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28. 09:46ㆍ알아두면 조은글
조선의 명사들, 茶로 통(通)했나니! | |
2008년 6월 10일(화) / 삼성 / 조회(1123) | |
인류는 많은 것들에 열광(熱狂)해 왔고, 그것은 문명을 진보시키거나 문화를 성숙시켰습니다. 뭔가에 미치려면 열심히 공부하고 잘 알아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현재 폐암 투병 중인 소설가 이청준은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추사와 초의, 정약용이 차를 마시는 풍경이 눈에 떠올라 작품을 구상한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소설은 활자의 옷을 입지는 못했지요. 어쨌든 이청준 선생의 말에서 감을 잡은 분들이 계시겠지만, 추사ㆍ초의ㆍ다산이 미친 것은 바로 차였습니다.
'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동다송>으로 유명한 초의선사입니다. <동다송>은 순조의 사위였던 홍현주가 차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자, 이에 대한 대답으로 초의선사가 편찬한 책입니다. 차의 기원과 차나무의 생김새, 차의 효능과 제다법, 우리 차의 우월성 등이 <동다송>에 담겨 있습니다. 초의선사가 평생의 지기인 추사 김정희를 만난 것은 30세인 1815년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1786년 병오년 말띠 생이었습니다. 동년배인 초의와 추사는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를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초의선사가 여러모로 출중하고 재주가 많았으니, 한창 잘나가던 추사의 눈에도 초의가 썩 괜찮아 보였던 것이겠지요.
전남 대흥사의 초의선사 동상. 차를 마시면서 수행했다고 할 만큼 차를 사랑해서 다성(茶聖)으로도 불린다. 두 사람의 친분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 준 매개물이 차였습니다. 추사 역시 청나라에서 고급 차문화를 배워 와 차에 대해 일가견이 있었지요. 어쩌면 당시의 차는 요즘의 와인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토종 복분자 와인에 일가견이 있는 초의와 샤토 무통 로트쉴드 같은 프랑스 명품 와인을 줄줄이 꿰고 있는 추사…. 또한 추사는 승설(勝雪), 고다노인(苦茶老人), 다문(茶門), 일로향실(一爐香室) 등 차를 소재로 하는 수많은 호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와인을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자기 이름을 샤토 오브리옹이나 카베르네 소비뇽이라 짓지는 않는데, 추사는 차를 참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추사가 중국에서 구한 고급차를 초의선사에게 보내면, 초의는 그 차에 대해 품평을 했습니다. 그들의 젊은 날은 그렇게 차와 함께 무르익어 갔지요. 훗날 추사가 제주로 유배를 갔을 적에도 초의는 험난한 뱃길을 뚫고 추사를 찾아가, 한 해 동안 추사 곁에 머물며 그를 위해 차를 재배하기도 했습니다. 추사가 제주 유배시절 그린 그림이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입니다. 추사는 세상에 대한 미움과 울분을 삭인 채 소나무와 잣나무만 있는 고즈넉한 풍경 속에다 강하면서도 거침없는 일갈을 내뱉었지요.
추사적거지. 추사가 제주도 유배시절 지냈던 가옥이다. 사실 추사는,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폼 나는 청춘이었습니다. 혈기 방장한 20대에 청나라에 가서 세계적 석학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거침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들에게 칭찬까지 받았으니 추사가 얼마나 기고만장했겠습니까. 게다가 추사의 가계도는 그야말로 로열패밀리의 진수를 보여 줍니다. 고조부 김흥경은 영의정,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의 사위, 조부 김이주는 형조판서, 아버지 김노경은 이조판서…. 그러나 추사는 말년에 들어 젊은 날 어깨에 가득 집어넣었던 수십 개의 ‘뽕'을 다 빼 버립니다. 어쩌면 그건 오랜 시간 동안 함께했던 차의 품성을 닮게 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차란 내면의 빗장을 열어, 깊은 우물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자신의 참모습과 만나게 하는 문이니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차와 술은 지향점이 다른 듯합니다. 차가 내부를 향한다면 술은 외부를 향합니다. 차는 융합과 스며듦의 미각이고, 술은 외침과 쏟아 냄의 미각입니다. 차 마시며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사람을 보지 못했듯, 술 마시면서 고요히 침잠하는 사람 또한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초의와 추사의 만남은 남종화(南宗畵)와도 관련을 맺게 합니다. 산 넘고 물 건너 진도에서 갓 올라온 소치 허련을 추사에게 소개시켜 준 사람이 초의선사였습니다. 좀 까칠한 편이었기에 남 칭찬하는 데 인색했던 추사도 “압록강 남쪽에 이만한 그림이 없다”고 소치에게 칭찬을 하며 제자로 들였으니, 아마 초의선사의 후광도 어느 정도 작용을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로 인해 궁벽한 시골 출신의 신출내기 화가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지요. 추사ㆍ초의선사와 교류하다 보니 소치 허련도 어느덧 “니들이 차 맛을 알아!”를 외치게 됐습니다. 그리고 소치에서 시작된 차에 대한 탐닉은 대를 이어 의재 허백련에게 이어졌지요.
