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3. 10:08ㆍ詩書藝畵鑑賞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군선도(群仙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53 x 28 cm
소장 : 호암미술관
해설 : 김홍도는 풍채와 태도가 아름답고 성미는 너그럽고 선선하여. 자질구레한 일에 구애되지 않아서 신선과 같은 인물” 이라고 조희룡(趙熙龍)이 편찬한 호산외기(壺山外記)의, 김홍도전(金弘道傳)에 언급되어 있다. 이와 같은 기술(記述)은. 그가 신선도를 즐겨 그린 것과 견줄 때. 재미있는 사실이 아닐수 없다. 그는 산수. 영모. 도석인물. 풍속에 이르기 까지. 다방면에 걸쳐 수작을 다수 남기고 있다. 만 31세인 1776년에 그린 군선도는. 대작이면서 대표적인 도석인물 병풍에 드는 그림이다.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를 살펴보면 그책에 게재키 위해 사진을 찍었던 1930년대까지만 해도 하부에 성근 필치로 그린 풀이 보이나 현재는 그 부분이 잘려나갔고 각 폭의 세로 모서리들도 조금씩 잘려 그림 폭 사이의 연결이 다소 어긋나 있다. 이 일연의 8폭 군선도는 별도의 배경없이. 크게 세 무더기로 나뉘는 신선들에 의해. 그들의 표정 및 자세만으로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화면구성을 보여준다. 이 점은 소폭의 풍속화첩에서도 살필수 있다. 김홍도의 전래작들은 도석인물화에 있어서 병풍. 족자. 편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전작(遺傳作)을 살필 수 있는데. 이들도 풍속화에서처럼 배경을 함께 나타낸 것과 배경없이 신선만을 그린 두 가지로 구분된다. 배경이 있는 대폭으로는 6폭과 8폭으로 된 서원아집병(西園雅集屛)이 대표적이며. 또한 10폭 또는 8폭으로 된 고사(故事)를 소재로 한 고사인물화들이 있다. 또한 매폭마다 2 ~ 3명의 신선을 그려 전체가 한 화면으로서의 연결을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8폭의 연폭으로 그린 것들도 전래되고 있다. 군선도에 등장한 인물들은 선동을 포함해 19명에 이르며. 나귀. 일각우(一角牛). 다람쥐. 박쥐 등 동물도 보인다. 이 군선도는 속도감이 느껴지는. 대담한 오대당풍(吳帶當風) 의 묵선과. 가늘고 고른 선들을 혼용하고 있다. 동적인 의습선(衣褶線)은 바람에 나부끼는 듯하고. 이와함께 신선들의 자세 또한, 정지상태가 아닌 동적이어서. 화면엔 생동감이 넘친다. 감필의 묘가 발휘된 선묘 위주이나. 부분적으로 보이는 청홍담채의 설채는. 화면에 유현한 분위기를 주며. 특히 얼굴의 설채는 분명히 명암이 고려된 가채(加彩)로. 들어간 부분과 튀어난 부분의 구별이 분명히 나타나 있어 주목된다. 구도와 필력에 있어 소장시절에 그가 도달한 틀잡힌 격조를 알려주는 군선도는 발군의 기량을 과시하는 걸작이다. 이 그림은 현재는 나눠서 족자로 꾸며져 있다. 왼쪽 하단에 병인춘사(丙寅春寫)의 간기(干紀)와 30대에 주로 사용한 호 사능(士能)의 관서(款署)가 있으며. 이어서 백문방인(白文方印) 김홍도인(金弘道印) 과 주문방인 사능(士能)이 세로로 나란히 있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선인송하취생(仙人松下吹笙)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109 x 54.5 cm
소장 : 고려대학교 박물관
해설 : 김홍도 도석(道釋)인물은 전혀 배경을 그리지 않고 인물들만 크게 부각시켜. 그들의 표정 및 동작이나 자세만으로. 화면구성을 꾀한 것과. 배경 속에 점경(點景)으로 인물을 담는 두 가지로 크게 나뉘어지는데, 대체로 전자가 앞선것으로 본다. 배경이 있는 경우도 서원아집병(西園雅集屛)과 같이 정교하고 섬세하여. 그야말로 화본풍(畵本風)으로 나타내는 경우와. 전혀 이런 분위기와 는 거리가 먼 평범한 장면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섬세한 쪽이 먼저 그린 것이 된다. 노송만을 화면 중앙에 수직으로 포치시킨, 선인송하취생은 장식성이 전혀 배제된 소탈함과. 