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4. 18:28ㆍ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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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청춘의 아픔은 순간이고 인생의 본모습은 아름답다며 꿈과 희망을 강요하시는 분들께 읽어드리고 싶은 구절이 있어요.
“인생이란 암담한 나날을 울며 애타고 병을 앓으며 분노하는 일로 괴로워하며 사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성서>에 나오는 말이랍니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 신은 사람에게 괴로운 일을 주시어 고생이나 시키신다.”
(<전도서>, 1장과 5장)
옛사람들은 삶의 고통을 빗대어 ‘눈물의 골짜기’라 불렀다나요. 골짜기에 갇힌 우리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에 심취하는 것.
“당신을 향해 우리는 울며 탄식합니다, 이 눈물의 골짜기에서(in hac lacrimarum valle, 인 하크 라크리마룸 발레).” (라틴어 성가 <살베 레지나>)
이승의 고통을 견뎌내는 힘을, 저 너머의 세상에 대한 희망에서 끌어온대요.
“깊은 구렁 속에서(de profundis, 데 프로푼디스) 내가 부르짖사오니…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더욱 기다리나이다.”(<시편> 130편)
그러나 의심 많은 현대인에게는 애초에 무리.
다른 하나는 향락에 빠지는 겁니다.
“여기 이 세상 눈물의 골짜기에는(Jammertal, 얌머탈) 수고와 고통뿐.”
독일어 오페라 <마탄의 사수> 1막 5장에서 카스파르가 부르는 권주가예요.
“마지막 숨을 뱉을 때까지 나는 술의 신 바쿠스나 굳게 믿으련다.”
눈물의 골짜기라는 같은 인식에서 출발했지만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네요.
브뤼헐의 회화 <죽음의 승리>는 요모조모 뜯어보는 맛이 있어요.
요즘 저는 오른쪽 아래, 그림 제일 구석진 곳에 눈이 갑니다. 도처에서 사람들이 죽어 쓰러지고, 그림 오른쪽에는 죽음의 군단이 몰려옵니다.
그런데 그 바로 아래, 두 연인이 그림의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한가로이 류트를 뜯고 있어요!
이 그림의 주제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다지요.
하지만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기라) - 마지막 순간까지 즐겨대는 저들도 나름 영리해 보입니다.
다만 ‘정신줄 놓고’ 즐기다가는 패가망신하기 십상이죠. 권주가를 부르던 카스파르도 결국 끝이 좋지 않았잖아요. 그럼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요.
“착하게 살면 망한다.
그러니 너무 착하게 살다가 망하지 말라. 그렇다고 너무 악하게 살다가 때가 되기 전에 죽음을 맞는 것도 피하라”는 조언이 참고가 되려나요?
이 얄미우리만치 영악한 말 역시, 성서(<전도서> 7장)에 나온다는 사실이 얄궂지만요.
만화가·<르네상스의 미술 이야기> 지은이
/한겨레
Bruegel, Pieter (피테르 브뢰헬)
The Triumph of Death(죽음의 승리)
The Triumph of Death c. 1562 (220 Kb); Oil on p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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