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익대 앞 포스트극장에서 희한한 공연이 열리고 있다. 재즈 악기를 든 연주자 10여 명이 무대에 둥그렇게 둘러 앉는다. 정해진 대로 맞춰 연주하는 건 처음 몇 소절뿐이다.
돌연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연주한다.
제각기 나와 엉키는 음악은 아무리 해도 하나로 버무려지지 않는다. 이 ‘집단즉흥’ 음악이 혼돈에 접어들 즈음 네댓 명이 나와 춤을 춘다. 이마저 즉흥이다.
불친절할 정도로 전위적이지만, 뜨거운 에너지가 오래 남는 독특한 무대다.
타악인 박재천씨는 자칭 딴따라다. “한국 장단을 외국 악기로 연주해 세계에 알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에 힘이 실리는 까닭은 지난 30여 년 수많은 음악과 악기를 다뤄온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굿판과 시장판,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 록·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고루 익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공연 ‘고수푸리’는 올해 2월 이후 두 달에 한 번 열리고 있다. 고수는 북치는 사람, 푸리는 재즈처럼 자유로운 음악 형식이다. 어떤 달엔 티켓 가격도 즉흥이다. 관객이 내고 싶은 대로 낸다.
즉흥의 극한을 실험하는 무대의 리더가 박재천(50)씨다.
드럼을 연주하다 가끔 튀어나와 즉흥을 ‘조율’한다. 다시 처음 약속했던 악보 몇 마디를 연주하게끔 이끌기도 하고, 스무 명 중 몇 명을 지정해 독주를 시키기도 한다.
‘고수푸리’에서 박씨는 즉흥을 통달한 재즈 음악가다. 하지만 그의 이력엔 거의 모든 장르가 새겨져 있다.
스스로 일컫듯, ‘전방위 딴따라’다.
초등학교 2학년에 처음 드럼에 빠졌고 이후 고적대(鼓笛隊)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놀았고 대학교는 중앙대학교 음대 작곡과를 나왔다. 스무 살부터 가발 쓰고 나이트클럽에서 드럼을 쳤다. 프리 재즈의 거장으로 불리는 강태환씨에게 후계자로 낙점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한 순간은 대학교 3학년, 음반 한 장을 듣고 울었던 때다.
김소희 명창이 부른 ‘춘향가’ LP였다.
“눈물이 나는데,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때부터 박귀희 선생 등을 찾아 다니며 국악을 무작정 배웠다. 군악대에 들어가서도 틈만 나면 장구를 붙들고 있어 별명이 ‘무당’이었다.
그는 제대 이후 아예 짐을 꾸려 전라도로 내려갔다. 피아노 학원을 하던 아내에게 생활비를 부탁하는 ‘뻔뻔함’까지 보일 수 있었던 건, 밑바닥의 진짜 한국 소리를 배우고 싶다는 갈증 때문이었다. 시장판과 굿판을 기웃거렸다. 진도에선 신내림 받은 무당집에서 1년 동안 무작정 먹고 살며 굿하러 같이 다녔다.
“판소리, 사물가락 다 배웠는데 또 욕심이 났다. 원류는 샤머니즘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당집을 찾아갔다. 산에서 잠도 안 자고 일주일 동안 굿만 한 적도 있다. 핏속에 흐르는 리듬·음악, 신이 내렸다고 할 수밖에 없는 세계를 음악에 새기게 됐다.”
그는 이렇게 배우고 싶은 거의 모든 리듬을 익혔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가지게 됐다.
“드럼과 장구를 30년 이상 동시에 다룬 경험이 있다. 이걸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의 장단을 드럼이나 피아노 등으로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을 몇 년 째 연구했다.”
그는 한국 타악기의 채를 잡는 방식으로 서양의 악기도 연주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단순한 ‘퓨전’ 대신 동·서양의 화학적 결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3, 4일 오후 5시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리는 공연 ‘코리안 그립’에서 그는 ‘드럼 설장고’ ‘퍼커션 사물놀이’ 등을 시도한다.
“사실 ‘고수푸리’ 같은 즉흥 음악은 청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알릴 필요도, 알려질 수도 없는 아방가르드다. 세련되면 맛이 간다. 하지만 ‘코리안 그립’ 프로젝트는 다르다. 나는 굿거리·자진모리 등을 세계 타악 주자들과 청중이 모두 알게 되는 날을 꿈꾼다.”
그는 대학 시절 지도 교수가 “유학 다녀와 학교로 돌아오라” 했을 때 “저는 역사에 남는 딴따라가 될 겁니다”라고 했었다. ‘코리안 그립’은 역사적 딴따라로 가기 위해 그가 닦고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