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5. 17:50ㆍ나의 이야기
아름다운 스승, 무위당 장일순

최정환은 원주의 번화가에서 ‘천석’이라는 밥집을 하고 있다. 그 밥집을 시작할 때 장일순은 최정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니가 여기서 손님을 하늘처럼 섬기며 쟁반을 3년만 나르다 보면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 될 것이다. 아주 큰 도인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는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리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하늘의 일로 여기고 늘 마음 챙기기에 거짓이 없으면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서 큰 깨우침을 얻을 수 있으리라. 크게 자랄 수 있으리라.
설날에 원주 시장이 장일순에게 새해 인사를 와서 돈이 든 봉투 하나를 놓고 갔다. 장일순은 안 받으려 했으나 시장은 막무가내였다. 시장이 돌아가고 바로 뒤로 천주교 벽지 보건팀에서 여럿이 함께 장일순에게 세배를 하러 왔다. 세배를 주고받은 뒤 장일순이 곁에 놓여 있는 봉투를 집어 그들에게 주며 말했다.
“이 거, 시장님이 여러분에게 드리라고 놓고가신 거야. 갖다 잘 쓰세요.”
벽지 보건팀은 그런 줄 알고 봉투를 받아들고 장일순의 집을 나왔다. 그리고 얼마 뒤에 어떤 모임에서 벽지 보건 팀의 리더인 독일 사람 지그리드 지그버드가 원주 시장을 만났다. 돈 봉투 생각이 나서 지그리드는 고맙다고 시장에게 인사를 했다. 그 일 있은 뒤로는 원주 시장이 봉투 가져오는 일이 없어졌다 한다.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고, '녹색평론'의 발행인인 김종철이 단 한 번을 보고 홀딱 반했다는 사람. 목사 이현주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이라 했고,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이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 했던 사람. 소설가 김성동과 '아침 이슬'의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기고, 판화가 이철수가 진정한 뜻에서 이 시대의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 꼽는 사람. 일본의 사회평론가이자 기공 지도자인 쓰무라 다카시가 마치 '걷는 동학' 같다고 했던 사람. 그의 장례식에 조문객이 3천 명이나 모였다는 사람.
궁금하다. 장일순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렇게 여러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장일순은 20대 초반에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계를 하나의 연립 정부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원 월드 운동'에 참여했다. 20대 중반에는 김재옥,김종호, 이종덕, 장윤, 한영희 등과 함께 원주에 대성중고등학교를 세웠고, 30대 초반에는 '참여해서 나라를 바로 세우자'는 생각 아래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인 부정 선거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삼십 대 중반에는 미국이나 소련의 간섭을 받지 않고 통일을 해야 한다는 '중립화 평화통일론'이 빌미가 되어 정치범으로 3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3년간의 옥살이는 장일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감옥은 장일순에게 더 이상 정치에는 관여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 가르침에 따라 장일순은 그 뒤로 '파워 게임과 야합이 판을 치는 정치판'보다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밑바탕에서 돕는 일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 아래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출옥한 뒤로도 장일순은 오랫동안 사회안전법과 정치정화법에 묶여 공적이든 사적이든 모든 활동에서 철저한 감시를 받아야 했는데, 그 때 장일순은 서울로 유학을 가며 그만 둔 붓글씨를 다시 시작했다. 장일순에게 붓글씨는 감시의 눈길을 피하기 위한 한 방편이자 마음을 닦는, 말하자면 묵선墨禪이었다.
그처럼 운신이 편치 않은 속에서도 장일순은 1960년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자립해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인 신용협동조합의 설립과 정착을 도왔고, 70년대에는 천주교 원주교구의 주교였던 지학순과 손을 잡고 원주가 앞장서서 비판정신을 갖고 부패한 정치권을 일깨우거나 때로는 저항하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그 주춧돌 구실을 했다. 80년대에는 정치 투쟁이 아닌 생활운동을 통한 사회운동을 이끌었고, 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 걸쳐서는 천지만물을 한 생명으로 보는 한살림의 세계관, 곧 생명의 세계관을 이 땅에 태동시켰다. 또한 해월 최시형을 우리 겨레의, 아니 전 세계의 스승으로 발굴해 소개한 것도 장일순의 큰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장일순은 이런 일을 아무런 직함도 갖지 않고, 요컨대 평생 돈벌이 한 번 하지 않고 했는데도 부부간이나 가족이 대단히 화목했다는 사실이다. 장일순은 제가와 평천하를 어디 한 군데 모나지 않게, 힘든 사람이 없도록 잘 아울렀다.
