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초서간찰읽기11. 새 차(茶)는 어찌하여 돌샘, 솔바람 사이에서 혼자만 마시며

2017. 7. 27. 16:57간찰

 

 

 

 

 

      

타이틀
   

 

 

    초서간찰읽기11. 새 차(茶)는 어찌하여 돌샘, 솔바람 사이에서 혼자만 마시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초의대사(草衣大師)에게 서간(書簡)의 별지(別紙)

이전에 연재한 10회 서간의 별지(別紙)

 

 

 

 

 

 

<전문 해석>

 皮封 : 艸衣大師  梵展 
新茶 何以獨喫於石
泉松風之間 了不作遠
想耶 可以痛棒
三十矣 
新蓂玆奉寄 第
作竹中日月也 
縞衣無恙 自欣向熏
亦安好 各有蓂及 
分傳 亦及此遠欵也 
金世臣許 一曆亦及 

① 새 차 어찌하여 돌샘, 솔바람 사이에서 혼자만 마시며 도무지 먼 사람 생각은 아니하는 건가. 삼십 대의 봉(棒)을 아프게 맞아야 하겠구려. 

 


② 새 책력은 부쳐 보내니 대밭 속의 일월(日月)로 알고서 보오. 


호의(縞衣)는 아무 탈이 없으며 자흔(自欣)과 향훈(向熏)도 역시 편안한지요. 각각 책력을 보내니 나누어 전해주고 또한 이 먼 마음을 말해 주기 바라오. 


김세신(金世臣)에게도 책력 한 권이 미쳐가도록 해주오. 


 

<풀이>
   추사초의(草衣)에게 보낸 서간(書簡)의 별지(別紙)이다. 이는 《완당전집(阮堂全集)》 5권 「초의에게 줌[與草衣]」 32에 실려 있다. 

 

   이상 추사의 친필 2건은 《나가묵연(那迦墨緣)》이라는 서첩(書帖)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초의대사(草衣大師)에게 보낸 친필 서간(書簡) 17건을 모아 첩(帖)으로 만든 것이다. ‘나가(那迦)’는 범서(梵書)로 용(龍)을 뜻한다. ‘묵연(墨緣)’은 필묵(筆墨)으로 맺은 인연(因緣), 즉 여기서는 서로 왕복(往復)한 서간(書簡)을 가리킨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서간은 문집에 38건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첩에 9건이 실려 있다. 제 26신과 32신은 이들은 문집과는 앞뒤로 달리 피봉(皮封)과 별지(別紙)가 첨부된 것은 물론, 끝에는 발신 일자와 서명(署名)이 적혀 있다. 몇 년 전에 어떤 인연으로 친필을 보게 된 기억을 되살리며 차(茶)를 주고받은 사연이 담긴 몇 편을 소개한다. 

 

 

 

 

 


① 새 차 어찌하여 돌샘, 솔바람 사이에서 혼자만 마시며 도무지 먼 사람 생각은 아니하는 건가.
삼십 대의 봉(棒)을 아프게 맞아야 하겠구려. 

* 삼십 대의 봉(棒) : 당두봉갈(當頭棒喝)의 준말로, 선사(禪師)가 제자의 깨달음을 유도하기 위하여 언어 대신에 파격적으로 보여 주던 일종의 선기(禪機)이다. 덕산 선사(德山禪師)의 몽둥이와 임제 선사(臨濟禪師)의 고함소리라는 뜻의 ‘덕산방 임제할(德山棒臨濟喝)’이 유명하다. 

 

 


② 새 책력은 부쳐 보내니 대밭 속의 일월(日月)로 알고서 보오. 


* 신명(新蓂) : 새해의 책력(冊曆). 요(堯)임금의 뜰에 명협(蓂莢)이라는 풀이 났다고 하는데,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하루에 한 잎씩 생기고, 보름이 지난 후 그믐까지는 하루에 한 잎씩 져서 일력(日曆)의 역할을 했다 한다

 

 

 

 



호의(縞衣)는 아무 탈이 없으며 자흔(自欣)향훈(向熏)도 역시 편안한지요. 
각각 책력을 보내니 나누어 전해주고 또한 이 먼 마음을 말해 주기 바라오. 

