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2. 21:28ㆍ詩書藝畵鑑賞
姜世晃(1713-1791) / 自畵像
1782년작, 비단에 채색, 88.7×51cm, 개인 소장, 보물590호.
강세황 <자화상>을 보고 있노라면 시나브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근엄한 표정의 선비를 보고 왜 웃는지 궁금하면, 잠깐 또 다른 그의 초상부터 살펴보자. 작가 미상의 <강세황상>은 머리에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상반신에 흉배 붙인 단령(團領)을 입고 각대(角帶)를 둘렀으니, 바로 예를 갖춘 조선의 관복이다. 그런데 <자화상>에서는 평복 두루마기에 오사모만 덜렁 썼으니, 이건 점잖은 신사복 차림에 운동모자를 쓴 것과 정반대지만 우습기는 매한가지다. 정조 때 예술계를 주름잡은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 강세황, 저 유명한 김홍도의 스승이라는 분이 왜 이런 장난을 치셨을까?
<자화상> 머리의 좌우 여백에 빼곡이 쓴 찬문(贊文)은 강세황 자신의 글씨인데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알고 보니 글에도 장난 꽃이 가득 피었다. 강세황, 이 분은 3남 6녀 남매 중에서도 부친이 64 세에 얻은 막내로서 갖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늦동이였다. 그래서 유달리 밝고 해학적인 성품을 지녔으니 그 제자인 김홍도 역시 농담에 능했고 음악부터 시문서화(詩文書畵)에 이르는 여러 교양을 섭렵한 것이 모두 스승으로부터 온 내력이었다. 강세황은 다른 글에서 자신을 이렇게 평했다. "체격이 단소하고 인물도 없어서 잠깐 만나본 이들은 그 속에 탁월한 학식과 기특한 견해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는 자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싱긋 웃어넘길 따름이었다."
이 글을 아울러 생각해 보면 강세황이 우스꽝스런 복장에 걸맞지 않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그저 우스개만은 아닌 성싶다. 특히 옷주름 선이 다른 초상에 비해 좀더 굵어 굳센 느낌이 있고, 어깨 윤곽선 아래며 옷주름 근처에 진한 바림을 더해서 견실한 양감을 강조한 점이 그러하다. 얼굴 묘사는 섬세 정교하며 음영을 나타낸 입체감에 서양화법이 내비친다. 주인공은 고운 옥색 두루마기에 진홍색 세조대(細條帶)를 느슨하게 묶어 낙낙하게 드리웠다. 오사모의 검정색과 더불어 품위 있는 색감 연출이다.
뛰어난 자화상 솜씨에 유려한 글씨며 문장력까지 발휘한 이 작품, 가히 삼절(三絶)의 저력이 드러난 걸작이라 하겠다.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中에서
이러한 표암은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의 문인예술가이자,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화에 대한 탁월한 역사적 안목과 이론을 바탕으로 윤순(尹淳, 1680-1741), 이한진(李漢鎭, 1732-?), 정선(鄭敾, 1676-1759), 심사정(沈思正, 1707-1769), 김홍도(金弘道, 1745-?) 등 당시 서화계 주역들의 작품에 대해 방대한 비평을 남긴 서화비평가(書畵批評家)이자 김홍도, 신위(申緯, 1769-1847) 등을 키워 시대를 앞질러 이끌만한 지도역량을 발휘한 18세기 조선 문예계의 큰 스승이다.
특히 표암은 32세부터 61세까지 약 30년 동안 일체의 벼슬길을 단념하고 안산(安山) 초야에 묻혀 학문과 예술에 전념하면서 체득된 충만한 자의식(自意識)과 72세 연행(燕行) 이후 일변(一變)된 안목으로 18세기 조선의 사회 문화 전반에서 드러나는 변화의 기운을 예술을 통해 표출하였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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