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

2012. 9. 5. 17:15詩書藝畵鑑賞

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

 


1853년 추사 김정희(1786∼1856)는 반대파의 탄핵으로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떠난다.

그곳에서 달준이라는 시동을 만난다.

그는 평민출신이다. 먹을 갈아준 탓에 ‘먹동이’라고도 불렀다.

추사가 귀양에서 돌아와 과천에 은거할 때도 달준이는 추사를 모신다.

어느 날, 추사는 난을 친다. “난초를 안 그린 지 20년만에 우연히 그린 것”이다.

달준이에게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추사는 흥분한다.

실로 우연히 그렸는데 “하늘의 본성이 드러났다”며,

“이것이 바로 유마(維摩)의 불이선(不二禪)이다”라고 자화자찬한다.

이 자부심에 찬 그림이, 조선시대 문인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불이선란도’(혹은 ‘부작란도’)다.


길밖에서 길을 찾아 ‘蘭다운 蘭’을 보다


“애당초 달준이 주려고 그린 것이다.”

 
 
20년만에 그린 난다운 난그림

‘불이선란도’는 괴이하다. 표정이 추사체만큼이나 파격적이다. 무수한 인장과 추사의 ‘제발(題跋)’이 어지럽다. 싸움닭처럼 꼿꼿하게 몸을 세운 난초는 깡마른 잡풀 같다. 난초 특유의 유려한 곡선미가 없다. 바싹 마른 붓질로 그린 잎새가 직선적이고 까칠하다. 또 여백이 없다. 마치 난초를 에워싸듯이 제발이 4개나 붙어 있다. 일반적인 난초 그림에는 적당한 여백이 생명인데, 이 그림에는 강팍한 추사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 당황스럽다. 추사는 이런 감상자를 염두에 둔 듯 제발에 이렇게 적었다.

“초서와 예서의 기이한 필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를 알겠으며,
또한 좋아하겠는가?”

한마디로 글씨를 써 듯이 난초를 쳤다는 말이다. 사실 빠른 붓질로 잎이 구부러지고 꺾인 모습이 마치 초서체나 예서체와 흡사하다. 추사에게 그림도 글씨의 일종이었다. 그는 서예와 그림의 필법이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이 그림은 난초를 통해 그런 생각을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서화일치(書畵一致). 글씨가 쓴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듯, 이 난초도 그린 사람의 마음을 닮았다. 그래서 한 미술사가는 “그림의 난초와 글씨는 바로 추사 자신이요, 추사의 몸과 의식”(강관식)이라고 했다. 
추사는 ‘불이선란도’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이라며,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강요한다면, 또한 비야리성에 살던 유마의 말없는 대답으로 응하겠다.” 무슨 말인가?

‘불이선’이란 <유마경> ‘불이법문품’에 나오는 이야기다. 즉 모든 보살이 선의 경지를 설명하는데, 유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모든 보살이 유마의 태도를 보고는 감탄한다. 말과 글로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진정한 법임을 깨달은 것이다.

추사가 불이선을 언급한 것은 설명보다는 마음으로 깨닫는 예술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추사가 ‘서화일치’를 넘어 ‘화선일치(畵’禪一致)의 경지에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출처 : 양지
글쓴이 : 양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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