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자의 탄생 배경과 예술성

2012. 3. 15. 09:19서예일반

Ⅱ. 한자 탄생의 배경과 예술성

1. 한자 탄생의 사회와 물질적 배경

한자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통이 있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는지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자가 탄생하기 이전에 의사를 전달하거나 기억을 돕기 위해 사용되었던 수많은 방법들은 모두 한자를 탄생하게 하는 영양소 역할을 하였다. 結繩, 結珠, 書契, 토기 부호 등 많은 의사 전달의 방법을 거친 후 결국 사물의 형상을 그려서 표현하고 기억하며 의사를 전달하는 象形性의 한자를 탄생시키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대 원시 시대의 남겨진 유물을 근거로 하여 한자가 부호와 그림으로부터 발전해 왔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 학설이다. 그러나 그림은 한자를 탄생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되지만 부호가 한자가 아니듯이 결코 그림이 한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림은 일종의 예술 형상으로서 단순히 인간이 객관적 사물을 인지하여 주관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象形性의 한자와 같은 통일성이 부족하다. 따라서 그것이 비록 어떠한 뜻을 전달한다고 할지라도 표현 방법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고 공통의 뜻을 표현하고 전달하기에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달과 기억을 돕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리고 사회가 점점 발전하여 복잡해짐에 따라 그림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으며 자유로운 의사 전달의 수단이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따라서 부호나 그림으로 의사를 전달하면서 얻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객관적 사물을 대신할 수 있는 통일된 표현 양식을 찾았으며 결국 가장 먼저 象形性의 한자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최초의 한자는 모두 인간의 사회 생활과 관계가 있으며 사회 생활 도중에 직접 부딪히는 대자연의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물의 외형을 표현하였다. 상형의 한자는 자연에 존재하는 사물의 객관적 형상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에 그 사물을 대신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을 표현하여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태양을 표현할 때는 둥근 모양과 흑점에 중점을 맞추어?? (日), 나무는 가지와 뿌리를 중심으로?? (木), 뫼는 봉우리를 형상화하여?? (山) 등으로 표현해 낼 수 있었다. 또 추상적 개념으로 쓰이는 문자는 의미의 상형을 만들어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방향을 나타내는 위쪽은?? (上), 아래쪽은?? (下) 등으로 객관적 개념의 도움을 받아 표현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복잡한 뜻은 하나의 물건을 그려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형상을 그려서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활을 쏘는 형태와 뜻의󰡐射자는 ?? 과 같이 활과 화살 그리고 사람의 손을 동시에 그려서 그 뜻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옛 사람들은 길고도 험난한 고통의 길을 걸으며 쉬지 않고 개선하고 발전시켜 사회 구성원들끼리 공통된 약속 부호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의 약속 부호는 모두 그림 부호였으나 점점 그림의 성질을 떼어버리고 부호로만 발전하였으며 마침내 언어와 긴밀한 조화를 이루어 완전한 문자인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으며 통일된 뜻을 가진 한자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림과 그림 부호에서 상형 문자로의 탄생은 인류의 역사에서 불을 발견하거나 농경의 발명보다도 훨씬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한자는 대자연의 만물에 근거를 두었으며 사회 활동과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인간의 욕구에 부응하여 탄생하고 변화 발전하여 왔다. 그림에서 그림 부호로 발전하고 또 순수하게 부호화 되어 口頭 언어에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던 단어와 결합하여 완전한 형태의 한자가 탄생하기까지 수천 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인간이 기록해 놓은 초기의 원시 부호들은 대다수가 일상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었으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물건들이다. 이러한 객관적 사물의 묘사는 당시의 조건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의사 전달의 표현 방법이었다. 그러나 형태를 그려서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은 그린 사람의 시각과 능력에 따라, 혹은 지역과 시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므로 분명한 뜻을 전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일정한 형식으로 통일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그 수요에 부응하여 탄생한 것이 象形性의 문자이다. 상형 문자가 모두 같은 형태로 이루어지진 않았으나 이미 그림 부호의 수준을 넘어 기본적으로 통일된 형태와 의미를 갖추었다.

