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5. 08:59ㆍ나의 이야기
觀水洗心(관수세심)
觀花美心(관화미심)
물을보면서 마음을 깨끗히 씻고,
꽃을보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上善若水.(상선약수)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처중인지소악,고기어도)
居善地,心善淵,與善仁,言善信,(거선지,심선연,여선인,언선신)
政善治,事善能,動善時(정선치,사선능,동선시)
夫唯不爭, 故無尤.(부유부쟁,고무우)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이 훌륭함은 만물(萬物)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싫어하는 바에 거처(居處)하는 까닭에,
도(道)에 가까운 것이다.
거하는 곳마다 거기가 곧 좋은 땅인 줄을 알며,
마음은 깊은 연못과도 같이 고요하고,
줄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말은 언제나 사실[진실]만을 말하며,
최선의 다스림을 베풀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움직일 때는 최선의 때를 따라 움직인다.
무릇, 오직 다투지 않는 까닭에 허물이 없느니라.
<도덕경8장>
무엇으로 저 물을 닮을수 있을까?
물이라기 보다는 불에 가까워
작은일에도 불처럼 일어나고,
남을 밝힘을 덕으로 삼지않고,
자신을 태움으로 악을 삼으며,
마음의 고요함을 저리 두어두고
불꽃처럼 일렁이기만하는데
어찌 저 물처럼 될수가 있을까?
아마 도덕경이 아닐까요?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도덕경엔 이말이 없내요... 호승자필유적(好勝者必有敵) 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성정채갱향(性靜菜羹香)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똑같이 짠 한가지 맛(同歸大海一味水) 만을 낸다. 이처럼 물은 원칙과 정도로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몸속의 맘이 가장 먼저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맹자는 '流水之爲物也(유수지위물야) 不盈科不行(불영과불행)', 즉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야 앞으로 흘러간다"고 했다. 공자는 '知者樂水(지자요수) 仁者樂山(인자요산)', 즉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노자는 '上善若水(상선약수)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이만물부쟁)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악) 故幾於道(고이어도)',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고루 이롭게 하고서도 다투지 않는다. 그리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기꺼이 처하니, 그런 까닭에 거의 도에 가깝다"고 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觀水洗心(관수세심)'도 교훈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물을 보고 마음을 씻으라"는 뜻이다. 작은 개울을 건널 때 다리에 '洗心橋(세심교)'.
관수루는 그저 단순히 물(水)을 보는 (觀)정자가 아니다.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학문에 정진하는 자세를 배우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깨우쳐야 하는 곳이다. 절벽 위 높은 곳에 있어 휘굽어 흐르는 낙동강을 아래로 아득히 내려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숱한 사람들이 끝없이 오가는 '살아 있는' 인간세상인 중요한 나루터를 굽어보는 곳에 세워진 정자였으니, 어찌 물을 물로만 보았을 것인가. 자연과 인간의 오묘한 이치를 생각하면서 강물을 바라보는 곳, 그곳이 바로 관수정인 것이다. 고전에서는 물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물이 인간과 생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선인들이 어찌 이를 몰랐겠는가. 그래서 나름대로의 지혜와 통찰력으로 물의 성질과 가치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볼 수 있는 것이다. <大河不擇細流/ 대하불택세류> 큰 물은 작은 물줄기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너그럽게 수용한다는 뜻이다. 좋은 물이든. 더러워진 물이든 큰 강이나 바다는 이를 다 차별없이 받아 들여서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니, 물의 관대함과 무차별성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 할것이다. <流水不爭先/ 유수부쟁선> 흐르는 물이 먼저 가려고 앞을 다투지 않는 다는 뜻이다. 차례대로 앞의 물이 흐르면 그 뒤를 이어서 따라 흘러 간다는 뜻으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사회의 부질없는 다툼이나 분쟁을 빗대어 물의 의연함과 질서 순응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겠다. <觀水洗心/ 관수세심> 물을 보면서 내 마음을 씻는다는 말이다. 물의 속성은 청결함이며,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가는 공이 있으니, 이러한 물을 보면서 나 스스로의 마음의 때를 씻는 다고 했다. 그리하여 물과 같이 마음을 깨끗하게 가져, 마음의 평정과 함께 허망한 욕심을 지우며 삶을 뜻깊게 가꾸어 감을 가르쳐 준다. <上善若水/ 상선약수> 물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며 지혜의 눈으로 물을 관찰하여 설명해 주는 말이다. 중국 고대의 지혜자 老子의 저 유명한 도덕경에 이 말이 등장한다. 무욕과 무위를 주창한 분답게, 물에서 인생의 심오한 철학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물의 자연 순응의 겸양, 다투기를 싫어하는 평화, 차별없는 너그러움, 온 갖 지저분한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가는 청결함 등을 묘사하면서 인간이 물을 통해 배워야 할 지혜를 역설하는 말이다.
