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0. 14:48ㆍ世說新語
황종택의新온고지신] 인생도처지하사(人生到處知何似)
가을비 그치더니 낙엽이 수북하다. 날씨도 부쩍 쌀쌀해졌다. 저무는 한해를 느낄 정도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초입, 만추(晩秋)다. 세상은 아직 가을인데, 겨울이 호시탐탐 고개를 들이민다.
맑은 하늘에 느닷없이 먹구름을, 가을 산들바람이 아닌 모든 걸 날려버릴 듯한 차가운 바람을 몰고! 이맘때는 날이 맑다가도 어느 순간 추위가 밀어닥칠지 알 수 없다. 하긴 입동(立冬)이 내일이니 그럴 만도 하다.
가을과 겨울의 싸움은 이렇게 밀고 댕기는 맛이 있지만, 하루해가 짧아지는 게 날마다 눈에 보인다. 저녁 해가 금방 지고 아침은 더디 온다. 아침저녁에는 문밖을 나서기 꺼릴 만큼 바람이 차다. 무서리에 끄떡없이 푸르던 뽕잎도 모두 떨어지고, 가을꽃도 시들었다. 마른 덤불 사이로 새떼가 바삐 나는데 빨간 찔레 열매, 노박덩굴과 망개 열매가 세월의 덧없음을 말해준다.
늦가을, 결실 이후 별리(別離)의 애잔함을 이백(李白)은 시 ‘세 자, 다섯 자, 일곱 자(三五七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가을바람 맑고(秋風淸)/ 가을 달 밝은데(秋月明)/
낙엽 모였다 다시 흩어지고(落葉聚還散)/
주린 까마귀 깃들였다가 다시 놀라 퍼덕이네(寒鴉棲復驚)/
그리운 이 다시 만날 날 그 언제일꼬(相思相見知何日)/
이때 이날 밤 이별의 정 나누기 힘드네(此時此夜難爲情).”
물 흐르듯 지나가는 게 시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즈음이면 왠지 우울해진다.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아왔는가. 우리의 소회를 ‘당송팔대가’인 소동파(蘇東波)는 시 ‘면지에서 옛 일을 회상하며 자유에게 화답함(和子由沔池懷舊)’을 통해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은 무엇과 같을까(人生到處知何似)/
마치 날아간 기러기가 눈 진흙을 밟는 것 같겠지(應似飛鴻踏雪泥)/
진흙 위에 우연히 그 발자국이 남겠지만(泥上偶然留指爪)/
기러기 날아가면 다시 동서를 헤아릴 수 없네(飛鴻那復計東西).”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소장
人 사람 인, 生 날 생, 到 이를 도, 處 곳 처, 知 알 지, 何 어찌 하, 似 닮을 사
정처없는 우리인생 무었과 같은지 아시는가
기러기가 눈 진창위를 배회하는 것과 같으리
진흙 위에 어쩌다가 발자국을 남기겠지마는
기러기가 날아가버리면 간 곳을 어찌 알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