번거롭지 않는 담담한 운치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수직으로 소나무를 그린 예는, 김홍도 보다 한세대 앞선 18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로 손꼽히는. 이인상(李麟祥)에게서 찾아볼수 있어, 공통점이 보이는 석법(石法)과 더불어. 그의 영향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김홍도가 즐겨 그린 상하로 뻗은 노송은 갈필선묘(渴筆線描)로 때로는 노송의 위아래가 화면 밖으로 벗어나 중간만 나타내기도 한다. 노송의 굵은 수직 줄기로 인해 나타난 화면공간엔 폭포를 곁들이거나 학이나 사슴이 신선대신 등장되기도 한다. 소나무와 관계있는 신선으로는 소를 탄 노자(老子)의 배경에 노송이 나타나기도 하며. 노송에 기댄 적송자(赤松子)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소나무와는 별개로 생황(笙簧)을 잘 부는 신선으로 옥자진(玉磁晉)이 있다. 선인송하취생은 신선보다 오히려 노송이 큰 비중을 화면을 점하고 있는데. 솔잎은 성글고 늙은 줄기의 거친 표현은, 신선과 함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듯도 하다. 차분한 자세로 앉아 생황을 부는 신선은, 사뭇 유연(悠然)한 정취이며. 의습선은 가늘고 고른 필선으로. 율동감 있는 송린(松鱗)과 는 대조적이다. 오른쪽 상단에 회화적인 아름다움까지 보이는 제발(題跋)은 “생황의 외형은 봉황이 날개짓 한는 것 같고. 불 때 들리는 소리는 용의 울음소리보다 처절하다”. 는 내용이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마상청앵(馬上聽鶯)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117.4 x 52 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는 겸재(謙齋) 정선(鄭敾)과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의 동국진경풍속화(東國眞景風俗畵)를 계승하여 이를 기교적으로 변모시켰던 화원화가이다. 풍채가 아름답고 성격이 호방 활달하여. 당시 사람들이 신선중의 사람으로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을정도로 수려한 미남자 였던 보양인데. 그래서인지 이 그림속의 말 탄 양반이나. 구종하인이 모두 늘씬한 몸매로 그려져 있다. 심지어 앞발을 모아세우고 다소곳이 서 있는 적황색 말과. 노변의 버드나무까지도 호리호리한 미태(美態)를 발산하고 있다. 그림속의 인물이 항용 그린 사람을 닮게 마련인 것을 생각하면. 말 탄 사람은 바로 김홍도 자신이라고 하여도 좋을 듯 하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나른한 늦은 봄날. 복건에 갓 쓰고 도포는 술띠를 늘여 차려입은. 멋장이 양반이 한 손에 쥘부채 들고. 한손에는 고삐를 잡은채. 길가 버드나무 아래 위에서 화답하는. 노란 봄 꾀꼬리 한 쌍의 흐드러진 교성에. 가는길도 잊은 듯 넋을 잃고 멈춰 서 있다. 모춘여정(暮春旅情)의 시취(詩趣)가 뿌듯이 느껴지는 분위기 이다. 공백을 한껏 강조한 시정(詩情) 넘치는 일각(一角) 구도뿐만 아니라. 적황색 말과 푸릇푸릇한 연초록의 봄버들잎. 등황빛 꾀꼬리의 색조는, 노변과 버드나무 둥치에 찍어낸 청묵빛과, 묘하게 대조를 이루며 어우러져서, 춘정을 한층 자극하고 있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무이귀도(武夷歸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112.5 x 52.6 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무이산(武夷山)은 지금 대만의 대안(對岸)에 해당하는. 복건성건녕부(福建省建寧府)에 있는 길이 120리의 명산이다. 36봉과 37암 그리고 그 사이를 흘러내리는 건계(建溪)가 어우러지며, 선경을 빚어내어 한무제(漢武帝) 때부터. 무이군(武夷君) 이라는 신선이 살았다 하고. 가깝게는 松代의 신선 옥섬(玉蟾) 갈장경(葛長庚)이. 이 산속에 숨어 살았다고도 하는. 신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빼어난 경치로 인해, 수많은 탐승객이 이곳을 찾아 절경을 읊었으나, 중국 십철(十哲) 중의 한 사람이자. 