象形性의 한자에서는 표현하려는 의미를 그 부분만 나타내면 이해의 오해가 발생하므로 사회 구성원들끼리 약속을 정하여 형태를 정하기에 이른다. 예를 들어 발가락을 나타내려고 다섯 발가락만?? 처럼 그려서는 의사 전달에 오해가 있으므로?? 처럼 발바닥의 형태를 모두 그려서 ‘趾’자의 의미를 표현하였다. 象形性의 한자에는 이러한 종류의 글자와는 반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형태의 일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소를 표현하려 할 때 소의 전체를 그려서 생기는 오해를 막기 위해 소의 뿔이 양쪽에서 위쪽의 중심으로 올라가는 형상과 머리만?? 처럼 그려서 소(牛)를 표현했다. 반대로 양은 뿔이 아래쪽 밖을 향해 굽어 돌아간 형태를?? 처럼 묘사함으로써 양(羊)을 표현해 내었다. 이러한 글자들은 모두 사람들이 생활 현실에서 가장 가깝게 접하고 가장 필요로 하는 자연 형태의 물질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계의 만물이 고대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삶의 근원이었고 그것을 얼마나 잘 응용하는가에 따라서 삶의 질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한자는 사회 생활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물질부터 근거하여 만들었으며 꾸준히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의 생활 속에서 접하는 객관적 물질 형태 이외에 추상적 개념의 표현도 객관적 象形性 한자의 기본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본을 표현하기 위해 우선 나무의 근본인 뿌리를 생각해 내었고 따라서 먼저 나무를 나타내고?? 처럼 뿌리 부분에 점을 찍어 추상적 의미의 근본(本)의 표현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요구와 수요는 점점 더 많은 새로운 형태의 한자를 창조해 내기까지 이르렀다.

2. 六書에 의한 한자 造字法

서예는 한자를 근본으로 하여 출발한 예술의 한 영역이기 때문에 한자 造字의 이론이나 형태의 심미적 특징에 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한자의 형태에 관한 연구는 春秋 戰國시대에 이미 널리 유행하였다.『左傳·宣公十二年』에󰡒止戈爲武(‘止’자와 ‘戈’자가 합쳐서 ‘武’자가 되었다.)라 하였으며『左傳‧昭公元年』에도 “皿蟲爲蠱”(‘皿’자와 ‘蟲’자가 합하여 ‘蠱’자가 되었다.)라 하여 한자의 형태와 뜻에 대해 설명한 기록을 볼 때 당시에 이미 字形의 연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자의 형태와 造字法을 연구한 이론 가운데에서 가장 일찍부터 사용된 방법은 六書법이다. 六書는 한자의 자형을 연구하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이론일 뿐 아니라 가장 권위 있는 학설로 인정된다. 秦漢시대에 한자의 형태와 造字法에 관한 연구와 이론이 크게 번성하였으며 六書의 이론은 완전한 뿌리를 내리게 된다. 六書의 명칭은『周禮』와 劉歆의『七略』에 가장 먼저 기록하고 있으나 분명하게 어떤 내용인지는 전하지 않고 있다. 漢나라 시대의 班固는『漢書·藝文志』에서 “古者八歲入小學, 故周官保氏掌養國子, 敎之以書, 謂象形, 象事, 象意, 象聲, 轉注, 假借, 造字之本也.”(周나라 때에는 8세가 되면 소학에 들어갔다.『周禮』에 保氏가 귀족의 자제가 공부하던 곳을 관장하고 있을 때 六藝중의 하나인 書로서 교육하였다고 한다. 書의 內容은 六書로 象形, 象事, 象意, 象聲, 轉注, 假借로 글자를 만든 근본 법칙이다.)라 하여 六書의 造字 방법의 근본이라 설명하고 있다. 또한 鄭衆은『周禮·地官·保氏』의 注에서 “六書: 象形, 會意, 轉注, 處事, 假借, 諧聲.”이라 하여 六書의 한자 造字法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班固와 鄭衆이 전하는 六書의 명칭은 許愼의 六書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내용은 許愼이『說文解字·敍』에서 자세히 설명한 六書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許愼은『說文解字‧敍』에서 六書의 명칭뿐만 아니라 각각의 내용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글자를 예로 제시하였다. 따라서 許愼의 六書法은 현재까지 가장 널리 연구되어 가장 근거 있는 학설로 자리잡았다. 현대의 학자들은 六書에 의한 한자 造字法을 설명할 때 이름과 내용은 許愼의 학설을 기초로 하며 명칭의 순서는 대체로 班固가 배열한 차례를 표준으로 삼아 象形, 指事, 會意, 形聲, 轉注, 假借로 부르고 있다. 漢나라 시대 이후에도 六書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어 衛恒의『四體書勢』, 顧野王의『玉篇』, 陳彭年의『廣韻』, 鄭樵의『通志六書略』, 楊愼의『六書索隱』 등의 책에서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明나라 시대까지만 하여도 한자의 造字法에 관한 연구는 許愼이 다져 놓은 기초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며 六書法의 진정한 연구는 淸나라 시대에 이루어 졌다.