* 호의(縞衣) : 시오(始悟, 1778∼1868). 조선 후기의 승려. 어릴 때 이름은 계방(桂芳), 호는 호의(縞衣). 속성은 정씨(丁氏). 전라남도 보성 출신.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초의(草衣)·하의(荷衣)와 더불어 삼의(三衣)라 불리었다. 


* 자흔(自欣) : 만휴 자흔(萬休 自欣, 1804~ 1875). 스님의 법명은 자흔(自欣)이고, 만휴(萬休)는 법호이다. 성은 서씨(徐氏). 호는 만휴(萬休). 전라남도 영암 출신. 어려서 고아가 된 뒤 두륜산 대흥사(大興寺)로 들어가서 17세 때 탁권(卓權)을 은사로 하여 삭발하고 선사 윤훤(允暄)의 법을 이었다. 의순(意恂)에게 선을 배우고 승달사(僧達寺)의 화담(華潭), 운흥사(雲興寺)의 대운(大雲), 불호사(佛護寺)의 인곡(仁谷)에게 경론을 배워서 선과 교에 통달하였다. 그 뒤 대흥사 만일암(挽日庵)에서 법회를 주관하여 많은 제자를 지도하였는데, 당시의 대표적인 강백(講伯)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전법(傳法) 제자로는 영준(永俊)이 있고, 전계(傳戒) 제자로는 광준(廣俊) 등이 있다. 대흥사 신월암(新月庵)에서 입적하였다. 


* 향훈(向熏) : 당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 추사 등과 교유하던

 전라도 대둔사(大芚寺)에 거처하던 승려의 법명(法名)이다. 



 

 

 

 


④ 김세신(金世臣)에게도 책력 한 권이 미쳐가도록 해주오.

 

 

 

 


(皮封) 艸衣大師  梵展 


 

 

 

 

<난해한 초서>

 耶- 3행   

왕헌지王献之 왕헌지王献之  왕자王慈 


  奉- 5행  

왕의지王義之  문징명文徵明  미불米芾  

 

 


 

글/ 무불거사 관리자
업데이트
2015.12.18 05:59

 

 



 “그대는 ‘선림예단’의 얘기 꺼리”〈벽해타운첩〉 추사편지 도판

  • 박동춘 소장
  • 승인 2013.02.04 11:11

    추사는 초의의 관음진영보고 감탄

    초묵법 절세의 명작 소재 자못 궁금

     

      
    ▲ 벽해타운 추사편지 도판


















       근자에 발굴된 〈벽해타운첩〉은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첩으로, 총 21신이 실려 있는데, 〈완당문집〉
    〈여초의〉와 중복된 것이 13신이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편지도 8신이나 된다. 이들이 나누었던 지음의
    아름다운 세계는 이것을 통해 더욱 풍요롭게 밝혀지리라. 새로 발굴된 〈벽해타운첩〉4신의 내용은 이렇다.

     

    一以阻截 適從人獲見所?觀音眞影 何異見師 殊勝相也 但筆法何時到此地位歟 讚歎不能已

    大?焦墨一法 爲不傳妙諦 偶因許癡發之 何料墨輪輪轉又及於師也 此像卷見爲黃山尙書所藏

    尙書將欲手寫師所作讚語於其下 洵爲禪林藝圃一段佳話 恨無由拉師共見耳 近寒禪安念切

    此狀嗽甚 四大之苦如是也 玆因秀奭便 略申不具 新蓂付之 己亥 臘吉


       모든 소식이 끊이고 막혔다가 마침 종자(從者)로부터 (그대가) 그린 관음진영을 얻어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대를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마는 정말 뛰어난 호상(好像)이구려. 하지만 (관음진영을 그리는)필법이

    언제 이런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소. 경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대개 초묵법은(焦墨法: 진한 먹을 사용하여

    그리는 것) 전하기 쉽지 않은 오묘한 진리인데, 우연히 허소치가 이어 드러냈으니 전해지고 전해진 초묵법이

    또 그대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관음상권(觀音像卷)은 황산 김유근상서께서 소장하려하십니다.