거기에는 가문의 힘도 있었다. 장일순은 3대를 통해 핀 꽃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거지에게 적선을 할 때도 반드시 두 손으로 드리도록 엄하게 가르쳤고, 할아버지는 먼저 죽은 손자의 상여를 향해 절을 했던 흔히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원주초등학교와 원주농업고등학교 부지는 부유했던 그의 할아버지가 희사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일순과 그의 할아버지를 '낙타를 타고 바늘 구멍을 빠져나간 사람'이라고 말한다.
말년의 장일순은 자신의 여성성을 활짝 꽃피운, 여자보다 더 여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한없이 부드러웠다. 부드럽되 한 마디, 한 행동은 만인의 스승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는 세상을 늘 바로 보았고, 앞서서 보았다. 그런 장일순을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힘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그의 집은 일년 내내 빌 틈이 없었다.
생각과 말씀들
1. 거지에게는 행인이, 장사꾼에게는 손님이-고객이 하느님이다.
그런 줄 알고 손님을 하느님처럼 잘 모셔야 한다.
누가 당신에게 밥을 주고 입을 옷을 주는지 잘 봐야 한다...
학교 선생님에게는 누가 하느님인가? 그렇다. 학생이다.
공무원에게는 누가 하느님인가? 지역 주민이다.
대통령에게는 국민이 하느님이고, 신부나 목사에게는 신도가 하느님이다.
2. 부드러움’이야말로 개인의 소망이자 죽어가는 현대 문명을 부활시키는 길...
3.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맡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향기는 절로 퍼져나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바라는 것 없이 그 일을 하고 가는 것이다.
그 길밖에 없다.
4.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아, 수행하라는 보다.’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게 좋다.
그것이 바닥을 기어서 천 리를 가는 것이다.
납작 엎드려서 겨울을 나는 보리나 밀처럼 한 세월 자신을 허물고 닦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봄날은 온다. 겨울에 모가지를 들면 얼어 죽는다.
5. 브라보콘은 만드는 쪽에서는 생산비에 광고비까지 포함해서 값을 정해 파는데,
쌀은, 농산물은 누가 가격을 매기느냐? 생산자들이 가격을 못 매긴다.
6. 다르샨... 친견, 곧 직접 뵙는다...
어떤 일로 크게 깨우치거나 누군가에게 전폭적인 믿음이 갈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럴 때는 다 버리고, 시작하면서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
7. 판관이 되는 법이 없다. 그냥 동료가 되어준다. 한패가 되어준다.
8. 그 말이 옳으면 누구 얘기든 바로 듣다.
9. 一合星... 一人一口曰生... 한 사람이 한 입씩, 그것이 곧 삶이다.
10. 안빈낙도... 도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함이 문제가 안 된다.
밥 한 그릇에 김치 한 사발만 있어도 그밖에 더 바랄 것이 없다.
11. 앞에 나서지 마라. 앞에서는 안 보인다. 한 발 물러서면 넓다.
12.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놓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다.
주객이 바뀐다. 아픈 사람 앞에서 제 문제로 고민한다.
그게 그분(장일순)의 삶이다. 늘 그랬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13. 대표 혹은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은 어머니가 되는 거다.
밥 주고, 옷 주고, 청소해 주고 해야 해. 위에서 시키고 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밑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아래에서 일을 해야 한다.
14. 친구가 똥물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바깥에 선 채 욕을 하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 쉽다. 대개 다 그렇게 하며 산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는 같이 똥물이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서 여기는 냄새가 나니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면
친구도 알아듣는다. 바깥에 서서 입으로만 나오라고 하면 안 나온다.
15. 사회를 변혁시키려면 상대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상대는 소중히 여겼을 적에만 변한다.
무시하고 적대시하면 더욱 강하게 나오려고 하지 않을까?
상대를 없애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 다르다는 것을
적대 관계로만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것이 옳다고 하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틀을 갖고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만 판을 짜려고 하는 걸로는 세상의 큰 변화는 어렵다.
16. 정말 일류 대학 나온 사람은 오래 못 견디고 떠나는 일이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래도 견디며 해낸다.
17. 사과를 하기도 어렵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오래간다.
18. 사람들은 비폭력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이 만들어낸 문제들이 투쟁을 통해서 해결되리라고
믿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현실성 없는 순진한 생각이다.
19.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달이 나이고 해가 나이거늘 분명 그대는 나일세.
20. 엄청난 일을 해놓고도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지신 분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모른다.
21. 山不如無... 산조차 없는 것만 못하다.
22. 대통령이면 뭐하고, 부자면 뭐하랴.
가슴에 뭘 두고는 행복하지 않은걸!