淸나라 시대에는 樸學이라 불리는 考證學, 文字學, 訓詁學, 金石學 등이 크게 발전함에 따라 한자의 造字法에 관한 연구는 더욱 활발해지고 눈부신 성과도 얻게 되었다. 이 시대에 六書法을 연구하여 완성한 저술은 段玉裁의『說文解字注』, 王筠의『說文句讀』, 朱駿聲의『說文通訓定聲』, 桂馥의『說文解字義證』등 ‘說文四大家’의 저술 이외에도 戴震, 羅振玉, 董作賓, 王國維 등 많은 문자학자가 한자의 造字法에 대해 연구하였다. 說文四大家 등이 六書法을 연구하여 얻은 이론 가운데 가장 특징 있는 내용은 ‘四體二用’의 이론이다. ‘四體二用’의 학설은 段玉裁의 스승인 戴震이『答江愼修論小學書』에서 처음 주장한 이론으로 象形, 指事, 會意, 形聲의 네 가지는 문자의 근본으로 造字 방법에 해당하고 轉注와 假借는 造字의 원리가 아니라 用字 방법 즉 문자를 응용한 방법으로 분류하였다. 이 ‘四體二用’의 학설은 한자의 造字法과 六書法 그리고『說文解字』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하며 권위 있는 이론으로 인정되며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許愼이『說文解字·敍』에서 논술한 六書에 의한 한자 造字法은 小篆의 형태를 근거로 하여 그 뜻의 근원을 탐구하였기 때문에 한자의 형태와 본래의 뜻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따라서 六書法을 이해하면 古體에서 今體로 서체가 변천한 경로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체의 예술적 본질까지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래에서 許愼의 六書法을 班固의 순서에 따라 造字 방법과 用字 방법의 기초는 무엇인지 그 속에 어떠한 예술적 본질이 내재되어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象形은 “畵成其物, 隨體詰詘, 日月是也.”(물체의 각기 다른 형상을 근거로 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체의 형상을 그렸는데 日, 月 등의 글자이다.)라 하여 자연계 사물의 가장 뚜렷한 특징을 그려서 표현한 한자라 하였다. 예를 들어 ‘火’자는 그 뜻이 불이 붙어 타오르는 형상으로 甲骨文에는 ?? , 金文에서는 ?? 등의 象形性 부호로 표현하였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종류의 한자는 그림에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실물의 형태와 매우 닮은 것이 특징이 있으나 그림보다 더욱 추상적이고 간략하며 부호화 되어 있다. 象形性이 있는 한자는 古體 서예의 형태와 구성에 기초를 제공해 주었으며 指事, 會意, 形聲에 의한 한자 造字法에 기본적인 소재가 되었다.

指事는 “視而可識, 察而見意, 上下是也.”(눈으로 보거나 자세히 고찰해 보면 뜻을 알 수 있는 것으로 上, 下 등의 글자이다.)라 하여 象形字와 달리 자세히 고찰하여야 그 뜻을 알 수 있는 추상적 한자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上’자는 甲骨文에서?? , ‘下’자는 ?? 로 긴 획을 사용하여 기준선을 설정하였고 다시 指事 부호인 짧은 획으로 위와 아래의 방위를 표시하였다. 指事字는 대부분 하나의 象形字와 하나의 상징적 指事 부호로서 뜻을 표시하였다. 象形字와 指事字는 모두 독립된 서체로 상형과 추상 그리고 상형과 추상의 심미적 특징이 서로 융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소재가 되었다. 古體에서 今體로 서체 변천의 혁명인 隸變이 있고 난 후에 서체의 象形性을 완전히 버리고서 순수한 예술의 한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指事字와 같은 추상적 造字法이 있었기 때문이다.