8장 ㅡ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萬物)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거하는 곳마다 거기가 곧 좋은 땅인 줄을 알며,
마음은 깊은 연못과도 같이 고요하고,
줄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말은 언제나 사실[진실]만을 말하며,
최선의 다스림을 베풀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움직일 때는 최선의 때를 따라 움직인다.
대저 오직 다투지 않기에 허물이 없다.
관수세심의 정확한 출처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관수세심과 아주 짝을 잘이루는 말은 "관수세심(觀水洗心)이요, 상선약수(上善若水)니라"입니다.
여기서 유추해 보건데..
물에관련된 글이 있어 쫌 올려드립니다.
관수세심(觀水洗心)
말없이 도도하게 흐르는 물을 쳐다 보면서 내 마음을 씻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물이니 물을 닮으라는 것이다.
첫째, 물은 유연하다는 사실이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아도 저항하지 않고 그 그릇 모양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한다.
다시 말하면,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난 모습을 보이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모습을 보인다. 물이 이처럼 유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은 자기의 모습을 어떤 모습이라고 미리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정되고 경직된 모습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물이 담기는 물체의 형태에 따라 변화될 모습으로 항상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내 모습은 항상 남보다 잘 난 모습이어야 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내 모습이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나의 현실이 늘 슬프고 고통스러운 불행한 삶의 연속일 수 있다.
아름다운 장미꽃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웃고 노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한숨 짓고 눈물 짓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노래하는 꽃과 눈물 뿌리는 꽃이 따로 있나요?
어떤 상황에 처해도 역경을 순경으로 지혜롭게 극복할 줄 알고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에 대하여 사명감과 책임 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둘째, 물은 지금 흘러가야 될지 아니면 잠시 쉬었다 가야 할 시기인지를 잘 안다
물은 흘러가면서 장애물이 없으면 잘 흘러가지만 장애물이 있으면 억지로 그 장애물을 넘으려 하지 않고 넘을 수 있을 때까지 멈추고 기다릴 줄 안다. 힘도 능력도 안되면서 경거망동하는 법이 절대 없다. 물은 인간처럼 이성(理性)이 없으면서도 자연 조건에 잘 순응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물에서 매사 진퇴를 결정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지지불태(知止不殆)라. 즉 매사 멈출 때를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는 말이다.
물을 통하여 우리는 상황을 정확히 판단 처리하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여유의 멋과 침착함을 배워야 한다.
셋째, 물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돌아갈 줄 안다
호시우행(虎視牛行) 이라. 물은 우회할 줄 아는 아름다움이 있다. 매사 갈등과 시비를 일으키고 지치고 힘든 인생을사는 사람들은 물의 여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굴기자능처중(屈己者能處重) 하고
순리와 여유, 겸손은 정말 힘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힘과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드러나게 돼 있다. 자연의 이법(理法)에 순응하면서 순명(順命)대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소극적인 삶의 모습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엄격하고 절제된 마음의 평안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심안모옥온(心安茅屋溫) 이요
넷째, 물은 겸손할 줄 안다.
대개의 인간들은 자기자신의 능력이 한계에 달했으면서도 그것을 감추고 더 높은 곳만을 향하여 가려고 한다.
그러나 물은 자기 스스로 역류하는 법이 없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이는 자신의 상(相)과 집착을 버리고 겸손해 할 줄 아는 하심(下心)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70%가 물이다. 며칠간 물을 먹지 않는다면 몸을 잘 지탱할 수 없다. 이처럼 물의 공덕으로 보면 자신을 뽐낼 만 하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의 이 꼴짝 저 골짜기의 물이 모여 계곡을 이루고 계곡의 물은 다시 계천으로 계천에서 강으로 강에서 다시 종착지인 오대양 바다로 흘러간다.
바다에 다같이 모여서 나는 깨끗한 물인데 너는 왜 그렇게 오염된 물을 가지고 왔느냐고 일체 시비를 하지 않는다.
큰 바다에 일단 모이게 되면 다같이 화이부동(和而不同) 한다.
마지막으로 물이 흘러가는 그 모습 자체가 법(法)인 만고의 진리다.
법법자(法)란 삼수변( 氵)에 물이 흘러가는(去) 것으로 되어 있다.
파사현정(破邪縣正) 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란 말이 있죠?
제일 먼저인건 내몸이며,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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