주자(朱子) 성리학의 개조로서 추앙받는,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노래한,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만큼 무이산구곡(武夷山九曲)을 유명하게 한 것은 없다. 이후 건계가 36봉 37암을 감아 흘러내리며 빚어낸 아홉 굽이는 화가들에 의해 즐겨 그려지게 되었는데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하여 중국보다 더욱 성리학적 학문체계를 발전시켰던 조선에서도 주자의 무이구곡가는 중요한 소재로서 일찍부터 그려졌었다. 김홍도의 이 그림이 구곡중에서 어디를 그렸는지 언뜻 알기 어렵지만. 하엽준(荷葉皴)으로 처리된 기암준봉과. 그 사이를 굽이쳐 내려오는 탕탕한 계류를 타고 치닫는 선유(船遊)는 실로 호방장쾌 하여. 무이구곡 전체가 이 한폭에 모두 담겨진 것 같으니. 굳이 어느 굽이의 경치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뜸집배 안에 상반신을 드러낸 채 절경을 승람하는 인물로 그려진. 주희의 단아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사공들이 행색은 분명 조선 사람의 그것이어서, 당시 풍미하던 조선중화(中華)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산사귀승도(山寺歸僧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종이에 담채
규격 : 28 x 32.7 cm
소장 : 한국개인
해설 : 화면 전부가 하나의 꼴짜기이고. 양쪽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계곡이 깊다. 저 멀리 더 깊은 골에서 흘러오는 계곡물 위로, 어느절로 들어가는 극락교(極樂橋)가, 맛배기와지붕 구조와 둥근 창으로 되어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절의 암자가 하나 비스듬히 지붕과 한쪽 벽만 보이는데. 그림의 전경 왼쪽아래에 삭발승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벼랑길을 따라 귀사(歸寺)하고 있다. 바위 벼랑은 모두 초묵(焦墨)의 굵직하고 꺾이는, 붓자국으로 힘있게 내리긋고. 절벽의 암준(岩皴)도 굵은 초묵으로 담묵 바탕에 내리긋거나 점을 찍었다. 왼쪽벼랑 즉 귀사하는 중의 머리 위로. 단풍난무가 바위에 뿌리를 박고 늘어져 있고. 또 이곳저곳에 시커먼 먹을 찍어. 곧은 침엽수 줄기를 묘사하고. 짧은 횡선으로 두툼하거나 성기게 가지와 잎을 나타냈다. 후면의 계곡은 아득하게 하늘과 접하여. 끝간 데를 모르겠고. 그 위 훤한 공간에다 싯귀를 썼지만. 그중 몇자만 알아보겠다. 또한 암자의 파풍(破風)과. 극락교의 토벽(土壁)에만 연한 주칠과 황토색이 보인다. 근래에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이. 단원의 낙관과 제시(題詩)가 벗겨진 것을 애석해 하는 평어(評語)와 낙관. 도서(圖書)가 왼편에 있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사인암도(舍人巖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화첩 종이에 담채
규격 : 26.6 x 31.4 cm
소장 : 호암미술관
해설 : 단원의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 속에 들어 있는 산수 10폭 중에는 실경산수가 몇폭 있는데. 그중에는 도담삼봉(島潭三峯). 사인암(舍人巖). 옥순봉(玉荀峯) 등 단양(丹陽)의 절경을 그린 것이 있다. 병진년(1796년) 무렵의 단원 산수는 실경에 입각했으면서도. 실경을 넘어서 회화적인 재구성으로 관념산수(觀念山水)의 경지를 전개하였기 때문에, 이 사인암도도 실경과는 사뭇 거리가 있지만, 우람하고 장대한 병풍 같은 절벽바위의 위용을 한껏 강조하고 있다. 암준(岩皴)은 종횡으로 그은 선으로 바위 주름을 나타내고. 여기에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전후와 요철을 드러내고 또한 농담이 있는 태미점(笞米點)으로 운치를 더하고 있다. 화면 아래쪽 강면의 돌무더기와 수목들. 그리고 사인암 꼭대기의 수목 등도. 단원 산수에 나오는 정형으로. 농담을 구사하여 전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소나무 표현역시 예리하고 농묵과 담묵으로 잔가지 와 잎을 나타내어. 단원소나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한계조수도(閑溪釣叟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화첩 종이에 담채