會意는 “比類合誼, 以見指撝, 武信是也.”(관련이 있는 두 글자를 합쳐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 글자를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는 武, 信 등의 한자이다.)라 하여 象形字나 指事字를 서로 합하여 새롭게 만든 한자를 설명하였다. 金文에서는 ‘武’자를?? 로 표현하여 止와 戈의 결합으로 설명하였다. 甲骨文에서는 ‘止’자를?? 로 한쪽 발을 표현했으며 ‘戈’자는?? ( )와 같이 兵器의 일종으로 표현하여 두 글자를 합쳐서 이루어진 ‘武’자가 武力으로 정벌한다는 뜻을 알 수 있게 하였다. 會意字의 창조는 몇 가지 구성 성분의 뜻을 종합하여 표현해 내는 능력을 증가시켰으며 偏旁의 탄생뿐만 아니라 그것의 자유로운 결합을 유도하여 한자 형태의 다양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形聲은 “以事爲名, 取譬相成, 江河是也.”(사물로서 글자의 뜻을 정하고 읽는 소리가 같거나 비슷한 것을 취하여 글자의 음을 표시하였다.)라 하여 뜻을 나타내는 形旁과 소리를 나타내는 聲旁을 조합하여 만든 한자를 형성자라 하였다. ‘江’자나 ‘河’자는 물을 나타내는 ‘水’자로 形旁을 삼았고 음을 나타내는 ‘工’과 ‘可’자를 조합하여 聲旁으로 삼았다. 形聲字 중에서 形旁과 聲旁을 조합하는 방법은 上形下聲, 下形上聲, 左形右聲, 右形左聲. 內形外聲, 外形內聲 등의 여섯 방법이다. 形旁과 聲旁에 의한 한자 造字法은 象形, 指事, 會意의 방법으로 만들 수 없는 동작이나 행위뿐만 아니라 느낌까지도 표현하고 형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한자가 무궁하게 창조될 수 있게 하였다. 수많은 형성자의 탄생은 한자 結體의 평형과 대칭, 변화와 규칙 등 조화의 미적 영역을 넓혀 서예 작품의 창작에서 다양한 結體와 結字의 구성을 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해 주었다.

轉注는 “建類一首, 同意相受, 考老是也.”(같은 종류의 글자는 하나의 부수 속에 속하며 뜻이 비슷하거나 같으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데 ‘考’자와 ‘老’자가 그러하다.)라 하였는데 許愼이 말한 ‘類’와 ‘首’가 무엇인지 의도가 분명하지 않아 후대 학자들의 매우 많은 정론을 불러 일으켰다. 許愼은 ‘考’자를 老의 뜻이라 하였고 또 ‘老’자를 考의 뜻이라 하였다. 이두 글자가 모두 ‘老’부에 속하며 음이 비슷하고 뜻은 서로 통한다고 설명하였으나『說文解字』의 六書法에 따르면 ‘老’자는 會意字이고 ‘考’자는 形聲자이다. 따라서 轉注의 뜻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轉注는 글자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글자를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