23. 사람이 만든 것은 다 쓰레기다.
언젠가는 다 쓰레기가 돼 버린다.
24. 믿음을 생명이란 말로 바꿔 보자.
그럼 훨씬 뜻이 분명해진다.
25.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미어 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다.
26. 큰비가 오는 바람에 강이 흙탕물이 됐다고 하자.
그 물, 그 흙탕물을 다시 맑은 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어?
나라면 물속에 들어가 물과 함께 흘러가겠어. 함께 가며 맑아지는 거지.
27. 거침이 없으되 평등한 눈! 아이들의 눈이 예가 된다.
어린아이도 어릴수록 좋다. 거짓이 안 통한다.
28. 앞에서 끌려고 하지 마. 힘만 들고 안 돼.
사람들에게 밀려가도록 해야 돼. 그러면 힘이 안 들고 일이 되게 돼 있어...
억지로 끈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어린아이도 제 마음이 내켜야 따라온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부모를 밀어가며 신이 나서 한다.
29. 적이라도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빌어야 한다.
진짜 얻어야 하는 것은 누굴 이기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삶이기 때문이다.
30. ‘통렌(tonglen)'의 ‘통’은 내보낸다는 뜻이고‘렌’은 들이마신다는 뜻이다.
숨이 들이쉴 때는 세상의 온갖 무겁고 어둡고 더러운 것을 자기 몸으로 받아들이고,
내쉴 때는 반대로 가볍고 환하고 깨끗한 것을 세상에 주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나날의 삶 속에서 하는 것과 반대다.
그러므로 수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하되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야 한다는 게 이 수행의 원칙이다.
31. 저녁밥을 먹은 집도 조합원 집이었고,
몸 파는 여자까지 조합원인 데는 손발 다 들겠더라고.
원주 사람들이 모두 한 가족처럼 우애 있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어.
32. 살다 보면 넘어지거나 엎어질 때가 있다. 누구나 다 그렇다.
그때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몇 번이라도 다시 일어나야 된다.
끊임없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것이 말하자면 ‘부활’이다.
33. 자꾸 떨어져도 괜찮다. 떨어져야 배운다.
댓바람에 불어버리면 좋을 듯하지만 떨어지며 깊어지고,
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법이다. 남 아픈 줄도 알게 되고…….
34. 사람들은 24시간에 부림을 당하지만 나는 그 24시간을 부린다.
35. 길을 가다 보면 포장마차에 ‘군고구마 팝니다, 붕어빵 팝니다.’ 하고
써 놓은 글이 있다. 그런 글이 정말로 살아 있고 생명력이 있는 글이다.
꼭 필요한 글이다.
36. 잘 쓰려는 생각을 싹 버린 마음으로 쓰라는 것이다.
거기 생각은 하나도 없고 다만 정성만이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37. 화해는 우리의 일체의 권리와 조건들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적대자들 가운데서 우리 자신들을 본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적대자는 무지함 가운데 있기 때문이며,
우리 자신들 또한 많은 일들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로지 사랑이 넘치는 자비와 올바른 자각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38. 무릇 내가 난초를 그리고, 대나무를 그리고, 돌을 그리는 것은
천하의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함이지, 천하의 편안하고 형통한 사람들에게
바치고자 함이 아니다.
철저하면서도 조금도 철저하지 않은, 그저 일상생활이 되어버리는 이런 인간의 크기 말입니다. 그런 크기를 지니고 사회에 밀접하면서도 사회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속에 있으면서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시키면서도 본인은 항상 그 밖에 있는 것 같고,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고, 밖에 있으면서 인간의 무리들 속에 있고, 구슬이 진흙탕에 버무려 있으면서도 나오면 그대로 빛을 발하고 하는 그런 사람은 이제 없겠지요. - 리영희 (언론인, 전 한양대 교수)
무위당 선생은 우리더러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거나, 무엇을 하라고 직설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또 선생은 우리가‘살아남기 위해서’지금 당장 어떤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하게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선생은 다만 세상에 살아있는 존재들과의 근원적인 공감과 대화를 통해서, 개인이 어떻게 참된 행복에 도달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를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부드러운 음성으로 차근차근 말할 뿐이다 … 그 가르침은 세상에 대해 나를 주장하기 전에 다른 존재들의 소리에 깊이 귀를 기울여보라는 말씀일진대, 저마다의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자기주장이 넘치고 넘쳐 세상이 온통 화탕지옥(火湯地獄)이 되어있는 오늘의 삶의 현실에서 이보다 더 절실한 가르침이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출처: http://walkinginbeauty.tistory.com/15 [walking in bea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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