규격 : 26.6 x 31.4 cm
소장 : 호암미술관
해설 : 화면 좌편 위쪽에 치우쳐 담묵으로 묘사된 절벽이. 가운데를 향해 원만한 곳선을 이루면서 물속에 바위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냇가로 다가와 멈춘다. 시냇물은 전경에서 왼편으로 비스듬히 대각선을 이루는데. 이쪽 언덕 물가에 삿갓을 쓴 이와. 맨상투의 남자가 각각 낚싯대를 드리우고. 말을 주고 받는다. 절벽 중앙에는 발묵기법으로 암층의 일부가 크게 돌출하게 처리하면서. 역시 냇가로 흐르듯 내려오는데, 돌사이에 뿌리 박은 나무들이. 위아래로 기둥과 가지를 뻗으면서. 덩굴을 몇줄 드리우고 있다. 거의 밋밋한 절벽 자체에 비해. 아랫자락은 해삭준(解索皴)이 밀집되면서 농도를 더해 표현되고. 나뭇잎 등 여기저기에는 황갈색 담채를 썼다. 화폭 오른쪽 위의 절벽과 대칭이 되는 공간은. 자욱한 안개속에 무한히 비어 있을 뿐이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매작도(梅鵲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화첩 종이에 담채
규격 : 26.6 x 31.4 cm
소장 : 호암미술관
해설 : 단원의 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에 들어있는 화조 10폭중의 하나인 이 매작도는. 단원 특유의 수목에 본홍꽃을 곁들인. 그예가 드문 춘경의 화조화 이다. 밑둥이 굵고 굴절한 매화나무가. 왼쪽으로 가지가 많이 뻗었는데. 그 오른쪽으로는 대나무 몇그루가 비껴 있어서. 화면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굴절 하였다가 위로 뻗은 매화 줄기는. 그 윗부분에 이르러 다시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가다가. 거기에서 잔가지가 오른쪽과 위로 뻗어서. 좌측상단으로는 넓은 여백을 설정하고 있다. 매화나무는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향하는 비스듬한 포치이고. 주제인 까치는 매화나무 윗등걸에 세 마리가. 절묘한 포치로 앉아서 왼쪽 위의 시원한 공간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마리가 벌써 그 공간을 날고 있어서. 균형이 잘잡혀 있는 명품이다. 전경의 배경은 은은한 담묵으로 부드럽게 처리한 반면에. 상단은 여백으로 처리하여. 무한한 공간감을 자아내는데. 거기에 매화꽃의 설채가 아주 선결하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기우도강도(騎牛渡江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화첩 종이에 담채
규격 : 26.6 x 31.4 cm
소장 : 호암미술관
해설 : 화폭 전면이 가없는 잔잔한 강물인데. 가운데 큰 버드나무 한 그루가 물속에 잠기듯. 늙은 둥치를 드러내고, 오른편으로 누웠다가는 윗부분이 솟아오르고 있다. 이 나무 앞쪽에 세 그루의 작은 버드나무들이. 큰 버드나무 둥치와 거의 직각으로 교차하면서 자리를 잡는다. 그 뒤 물속을 한 목동이 소 등에 타고 왼편으로 유유히 강을 건너면서. 물에서 이제 막 날아가는 청둥오리 세 마리를 돌아다본다. 작은 버들과 큰 버드나무 둥치 사이 수면에. 아직 두 마리의 물오리가 헤엄치고. 전경에는 초록과 농묵으로. 아주 짧은 연속선과 점들을 찍어. 한 무더기의 수초(水草)를 잘 표현하고 있다. 나무들의 윤곽과 잔가지들 모두 농묵으로 거침없는 속필로 묘사해 가고. 버들잎들은 역시 황록으로 촘촘히 찍었다. 사람. 소. 물오리는 붓끝 세선을 썼으되, 비교적 빠르고도 간소한 선묘이고. 담청을 먹과 섞었거나 황갈색을 인물과 동물에 담채했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기우부신(騎牛負薪)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화첩 비단에 담채