    황산 대감께서 그대가 그린 관음상의 하단에 찬탄하는 글을 손수 쓰고자 하시니 초의 그대는 선림예단(禪林

    藝圃)의 아름다운 얘기꺼리입니다. 그대를 끌고 함께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구려. 근래 추위에

    그대의 수행은 편안하신지요. 마음만 간절합니다. 나는 기침이 심하여 사대육신의 고통 또한 견디기 힘듭니다.

    여기 수석 편에 대략을 전하고, 나머지는 이만… 새 책력을 보냅니다. 1839년 12월 초 하루

     

       초의의 그림 솜씨는 익히 세상에 알려졌던 듯. 추사는 초의가 초묵 필법으로 그린 관음진영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언제 이런 단계까지 이르게 된 것이냐”는 추사의 물음은 초의의 괄목(刮目)을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이미 오래 전 초의의 일격(一格)은 다산의 문하를 드나들던 시절, 스승의 요청으로 그린 〈다산도〉와 〈백운동도〉

    에 묻어난다. 당시 선림예원을 대표했던 초의는 특히 불화에 능했으니 그의 관음진영이 권세가의 애호품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추사가 “이 관음상권(觀音像卷)은 황산 김유근상서께서 소장하려하십니다. 황산 대감께서

    그대가 그린 관음상의 하단에 찬탄하는 글을 손수 쓰고자 하시니 초의 그대는 선림예단(禪林藝圃)의 아름다운

    얘기꺼리입니다”라고 한 추사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추사가 말한 황산은 누구인가. 김유근(1785~1840)이다.


       황산은 그의 호이며, 김조순(1765~1832)의 아들이다. 그의 부친 김조순은 딸이 순조 비 책봉된 후, 세도 정치의

    기틀을 마련했던 최고의 권세가였다. 황산을 상서(尙書)라 칭한 것은 그가 이조판서에 제수되었기 때문이리라.

    한편 황산은 갈묵(渴墨)의 운치와 간일(簡逸)한 필치, 문기 있는 예술의 세계를 풍미했던 남종화풍의 문인화가

    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초의의 관음진영이 절세의 명작임을 한 눈에 알았을 터. 그가 이 진영의 말미에 찬사를

    쓰려했던 것은 천의무봉의 관음진영에 감응된 것은 아니었을까. 자비의 화신 관음보살, 아쉽게도 이 절세의 명작이

    지금까지 세상에 그 빛을 드러낸 적은 없다. 그 소재가 자못 궁금하다. 아울러 황산의 안복을 누리게 했던 초의,

    이들의 첫 만남은 언제였을까. 이들의 교유는 1830년, 초의가 상경했을 때 추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초의는

    김조순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으니 황산과의 인연은 이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들이 함께 주고받은

    시는 〈일지암시고〉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편 초의의 초묵법이 소치에게 전해졌다는 추사의 증언은 실로

    중요한 단서이기에 초의와 소치, 추사의 인연은 다음호에서 상세히 살펴보려한다.


    박동춘 소장  bwjhs@hyunbul.com

    <저작권자 © 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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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이나 강상 다른 세상 아닌데…

    • 박동춘 소장
    • 승인 2013.11.08 22:10

       

       

      ▲ 〈나가연묵첩〉에도 수록된 〈완당전집〉‘여초의’32신.


       
















        추사는 제주 유배에서 풀려나 강상에 머물렀는데, 이곳은 지금의 금호동 일대로 추정된다. 그는 이곳에서 초의가
      보내준 차를 마시며, 연경에서 입수된 〈법원주림〉, 〈종경록〉등 불경을 읽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번 호에 연재할 〈완당전집〉‘여초의’32신은 〈나가묵연첩〉에도 수록된 자료인데, 특이한 것은 ‘여초의’ 32신의

      말미 부분인 “新茶何以獨喫於石泉松風之間了~金世臣許一曆亦及”의 내용이 추신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나가묵연첩〉에서 확인되었고, 아울러 입춘(立春)에 쓴 편지였음도 밝혀진 것인데,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곧 읍내 인편으로부터 스님의 편지를 받으니 산중이나 강상은 역시 다른 세상이 아니고, 한 하늘 아래에 침개가