假借는 “本無其字, 依聲托事, 令長是也.”(본래 어떤 뜻을 기록하는 글자가 없었는데 이미 있는 글자의 소리를 빌어서 뜻을 의탁한 것으로 令, 長 등의 한자이다.)라 하여 소리는 있으나 쓰이는 글자가 없을 때 소리가 같은 한자를 대신 사용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秦나라 시대에 관직이 개편되면서 縣長의 관직이 생겨났으나 마땅한 호칭이 없었고 또 그것을 기록할 만한 글자가 없었다. 따라서 명령의 뜻이 있는 ‘令’자와 길다는 뜻이 있는 ‘長’자를 빌어 고을의 명령을 전하는 縣長과 縣令을 표시하였다. 한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虛辭도 대부분 본뜻과는 거리가 먼 假借字이며 외래어의 직역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것을 살펴볼 때 假借字도 한자의 造字 방법이 아니라 이미 있는 한자의 응용 방법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六書에 의한 造字法은 현재까지의 학설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학설이다. 漢나라 시대의 경학자이며 문자학자인 許愼의『說文解字』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초가 되며 한자의 자형을 小篆을 근거로 종합적으로 분석 기록한 문자학의 중요한 자료이다. 비록 許愼의 六書법으로 모든 한자의 자형을 분석해 낼 수는 없고 또 許愼 자신도 많은 부분에서 착오를 일으켰지만 문자학의 중요한 학설임에는 분명하다. 六書의 한자 造字法이 자형의 연구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六書의 이론은 서예가 추구하는 형태미의 분석에도 중요한 밑받침이 된다. 상형과 추상의 심미적 특징을 함유하고 있는 한자의 형태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인 서예의 창작과 한자의 造字法인 象形, 指事, 會意, 形聲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3. 한자의 예술적 요소

한자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객관적인 사물을 그리거나 추상적 개념을 부호로서 표현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는 즉 ‘以形見義’가 가장 근본적인 성질인 것이다. 象形字에 속하는 한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객관적 사물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였으며 서체가 변화하여 부호화 되었어도 象形字의 특성을 압축하여 표현하였기 때문에 그 공통점만 찾아내면 뜻을 알 수가 있다. 指事字, 會意字, 形聲字도 모두 象形字의 기초 위에서 출발하여 상징적 부호를 첨가하거나 혹은 몇 글자를 종합하여 글자의 뜻을 표현하였다. 따라서 글자의 모양을 자세하게 관찰하면 그 글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뜻의 대강을 알 수 있다.

한자가 형태를 살펴서 뜻을 알 수 있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형태는 곧 그 글자의 뜻이라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만약 한자가 象形性을 기초로 하지 않았으면 형태와 뜻은 별개의 것이 되었을 것이며 한자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 영역인 서예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이유는 비록 전 세계에 많은 표음 문자가 있으나 한자 문화권에 있는 문자를 제외하고는 서예가 성행하지 않은 것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자는 표음 문자와 달리 각각의 글자가 하나 이상의 고유한 뜻과 형태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 형태는 일정한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변화 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서체와 글씨를 쓰는 사람의 개성에 따라서 한자 특유의 자형의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기 때문에 서예로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순수한 예술로서의 서예가 탄생하기까지는 한자 서체의 수많은 변천을 기다려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象形性이 기초가 되었던 古體字 시대에는 사물의 객관성과 의미의 추상성을 객관화하는 한자 표현의 본질에 집중하게 되어 표현 행위에 작가의 개성과 사상을 담아 내기가 어려웠다. 秦나라 시대를 전후하여 서체 변화의 혁명인 隸變이 있은 후 今體字의 여러 서체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象形性을 버리고 완전하게 부호화 하였다. 부호화 된 한자를 쓰는 표현 행위에서는 한자의 약속된 기본적 結字만 이루어지면 읽고 뜻을 이해 할 수 있으므로 쓰는 사람의 심미적 요구에 따라 자형을 다양하게 변화 할 수 있었다. 또한 결구의 다양한 변화를 기초로 하여 筆劃에 작가의 심미적 표준 뿐 아니라 사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순수한 예술의 영역인 서예로 탄생할 수 있었다.

한자의 象形性은 객관적 사물의 자연미와 생동감을 표현하는 기초가 되었다. 서예 창작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심미적 범주를 자연계의 만물과 그 변화의 법칙에서 찾는 것은 한자의 근본이 만물에 있기 때문이다. 漢나라 시대의 蔡邕은『九勢』에서 “夫書肇於自然. 自然旣立, 陰陽生焉; 陰陽旣生, 形勢出矣.”(서예는 자연계 만물의 아름다움을 기초로 한다. 자연 만물이 존재하고 陰陽이 생겨났으며 음양이 존재한 후 형세가 생겨났다.)라 하여 자연계의 만물이 서예의 근본임을 설명하였다. 晉나라 시대 衛鑠이『筆陣圖』에서 筆劃을 ‘千里陣雲’(하늘에 길게 늘어선 구름), ‘高峰墜石’(높은 봉우리에서 떨어지는 바위), 萬歲枯藤(오랜 세월을 산 등나무) 등에 비유하여 묘사한 것도 象形性과 그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이 서예의 기본이라는 설명이다. 형태미는 서예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심미적 특징으로 서예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이다.

