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수문(李秀文)의 묵죽(墨竹)10폭중 4폭외

2013. 11. 13. 10:21詩書藝畵鑑賞

작가 : 이수문(李秀文)
제목 : 묵죽(墨竹)10폭중 4폭
언제 : 15세기 후반
재료 : 화첩종이에 수묵
규격 : 각각30.4 x 44.5cm
소장 : 일본개인

해설 : 이 화첩은 모두 열 폭으로 되어 있으며. 여러가지 다른 상황이나 환경에 놓여 있는 다양한 모습의 대나무를 묘사하고 있다. 이 화첩이 발견됨으로서. 이 그림의 화가인 이수문이 조선시대의 한국인이 었음이 확실히 밝혀지게 되었다. 이수문은 일본에서 이주문(李周文)이라고도 불리어져. 상국사(相國寺)의 선승화가(禪僧畵家)로 1423년에 일본 사절단의 일원으로 내조(來朝)했다가 이듬해에 돌아간 슈우분과 그 이름이 같으나. 실은 별개의 인물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조선초기의 회화를 일본화단(畵壇)에 전하고 영향을 미치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화첩의 끝 작품에는 영락갑진이십유이세차 어일본국래도북양사(永樂甲辰二十有二歲次 於日本國來渡北陽寫), 수문(秀文) 이라는 관기가 있어, 이수문이 1424년에 일본에 내도(來渡)한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관지의 해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수 있다. 즉 일본국에 내도 하여 북양에서 그리다. 라고 일본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으나 이동주(李東柱) 박사는 일본국으로부터 북양에 내도하여 그리다. 로 읽고 있다. 전자와 같이 읽을 경우 북양은 일본에 있는 지명으로 볼수 있고. 또 이 그림의 제작도 일본 땅에서 이루어 졌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후자와 같이 해석 할 경우. 이 작품은 일본을 다녀온후 우리나라의 북양이라고 하는 어느 곳에서 제작된 것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문맥으로는 후자가 더 그럴 듯하나. 일본에서는 이수문이 일본에 정착하여 소오가파(曾我派)의 개조가 되었던 인물로 믿어지고 있어 그러한 사정과 잘 부합되지 않고 있다. 어쨌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관기는 이수문이 15세기 초에 활동했던 한국인이며. 일본에 건너가 그곳에 영향을 미쳤던 인물임을 분명히 해준다. 1424년에는 중국인은 누구도 일본에 입국할수 없었다는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화풍이 조선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화첩의 대나무들은 한결같이 줄기가 지극히 간늘고 반면에 잎은크고 길어서 중국의 묵죽과 큰 대조를 보인다. 또한 제1엽의 바위 묘사에는 곽희파의 영향이 감지되고 언덕의 표현 중에는 일종의 피마준(披麻皴)비슷한 준법이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작가 : 이수문(李秀文)
제목 : 향산구로도(香山九老圖) 6 첩한쌍
언제 : 15세기 후반
재료 : 종이에 수묵
규격 : 각각145.5 x 312.6cm
소장 : 일본 하라다 기념관

해설 : 향산구로도는 그냥 <구로도>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당(唐)의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를 그린것이다. 향산은 중국에 여러곳이 있으나, 백거이와 관련된산은. 하남성(河南省) 낙양현(洛陽懸) 용문산(龍門山)의 동쪽에 있다. 백거이는 이곳에 석루(石樓)를 짓고. 향산거사(香山居士)라고 불렀으며. 세상사람들이 이산을 백향산(白香山)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백거이의 구로회 회원은. 호고(胡杲). 길민(吉旼). 정거(鄭據). 유진(劉眞). 노진(盧眞). 장혼(張渾). 적겸모(狄兼謨). 노정(盧貞). 백거이의 9명으로. 이들은 모두 연치가 높고 벼슬을 하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백거이의 <구로도시서>에 의하면 회창(會昌) 5년 3월에 호. 길. 정. 유. 노. 장의 6현과 백거이가 모였었는데. 그해 여름에 적겸모 와 노정이 고향에 돌아와 이 모임에 참석했으므로 그 성씨와 연치를 쓰고 그 형모(形貌)를 그리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구로회>가 되고 또 이때 그린 그림을 <구로도> 라고 했다고 한다. 이수문이 그린 이 <향산구로도>도 바로 이러한 백거이의 구로회를 그린 것임은 물론이다. 6첩으로 되어있는 한쌍의 병풍을 함께 잇대어 놓고 보면. 좌우가 대칭을 이루도록 구도가 짜여져 있다. 각 병풍의 양쪽. 즉 첫번째 병풍의 제1폭과 둘째 병풍의 제6폭에. 각기 큰 나무를 배치하여 좌우대칭을 이루게 하면서. 그 사이의 산을 배경으로 한 공간에. 노인들과 따르는 시동들을 그려 넣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은 서로 담소하기도 하고 주변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자유로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기(氣)가 들어가 있고. 의습선(衣褶線)은 다소 투박하지만. 변화가 있으며 때때로 음영법(陰影法)의 구사가 엿보인다. 배경을 이루는 산들의 모습은. 이수문의 악양루도(岳陽樓圖)와 대단히 흡사하여.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작품일 것으로 믿어진다. 15세기 조선 초기의 인물화와 산수화의 잊혀진 한 부분을. 이 작품을 통해 되찾는 느낌이다.

 

 

 

 



 

 

작가 : 이수문(李秀文)
제목 : 악양루도((岳陽樓圖)
언제 : 15세기 후반
재료 : 족자 종이에 수묵
규격 : 102.3 x 44.7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이수문은 묵죽만이 아니라 산수화. 인물화. 화조(花鳥)등도 그렸는데. 작품이 모두 일본에만 남아 있다. 이그림은 이수문이 난긴 산수화 중의 하나로. 중국 호남성(湖南省) 악양현성(岳陽懸城)의 서문루(西門樓)인. 악양루를 그린것이다. 악양루는 동정호(洞庭湖)를 정면에 두고 있어.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등왕각(縢王閣)과 함께 자주 그려졌으며. 특히 당대(唐代)의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악양루에 올라 시를 지은후. 더욱 유명해 지기도 했다한다. 나지막하고 헐벗은 원경의 산을 배경으로, 중경에 악양루가 서 있고 근경에는 고목(枯木)과 무너져 내릴 듯한 초가지붕들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고목과 옥우법(屋宇法)은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회화에서 자주 볼수 있는 특징이다. 또한 근경의 언덕 묘사에 보이는 일종의 피마준(披麻皴)처럼 보이는 가는선들은 묵죽화첩 중의 언덕묘사에도 공통적으로 엿보인다. 배경의 산들이 보여주는 형태나 그 묘사법은 매우 특이하다. 이 작품은 이수문의 <향산구로도>와 함께 조선 초기 산수화의 또다른 일면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뜻이 크다.

 

 

 

 

 

 

출처 : 山谷(伯草) 한국화
글쓴이 : 山谷(伯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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