규격 : 25.5 x 35.7 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檀園 金弘道는 玄齋 沈師正과 뜻을 같이하던 사대부 화가 표암(豹菴) 姜世晃의 문하에서 화도를 배워 화원으로 출사(出仕)한 화가였다. 강세황은 단원을 조선회화사상 제일의 인물로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데, 특히 그의 풍속화 솜씨를 일컬어서는, “더욱 우리 동쪽나라 인물풍속을 잘하여, 선비가 공부하는 것이나, 장사치가 시장으로 치닫는 것. 규중의 여인. 농사꾼. 누에치는 여인 및 가옥의 규모와 산과 들 같으데 이르러서는. 물태형용(物態形容)을 곡진히 하여 어그러짐이 없었으니. 이는 곧 옛날에는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현존하는 그의 그림이 풍속화보다 산수화가 더 많지만. 풍속화가로서 더 유명한 것도 예나 다를바 없다 하겠다. 봄기운이 무르녹아 아지랑이가 원근 산야에 가득 피어오르면 하루해는 한없이 길고 심신은 나른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 긴긴 해를 양지쪽에서 졸고만 보낼수 없어 나무 한짐을 해 지고 풀 뜯기던 소 등에 올라타고 돌아오다 보니, 어살(漁蔱)을 매놓은 시냇가에는, 아직도 오리들이 떼지어 놀고있다. 우리 시골 어느 곳에서나 얼마 전까지 보아오던 흔한 장면이다. 나무를 소등에 싣지 않고 스스로 지고 타던 것이, 우리네 양심이었고 고통을 함께 하는 겸허한 자세였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낭구도(浪鷗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화첩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39.1 x 49.3 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김홍도는 파도에 매력을 느꼈던 모양으로, 파도를 주제로 한 비슷한 작품이 몇점 전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이 <낭구도>는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왼편의 암초에 내려 앉아 있는 바닷새의 무리에. 흰 분채(粉彩)를 입혔을뿐. 어느 것이나 묵색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맑은 담청색으로 선염하고 있다. 단순한 주제이지만 단원(檀園) 김홍도의 대가로서의 관록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만월대계회도(滿月臺契會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족자 비단에 수묵담채
규격 : 147.2 x 63.3 cm
소장 : 한국개인
해설 : 개성 송악산(松岳山) 기슭에 있는 고려 왕궁 옛터인 만월대 에서 열린 들잔치를 기념한 일종의 기록화 이다, 발문(跋文)에 의하면. 장준택(張俊宅) 등 칠순 노인 64명이 그들 자손의 주선으로 평소의 숙원을 풀어 만월대에 모여서 큰 잔치를 벌이는 장면을. 당시의 명가(名家) 金弘道에게 그리게 한 작품이다. 화면은 송악산 서쪽만 배경으로 되어있고. 들잔치는 고려 왕궁의 정전(正殿)인 회경전(會慶殿) 폐허 위에서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림속에 등장한 인물은 250명이 넘고, 저마다 다른 자세와 동작이 치밀한 관찰을 거쳐, 그사실적인 묘사에 정력을 기울인 자취가 역력히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단원 특유의 일종의 부벽준법(斧劈皴法)으 특색이 배경에 분명히 두드러져 있고. 설채도 매우 공을 들였으며. 군중이 입은 옷의 담소(淡素)한 색조까지 가려내서 그렸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무동(舞童)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화첩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28 x 23.5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한국 산수화에 새로운 경지를 연 단원 김홍도는. 한편으로 서민과 시정(市井)의 세속적인 일들을 다룬 풍속화를 개척하였다.