고 목이 말라 냉수를 한 잔 마시려 해도 그것이 마치 무슨 대죄라도 되듯 통회를 발하지 않고는 마실 수 없는 사람이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 착함, 즐거움에 반응하는 것이 성인에게는 마치 죄를 짓는 것인 양. 성인은 기도와 자기의 내적 신심 활동이 아니면 그 어떤 것으로도 기쁨을 누려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인은 창조된 것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즐겨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도 짓지 않고 자기의 신심을 고려하지도 않으며 꾸며낸 어떤 경직성도 없이 단순하고 평범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온화함과 부드러움은 영성적 어떤 규제도 받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온유함으로부터 직접 진리의 빛과 하나님의 뜻에로 옵니다. 그래서 성인은 하나님을 드러나게 들먹이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대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의 말은 하나님께 보다 큰 영광을 드리고 덜 성스러운 사람의 관찰보다는 하나님의 보다 큰 사랑을 일으킵니다. 덜 성스러운 사람은 하나님과 사물을 임의로 연결을 짓기 위해 상투적인 은유와 비유를 매개로 하느라 무척 애를 씁니다. 그들이 동원하는 은유와 비유는 별것 아니어서 종교와 어떤 관계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과 모든 것은 좋은 것이라는 것을 성인은 압니다. 반면에 성인이 아닌 사람들은 피조물은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 그 까닭은 그들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시선은 아름다운 모든 것을 거룩하게 만들고 성인의 손은 만지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축성합니다. 그리고 성인은 어떤 것으로도 상처를 받지 많으며 누구의 잘못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는 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압니다. 지상에서의 사명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가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합니다. 그 모든 것은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 바칠 우리의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속해 있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 안에서 쉬면서 무엇보다도 쾌락과 고통, 기쁨과 슬픔 온갖 선과 악, 모든 것 안에서 그들 자체보다는 그분의 뜻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피조물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사가 되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의 목적입니다.
지상에서의 유일하고 진실된 기쁨은 거짓된 우리 자아라는 감옥으로 부터의 탈출입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본질과 우리 영혼의 심연에 기꺼이 거처하시는 생명과 사랑으로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하며 그들의 결실을 즐기며 그 모든 것들 안에서 그분을 찾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만나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은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정화하며 우리 안에 관상적인 어떤 것, 천상적인 어떤 것을 심어 줍니다.
이런 완덕에 이르지 못하는 것, 그리고 창조된 모든 것은 우리에게 기쁨이 아니라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할 때까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불행한 것은 우리가 받은 상처로 인해 죽는 것이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할 때까지 하나님의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끕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 놓습니다. 우리는 사물들 안에서 어느 정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들 안에서 하나님을 전혀 찾지 못합니다.
그들 안에서 우리가 어떤 기쁨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에 그 기쁨은 슬픔으로 변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쾌락을 주기 시작하는 그 순간 그 쾌락은 고통으로 바뀝니다.
아직 하나님을 완전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창조된 모든 것 안에서 천상의 충만함을 보여 주는 것과 지옥의 고통을 말해 주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축복의 기쁨의 한 면을 볼 수 있으며 벌(罰)인 잃음의 고통의 한 면을 찾을 수 있습니다.
피조물 안에서 우리가 찾는 완성은 창조된 존재의 실체에 속해 있습니다. 그 실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을 반영합니다. 그들 안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은 실제로 있는 것보다 우리가 원하는 대상 안에서 보다 큰 실체, 창조된 그 어떤 것이 줄 수 있는 것보다도 더 큰 성취를 찾으려 하는 우리 욕망의 무질서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서 하나님을 흠숭하는 대신에 우리는 언제나 피조물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숭상하려 합니다.
그러나 거짓 자아를 숭상하는 것은 아무것도 숭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숭상하지 않는 것은 지옥입니다.
'거짓 자아'를 육체와 하나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육체는 죄악도 아니며 비현실적인 것도 아닙니다. 육체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실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실체는 거룩한 것입니다. 따라서 육체는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완전한 실체가 우리 존재의 신비 안에 계신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육신을 아무도 감히 증오하거나 멸시하게 내버려 두지 맙시다. 아무도 감히 이 육신을 학대하도록 묵인하지 맙시다. 영혼은 선이고 육신은 악인 것처럼 영혼과 육신을 대립시켜 자신을 쪼갬으로써 자기의 자연적 일치를 속(俗)되게 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영혼과 육신은 함께 감추어져 있는 내면적 인격의 실체 안에 존재합니다. 둘이 서로 갈라지면 인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진 실체는 살아 있지도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한 인격체 안에서의 영혼과 육신의 '결합'은 사람을 하나님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묶어 주신 것을 누구도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고는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영혼이 '자아의 전부'인 양 다루는 것이나 육신을 '자아의 전부'로 다루는 것은 다 같이 잘못된 것입니다. 첫째의 실수를 범하는 사람은 천사주의의 죄에 빠지고, 두 번째의 실수를 범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간 본성에 부여하신 수준 이하에서 사는 것입니다.(그것은 마치 동물과 같이 사는 것이라는 틀에 박힌 쉬운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언제나 어느 경우에나 맞는 말은 아닙니다.) 인생을 살면서 육신과 '사물'과의 관계라는 실재에서만 사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존경을 받을 만하고 또 일반적으로 도덕적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오관(五官)의 한계 안에서만 사는 삶으로 낮추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자아는 감각적 체험에 근거한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육신이 허위와 속임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의 탓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 자신의 탓입니다. 환상으로 만족하는 사람의 탓입니다. 자기기만 안에서 안정감을 찾는 사람, 자기 오관을 안심시켜 주고 보호해 주는 한계 밖에 있는 신앙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밀한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의 탓입니다.
새 관상의 씨/ 토머스 머튼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
’
Thomas Merton, 1915 - 1968
그의 삶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전과 후로 명백히 나뉘는데 그 시점은 스물여섯살 때 켄터키주에 있는 트라피스트 겟세마네 수도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그는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내면적 위기와 외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심도 깊은 자기 성찰과 영적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영국의 작가이자 예술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영혼과 사상에 사로잡혔던 그는 영적으로 깊이가 있는 사람이었다. 토마스 머튼은 방대한 영혼과 시적인 저술로 유명한데 그 저술들은 대중들에게 영성을 제시해주었다.
/ Mannheim Steamro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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