      서로 이끄는 사이에 있습니다. (그런데)어찌 지난날엔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습니까. 세밑 추위는 벼룻물을 얼게

      하고, 술도 얼게 합니다. (스님이 계신)남쪽 땅은 이런 일은 없을 듯 하고, 더구나 초암에는 더욱 그런 일은

      없겠지요. 근래 스님은 복되고 기쁨이 이어져 단포(團蒲)와 향등(香燈)엔 기쁨이 이어지고, 편안한지 늘

      염려됩니다. 나는 쭉 강상에 있었는데, 12월이 지내고 봄이 온 후에야 호남에 갈 나막신을 매만질 수 있을 합니다.

      (그가 보낸)여섯 양의 차는 나의 메마른 폐를 적실 만하지만 너무 적습니다. 또 향훈스님이 (나에게)차를 준다고

      약조를 했었습니다만 정령 한 잎의 차도 보내지 않으니 아쉽습니다. 이 뜻을 (향훈에게) 전하고, 그의 차 바구니를

      져서 봄에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더 쓰기 어려고, 인편도 바빠하니 이만 줄입니다. 완 노인

       

         새 차는 어찌 솔바람 불고, 물 좋은 산 속에서(石泉松風) 홀로 마시면서 멀리 있는 나는 생각도 나지 않으십니까.

      삼십 봉을 쳐서 아프게 할 만합니다. 새 달력을 보냅니다. 다만 대 나무 우거진 (일지암)곳에서 세월을 보내시는지요.

      호의도 별고 없으신지요. 자흔과 향훈도 편안하고 잘 지내지요. 이들에게도 각각 달력을 보낸 것이니 나누어 주시고,

      아울러 이 멀리서 보내는 정성을 전해주오. 김세신에게도 달력을 전해주시오


      (卽從邑便得接梵 山中江上亦非他世 一天所覆?在於鍼芥相引之際矣 何過境之落落也 臘下一寒可以氷硯氷酒

      南陸似無此 又況艸庵中耶 邇況梵祉團蒲香燈隨喜輕安念念 此連在江干過臘春後 似可重理湖?矣

      六茶可以霑此渴肺但太略 又與熏衲 曾有茶約 丁寧 不以一槍一?相及 可歎 須轉致此意 搜其茶?以送

      於春爲好爲好 艱草便忙不式 阮? 新茶何以獨喫於石泉松風之間了 不作遠想耶 可以痛棒三十矣 新蓂玆奉寄

      第作竹中日月也 縞衣無恙 自欣向熏亦安好 各有蓂及分傳 亦及此遠款也 金世臣許一曆亦及)

       

         초의의 편지를 받은 후, 그 기쁨을 “산중이나 강상은 역시 다른 세상이 아닌데, 어찌 지난날엔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는가”라고 하였다.

      이미 입춘인데도 “세밑 추위는 벼룻물을 얼게 하고, 술도 얼게”하지만 남쪽 땅, 일지암에 있는 초의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란다. 추위가 지나고, 봄이 오면 벗을 찾아갈 계획을 세우면서 “호남에 갈 나막신을 매만질 수 있을 수”

      있겠다는 추사의 말 속엔 풍류와 설렘이 함께 묻어난다.

      그에게 초의가 보낸 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이미 여러 편의 편지에서도 확인되지만 간절한 걸명(乞茗)의

      변은 “홀로 마시면서 멀리 있는 나는 생각도 나지 않으십니까. 삼십 봉을 쳐서 아프게 할 만하다”고 한 것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초의의 제자 향훈도 추사에게 간간이 차를 보낸 인물이다. 추사는 향훈을 위해 ‘다삼매(茶三昧)’를 써 보냈는데,

      추사의 절필(絶筆)은 이런 인연으로 세상에 전해진 것이다.

       


      박동춘 소장  webmaster@hyunbul.com

      <저작권자 © 현대불교>

      현대불교



      출처 : 그날에 솟아 오른 해
      글쓴이 : 케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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