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의 하나인 이 그림은, 풍악의 가락이 숨가쁘게 높아감에 따라 춤추며 돌아가는 소년의 옷자락에서 사뭇 바람이 이는 듯하고. 피리를 부는 말뚝 벙거지의 사내는 양볼이 입김으로 터질 듯 부풀었으며. 흥에 겨운 군상의 표현은 자못 열기찬 율동감을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단원의 풍속도에는 구수하고도 익살스러운 흥겨움이 화면에 넘치고 있다. 천민으로 하대받던 대장장이. 풍각장이. 또는 마부나 머슴들의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흥겨움을 해학적으로 다룬 점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일이었으며. 단원의 한 걸음 앞선 사회관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씨름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화첩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28 x 23.5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단원이 활약한 영.정조(英.正祖)시대는 실학(實學)사상이 크게 일어나 새로운 서민의식이 풍미하던 때로서. 이런 기류와 함께 단원의 풍속화는 서민사회의 생업과 그 생태를 해학적으로 다루어, 단원풍속도 라는 특이한 장르를 정립했다. 단원의 풍속도를 보고 있노라면 서민 사회의 구수하고도 익살스러운 흥겨움이 느껴져, 모르는 사이에 그림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이 씨름은 단원풍속도 중의 하나로서, 위아래 두 무리로 관중을 배치하고. 그 한가운데에 서로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씨름꾼을 그렸으며. 왼편에는 목판을 멘 엿장수를 그렸다. 외면당한 엿장수. 벗어놓은 신발. 갓 따위가 화면의 단조로움을 덜어주며. 긴장된 분위기를 멋지게 조절하고 있다. 안간힘을 쓰는 씨름꾼의 모습과 표정. 흥을 돋구는 군중들의 구도가 자못 짜임새 있을 뿐 아니라. 흥분과 초조가 엇갈리는 가운데 서민적인 해학이 고조되고 있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관암도(冠巖圖) : 고산구곡도(高山九曲歌) 제1곡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병풍 종이에 담채
규격 : 60.3 x 35.2 cm
소장 : 한국개인
해설 : 율곡(栗谷)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중의 제1곡인 관암(冠巖)이다. 관암이란 시냇가에 있는 바위가 선비의 관모 같이 생겨 붙인 이름으로. 여기서부터 시냇물의 경치 좋은 아홉 군데 이름지으면서 상류로 거슬러올라가므로. 구곡중 가장 하류에 위치한 곳이다. 1803년경 그렸으므로 단원의 만년작이라 할수 있는데, 그가 실경을 그릴 때 쓰는 세필을 볼수 있으나, 맹추(孟秋)니 중추상한(仲秋上澣)이니 하여 7,8월에 걸쳐 여러 화가들이 서로 다른때에 그린 것을 한데 모아 표구한 것을 보면. 이미 있었던 다른 구곡도를 보고. 각자 나름대로 다시 그렸으리라 생각된다. 그림 전경에 조그만 시냇물이 있고.이쪽으로 는 다만 소나무 서너 그루와 잡나무들이 서있는 언덕이 있고, 내를 건너 바로 문제의 관암이 서 있다. 그뒤로 중경 왼편에 소나무 몇그루가 서 있는 평평한 언덕이 있어 동자를 거느린 선비가 소요하고. 아래편에서 율곡의 제자라고 생각되는 세 사람이 찾아오른다. 그 언덕뒤쪽 절벽이 오른편으로 기우뚱 솟아오르고 있는데. 가는 초묵갈필(焦墨渴筆)로 약식(略式)송림과 하엽준(荷葉皴)의 바위주름을 볼수 있다. 오른편 중경으로 질펀한 미지의 공간이 전개되면서 원경에 그릉이 몇줄기 가로 놓인다. 관암에는 한자로 바위이름이 써있고 단원의 사인암도(舍人巖圖) 같은 곳에서 볼수 있는 모난 바위준법(皴法)을 썼으며. 왼편아래 귀퉁이에 단원이 받들어 그렸다고 자서(自書)하고 있다. 글은 김조순(金祖淳)이 썼다.
[고기잡이]
당시의 어촌의 고기잡이 모습이 잘 살아 있다.
울타리처럼 쳐져 있는 것이 울짱인데 울짱은 주로 떡갈나무나 소나무를
이용하여 물이 앝은 바다나 산발치가 바다로 들어간 섬의 모래벌 가에 빙둘러 세운다.
