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개李塏

2018. 5. 1. 10:37성리학(선비들)

이개

동의어 청보(淸甫), 백고(伯高), 백옥헌(白玉軒), 충간(忠簡) 다른 표기 언어 李塏                        


시대 조선
출생1417년(태종 17)
사망1456년(세조 2)
경력 집현전부제학
유형 인물
직업 문신
대표작 육신전
성별
분야 역사/조선시대사
본관 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요약 1417(태종 17)∼1456(세조 2). 조선 전기의 문신.

목차        

  1. 개설
    1. 생애 및 활동사항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청보(淸甫)·백고(伯高), 호는 백옥헌(白玉軒). 제6대왕 단종을 위해 사절(死節)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이색(李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중추원사 이종선(李種善)이다. 아버지는 이계주(李季疇)이며, 어머니는 진명례(陳明禮)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태어나면서 글을 잘 지어 할아버지의 유풍(遺風)이 있었다. 1436년(세종 18) 친시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고, 1441년에 집현전저작랑으로서 당나라 명황(明皇)의 사적을 적은 『명황계감(明皇誡鑑)』의 편찬과 훈민정음의 제정에도 참여하였다.

      1444년 집현전부수찬으로서 의사청(議事廳)에 나가 언문(諺文: 國文)으로 『운회(韻會)』를 번역하는 일에 참여해 세종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 1447년 중시 문과에 을과 1등으로 급제하고, 이 해에 『동국정운』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48년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 이보흠(李甫欽)이 조정에 사창(社倉)의 설치를 주장했을 때 백성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문종이 어린 왕세자를 위해 서연(書筵)을 열어 사(師)·빈(賓)의 상견례를 행할 때에 좌문학(左文學)의 직책으로서 『소학』을 진강(進講)했는데, 문종으로부터 세자를 잘 지도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1453년(단종 1) 10월에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을 보좌하던 대신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쥔 이른바 계유정난을 일으켜 이 거사에 참여한 공신을 책정할 때, 환관 엄자치(嚴自治)와 전균(田畇)이 공로가 있다는 이유로 공신에 기록하고 봉군(封君)까지 하려고 하였다.

      집의로서 좌사간인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환관의 폐해가 망국패가에 이르게 한 옛날의 예를 들어서 이들에게는 재백(財帛)으로 상만 내리고 공신과 봉군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힘써 아뢰었다. 이 해 12월에는 글을 올려 근일에 시정(時政)의 몇 가지 일로써 여러 번 임금에게 아뢰었으나, 한가지도 윤허를 받지 못하므로 사직하기를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456년(세조 2) 2월 집현전부제학에 임명되었다. 이 해 6월에 성균관사예 김질(金礩)의 고변으로 성삼문 등 육신(六臣)이 주동이 된 상왕의 복위 계획이 발각되었는데, 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유응부(兪應孚)·유성원(柳誠源)과 함께 국문을 당하였다. 이 때 이개는 작형(灼刑)을 당하면서도 태연했다고 한다.

      성삼문 등과 함께 같은 날 거열형(車裂刑)을 당했는데,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갈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우정(禹鼎: 夏나라 우왕이 9주의 쇠를 거두어 9주를 상징해 만든 아홉 개의 솥)처럼 중하게 여길 때에는 사는 것도 또한 소중하지만·홍모(鴻毛: 기러기의 털, 즉 아주 가벼운 물건의 비유)처럼 가벼이 여겨지는 곳에는 죽는 것도 오히려 영광이네·새벽녘까지 잠자지 못하다가 중문 밖을 나서니·현릉(顯陵: 문종의 능)의 송백이 꿈속에 푸르고나!” 이 때 이개의 매부인 전 집현전부수찬인 허조(許慥)도 단종 복위의 모의에 참여해 자결하였다.

      사후에 남효온(南孝溫)이 당시 공론(公論)에 의거해, 단종 복위 사건의 주도 인물인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6인을 선정, 「육신전(六臣傳)」을 지었다. 이 「육신전」이 세상에 공포된 뒤 육신의 절의를 국가에서도 공인, 1691년(숙종 17)에 사육신의 관작을 추복(追復)시켰다.

      이개의 작품으로는 몇 편의 시가 전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까마귀 눈비맞아 희난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라는 단가(短歌)가 있다.

      1758년(영조 24)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노량진의 민절서원(愍節書院), 홍주의 노운서원(魯雲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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