서체의 변천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변화하는 것은 한자의 외형으로 象形性이 점점 줄어들면서 그것을 대신하는 부호가 증가하였다. 먼저 筆劃은 곡선을 기본으로 하는 형태에서 직선으로 변화하였으며 따라서 字形도 자연스럽게 둥근 형태에서 네모진 형태로 변화하였다. 편방의 위치나 형태도 글자별로 일정한 규칙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마침내 완전히 부호화 된 새로운 형태의 한자가 탄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古體字에서는 ??‘ ’(心)으로 표현되던 偏旁이 ‘情’, ‘恭’, ‘志’자 등에서는 ‘忄’, ‘㣺’, ‘心’으로 쓰였고 ??‘ ’(水)로 쓰이던 偏旁이 ‘泰’, ‘湖’, ‘泉’자 등에서 ‘氺’, ‘氵’, ‘水’로 각각 다르게 쓰이고 있다. 偏旁의 이러한 변화와 통일이 부호화 된 사각형 형태의 한자 속에서 균형과 조화의 심미적 법주를 탄생시켜 서예의 창작 범위를 넓힐 수 있게 되었다.

부호화 된 한자를 대상으로 창작하여 표현된 작품에서는 한자의 외형이 직접적으로 어떠한 뜻을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형태의 미와 작가의 정신을 먼저 볼 수 있다. 한자의 추상적 부호가 나타내는 뜻은 그 원류를 유추하여 귀납할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으로 서예의 창작과 감상에서 직접적 대상은 아니다. 만물의 형태와 내재된 심미적 특징을 표현하는 것이 서예 창작의 외형이라면 작가의 정신과 영혼을 자연계의 객관적 혹은 추상적 개념과 연관시켜 표현하는 것은 서예 창작의 내면 세계라 할 수 있다. 南齊시대의 王僧虔은『筆意贊』에서 “書之妙道, 神彩爲上, 形質次之, 兼之者方可紹於古人.”(서예의 오묘한 도리는 작품 내면의 정기를 으뜸으로 하고 필묵의 형태는 그 다음이며 두 가지를 겸비하여야 옛 성현을 계승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이라 하여 작품의 내면에 존재하는 작가의 정신이 형태보다 먼저이며 형태와 내면의 정신이 모두 충족할 때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고 하였다. 서예가 한자의 부호화 된 筆劃과 형태를 통하여 작가 내면의 사상과 철학을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순수한 예술 영역의 한 부분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서예의 창작은 한자의 형태를 근본으로 筆劃, 結字, 結構, 布置, 章法, 筆法 등의 기술적 요소를 이용하여 자연계에 존재하는 만물의 심미적 특징을 작가의 예술성과 조화시켜 표현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서예 작품을 창작하거나 비평할 때에 한자를 분명하게 기록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었고 그 다음에 기법이며 마지막으로 작가의 사상과 정신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서예는 곧 자연과 작가의 만남을 한자의 형태를 빌어서 표현해 내고 있는 藝術이다. 즉 작품의 형태를 보고 작가의 예술적 자질뿐만 아니라 사상과 철학 등의 정신 세계 알 수 있는 예술이다. 이와 같은 특징은 한자의 기본 성질이 형태를 살펴서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예는 작품을 보고서 작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淸나라 시대의 劉熙載가『書槪』에서 “書如其人”(서예는 곧 그 사람이다.)라 하여 서예의 근본에 대해 설명한 것이 바로 한자의 ‘以形見義’와 같은 서예로서 사람을 보는 즉 ‘以書見人’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중국과 서예
글쓴이 : 금릉산방인 소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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