울짱의 귀퉁이에는 물살에 따라 물고기가 들어가긴 해도 나오지 못하는 임통을 설치하고
조수물이 들어오면 물고기가 거기에 갇히게 되고 그 물고기를 가지러 어부들이 배를
나눠타고 임통 안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떠서 배에 저장한다고 한다. 그림에서 보면
울짱에서 물고기를 건져 배에 건네는 사람도 보이고, 중간의 배에는 아마도
물고기를그 자리에서 조리하는 듯이 보이는 솥단지가 보인다.
[기와잇기]
대패질하는 목수, 수평을 맞추는 사람, 흙을 개어 올려주는 사람,
기와를 던지는 사람, 기와를 받는 사람 등 분업이 잘 이루어진 기와이는
현장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작업 현장 옆에는 아마도 주인인듯 보이는 양반이
일을 잘하나 감시하듯이 긴 작대를 들고 지켜보고 있는듯..
하지만 누구 하나 그 양반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이 저마다 자기 일에 열중이다.
단원의 노동현장 작품이 좋은 이유는 노동의 즐거움이 그들의 표정에,
근육과 몸동작에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길쌈]
이 그림에는 길쌈의 도구들이 자세히 나타나 있어 당시 서민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화면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베매기를 하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고, 하단에는 배짜기를 하는 여인과이를 지켜보는 할머니,
등에 업힌 아이, 서 있는 아이가 보인다.
익살스러운 단원의 필치가 엿보이는 것은 마치 뒤에 서 있는 할머니가 베짜는 여자의
시어머니인듯,손자에게 시켜 며느리에게 뭔가 지시하고 있는 듯하다.
손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아마
"엄마, 함니가 좀더 빨리 하래?" 눈치도 없이 이런 말을 한 건 아닐까?
[논갈이]
봄이 되었다. 논을 갈아 한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소들의 육중하고 힘 있는 움직임에 굳었던 논바닥이 부슬부슬 일어나 흙들이 부드러워진다.
웃옷을 벗어던지 농부의 팔뚝에 힘이 들어가 근육이 생생히 보이고 거기에 땀방울이 맺힌다.
쨍그랑 쨍쨍~ 쟁기 부딪히는 소리가 날 것 같은 느낌, 경쾌하고 약동하는 농촌풍경이다.
[담배썰기]
이 그림은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방 안에서 담배를 써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에도 두 부류가 나타나는데
왼쪽 상단의 작두질 하는 사람과 오른쪽 아래의 담뱃잎을 정리하는 사람은 일하는 부류
(아마도 아랫사람)이고,오른쪽 상단의 작두질을 구경하는 사람과 왼쪽 하단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 일을 시킨 주인네들인 것 같다.
일하는 두 사람은 웃옷을 벗어젖히고 무더위를 이기며 일을 하고 있고
주인은 부채질을 하며 책을 읽고 있다. 작두질을 구경하는 젊은 청년은 주인의 아들인가?
김홍도의 그림에는 종종 이렇게 노사가 함께 나오는데 분위기는 아주 평화롭고 밝다.
즐겁게 일하는 노동자와 그들을 착취하지 않는 사주의 모습이랄까?
요즘 노동분쟁으로 시끄러운 회사들은 노사 막론하고 단원의 풍속화 속에
나타난 모습에서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행상]
부부로 보이는 행상 가족의 모습이다.
당시 행상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물품을 파는 상인을 말하는데 아무래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다보니 행색이 남루하다. 낡은 벙거지에 나무통 지게를 진
남자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아이를 업은 여인은 서로 행상을 떠나기 위해
헤어지려고 하고 있는 듯하다.
뭔가 아쉬움과 염려의 눈길로 아내에게 이런 저런 당부를 하고 있는 남편과
몸조심하라고 여러번 말하는 아내의 정이 느껴진다. 아이를 업고 저고리를 입은
엄마는 아이를 긴 행려에서 조금이나마 보호하려는 모심을 보이고 있고,
질끈 행전을 묶은 바지차림과 치마를 걷어올려 허리춤에 끈을 묶은
모습에서 노곤한 행려의 길을 떠나는 모습이 역력하다.
[벼타작]
쉴 새 없이 일하는 농부들의 숨가뿐 움직임이 그대로 묘사된 그림이다.
