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안견-몽유도원도
2012. 1. 7. 10:53ㆍ한국의 글,그림,사람
<!-by_daum->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安平大君)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조선초기부터 중기까지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산수화에 특히 뛰어났고 초상화·사군자·의장도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재 그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은 몇 점 있으나, 정확히 그의 그림으로 확정된 것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유일하다. 안견의 생애 안견(安堅 ?-?)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의 본관은 지곡(池谷)이고, 자는 가도(可度)·득수(得守), 호는 현동자(玄洞子)·주경(朱耕)이다. 다만 그가 세종 때 도화원(圖畵院) 종6품인 선화(善畵)에서 체아직(遞兒職)인 정4품 호군(護軍)으로 무리하여 승진한 것을 보면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고, 또 세종이 그를 얼마나 총애하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화원이었던 탓인지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안견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세종이 안견에게 궁중의 의전절차 등을 기록하는 기록화인 [대소가의장도(大小駕儀仗圖)]를 그리게 하여 이를 책으로 남겨 의장행사 때 참고하도록 하게 했다는 것이 있다. 이후에 그에 대해 언급된 실록의 기록은, 모두 후대의 화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안견을 기준으로 그림 실력이 안견만도 못한데 더 높은 벼슬을 하려고 하니 심히 외람되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과거에 급제까지 했는데도 화원의 아들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안견이 일했던 도화원은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한성부 중부 견평방(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안견이 살았던 세종 때는 최고 5품까지 오를 수 있는 관청이었으나, 1471년(성종2년)에 도화서로 이름이 바뀌고 부서가 격하되면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화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은 종 6품 별제(別提)까지였다. 화원이 오를 수 있는 벼슬자리에 한계가 있다보니 자연히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신분적으로 양반보다 낮은 사람이거나 혹은 이에 종사하면서 신분이 낮아지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안견의 경우도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그 아들에게 화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보면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도화원(圖畵院)의 ‘도(圖)’는 실용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국가 행사의 기록화나, 복식이나 물건을 묘사하여 설명하는 그림을 말하고, ‘화(畵)’는 왕실의 초상화와 같은 인물화나 산수, 화조(花鳥) 등등의 그야말로 회화를 뜻한다. 조선시대의 그림은 양반들이 취미로 그리는 사대부화와 안견을 비롯한 화원들이 그리는 그림으로 나뉘어진다. 사대부들 중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었던 관계로, 화원은 신분적으로는 양반에 미치지 못했지만 양반과 친분을 맺고 교유(交遊)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견 또한 여러 사대부 양반들과 친분을 유지하였고 특히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과는 인연이 깊었다. 몽유도원도를 그리다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현전하는 것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유일하다. 이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기초로 그려졌다. 안견은 안평대군의 후견으로 안평대군이 소장한 중국그림을 많이 보고 공부하여 자신의 화풍을 만들었다. 안견은 중국 북송(北宋) 때의 대표적 화가였던 곽희(郭熙)의 화풍을 토대로 하고 그밖의 여러 가지 다른 화풍을 수용하여 자기 나름의 독특한 양식을 이룩하였다. [몽유도원도]는 안견의 이러한 화풍을 확연히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1447년 안평대군은 꿈에 박팽년과 더불어 복숭아밭에서 노닌 황홀한 꿈을 꾸고 안견에게 이를 이야기해주면서 그림을 의뢰하였다. 이 꿈 이야기는 도연명의 [도화원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들은 안견은 3일 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하였다. 몽유도원도란 꿈에 복숭아밭에서 논 이야기를 그렸다는 뜻이다. |
|
출처 : dolphin
글쓴이 : 돌고래 원글보기
메모 :
</!-by_daum->
'한국의 글,그림,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조선의 르네상스를 그리다 - 단원 김홍도 ( 브금 有 ) (0) | 2012.01.07 |
---|---|
[스크랩] 왕실의 광대가 되기를 거부했던 화가 최북 (0) | 2012.01.07 |
[스크랩]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0) | 2012.01.07 |
<長毋相忘> (0) | 2012.01.07 |
[스크랩] 국보 180호, 세한도에 숨은 비밀 (0) | 2012.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