힘은 들지만 일 년 동안 애쓴 보람의 수확을 하는 이 순간 농부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하다.
한 짐 타작할 벼를 지게에 지고 오는 사내의 웃음 띤 얼굴, 벼를 힘껏 들어 올려 탁탁 치느라
얼굴이 힘이들어간 남자의 표정, 바닥에 떨어진 알곡들을 쓸어 모으는 사람, 타작벼를 묶는 사람
모두 재미있다. 뒤에는 주인쯤 되보이는 양반이 돗자리에 비스듬이 누워 긴 곰방대를 물고
에헴~ 거드름을 피고 있다. 돋자리 옆에 놓인 술병과 잔, 벗어 놓은 고무신까지
단원의 세심한 관찰이 그대로 보인다.
[빨래터]
이 작품은 꽤나 잘 알려진 단원의 작품 중 하나인데
바람의 화원에서도 이 장면이 묘사되어 나왔다.
팔다리를 걷어붙이고 편편한 돌판을 빨래판 삼아 방망이를 두들기며 동네 사람들
이야기에 여념이 없는 두 여인,흐르는 물에 훨훨 빨래를 흔들어 헹구며 짜내는 여인,
감은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여인과 그 옆에서 보채는 아기,바위 뒤에서 몰래 숨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여인들을 엿보고 있는 한량의 모습이 익살스럽다.
특히 이렇게 여인을 엿보는 장면처럼 춘의가 담긴 작품은 신윤복이 즐겨 그리는
스타일로김홍도의 풍속화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시각이다.
[우물가]
우물가란 그 마을의 모든 스캔들의 근원지이고 전달지이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어쩌구저쩌구 했다네~ 하는 여인들의 입방아에서부터
물 길어올리는 여인에게 슬쩍 접근하여 작업거는 남정네까지 마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도마에 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이 그림에서는 더위와 갈증에 지친 남정네가 옷고름을 풀어헤치고 갓을 벗어 걸치고
가슴털을 드러내며 여인에게 물 한모금을 청하자 여인은 수줍은 듯이 얼굴을 돌리고
물을 건네고, 이 우악스런 선비는 왈칵왈칵 물을 흘리면서 거침없이 마셔댄다.
물을 한동이 머리에 이고 바가지를 손에 들고 치마를 걷어붙인 채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도 보인다.
[자리짜기]
방 안에서 돗자리를 짜고 있는 남편과 물레를 돌려 실을 잣고 있는 아내,
그 뒤편에서 책을 펴놓고 글자를 막대기로 짚어가며 글을 읽고 있는 아들.
모두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평범하고 푸근한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장터길]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두 페이지에 걸쳐서 실린 작품이다.
장터에서 물건을 다 팔고 돌아가는 길인 듯, 말을 탄 사람들의 행장이 가볍다.
삿갓을 쓰거나 갓을 쓴 사람도 보이지만 거의 맨머리 차림이 많고 바지에는
행전을 둘러 말을 타고 활동하기에 편하도록 복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편자박기]
이 그림은 말에게 편자를 박는 것으로 조선시대 조영석의 편자박기도 유사한
그림인 것으로 보아 당시 이렇게 말편자를 박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네 다리를 묶어서 긴 대에 고정시키고 말이 하늘을 보도록 눕혀서
칼로 발굽의 바닥을 깎아낸 뒤 못을 박는다.
말이 무척 괴로워하고 있는 듯 하다.
중국에서는 말을 세워둔 채 발굽을 갈고 그 뒤에 편자를 박았다는데
조선시대에는 왜 굳이 말을 이렇게 ?혀서 괴롭게 하며 편자를 박았던 것일까?
말의 편자와 대갈은 말을 쉬지 않고 부리기 위한 인간 자신의 이익에서
나온 것으로 말에게는 큰 고통을 주는 일이라며 이익 성호는 이를 반대하는 글을 썼었다.
[대장간]
풀무에 바람을 넣는 견습생, 달군 쇠를 모루 위에 대주는 사람,
쇠를 모양에 맞게 쇠망치로 내리치는 사람,다 만든 연장을 숫돌에 가는 사람 등
대장간에서 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운
금속음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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