운림산방. 소치 허련이 말년에 정착해 화업을 닦았던 곳이다. 소치 역시 차의 정신을 귀히 여겼다. 참고로 북종화(北宗畵)는 무인적 화풍, 남종화(南宗畵)는 문인적 화풍을 갖고 있습니다. 형상보다 그림 속에 깃든 의미를 더 중시했던 남종화는 부드럽고 추상적인 느낌이 강한 반면, 형상 묘사에 치중한 북종화는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그림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비유를 하자면, 북종화는 소설이요 남종화는 시라고나 할까요. 그런 점에서 남종화는 차의 시각적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소치 허련의 먼 후손인 의재 허백련 역시 차 보급에 애를 쓴 사람입니다. 소치 가문은 5대째 화업을 이어 가고 있는데, 먼 친척인 의재는 소치의 아들인 미산 허형에게 그림을 배웠습니다. 의재는 일본 사람이 경영하던 5만여 평의 무등산 차밭을 인수해 춘설다원(春雪茶園)이라 이름 짓고, 차 재배에 힘썼습니다. 그는 “차를 마시면 흥하고 술을 마시면 망한다”는 다산 정약용의 말을 업그레이드하여 “차를 마시고 사랑하는 나라는 부흥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망한다”고 말했지요. 의재에게 부국강병의 길은 군사력이 아니라 차력(?)이었던 것입니다. 육당 최남선은 광주에 갈 때면 꼭 의재의 춘설다원을 찾아 차를 마셨습니다.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도 의재의 절친한 다우(茶友)였다고 합니다.
광주 연진미술관에 있는 의재 허백련 좌상.
빼어난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춘원은 무척 안타깝게도 친일로 인해 그가 쌓아 놓은 공덕을 일시에 무너뜨렸습니다. ‘2ㆍ8 독립선언서'를 쓰고 임시정부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펼쳤던 춘원은 그로 인해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쩌자고 훗날 친일을 했는지…. 어쨌든 이후 그의 삶은 무척 고달파졌습니다. ‘이광수 타도'라는 플래카드가 그가 살았던 시대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친 심신을 의지할 곳을 찾던 춘원은 경기도 운악산 자락에 있는 봉선사에 몸을 맡기고, 스님이 만들어 준 ‘다경향실(茶經香室)'에서 차를 벗하며 마음의 평화를 갈구했습니다. 고독하고 남루한 영혼이 기댈 것이라곤 차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춘원에게는 오로지 찻물에 차가 우러나는 촌각(寸刻)이 평온을 허락받는 유일한 시간이었을 테지요.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 이제 다산 정약용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차에 미친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정약용을 빼놓으면 천하의 정약용도 삐칠 것이 분명하니 말입니다. 다산은 소문난 차 예찬론자였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제다(製茶)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제자들이 차를 마시며 신의를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다신계(茶信契)'를 만들기도 했습니다.(그러고 보니 다산의 형인 정약전은 물고기에 미쳐 <자산어보>를 집필했군요. 뭔가에 미치는 것에도 집안 내력이 있나 봅니다.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정약용 생가. 다산이 차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건 유배시절입니다. 다산은 만덕산 기슭에 자리잡은 다산초당에 머물며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을 써 내려갔습니다. 다산의 이름을 21세기까지 빛나게 만든 주역인 이 책들을 쓰던 시간은 곧 다산이 차에 심취하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산(茶山)'은 원래 차나무가 많은 만덕산의 별칭이었는데, 정약용이 차를 유달리 좋아했기에 자신의 호를 아예 다산으로 바꿔 버린 것이지요. 다산에게 차 맛의 깊이를 일깨워 준 사람이 바로 혜장스님이었습니다. 정약용은 차가 마시고 싶어질 때면 혜장스님에게 차를 청하는 편지인 ‘걸명소(乞茗疏)'를 보냈습니다. 걸명소에서 다산은 자신이 차에 걸신이 들렸다고 표현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생각나는 것도, 파란 하늘에 구름이 보기 좋게 떠 있을 때 생각나는 것도, 휘영청 밝은 달이 냇가에 드리워질 때 생각나는 것도 차라고 했지요. 차에 매료된 다산은 앞에서 잠시 거론했듯 “차를 마시면 흥하고, 술을 마시면 망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산에게 차를 전수했던 혜장스님은 정작 술병이 나 40세의 나이에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다산초당. 차는 재배되는 곳의 물로 우려야 맛있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낮에 차를 마실 때 한들한들한 미풍까지 함께 마셨고, 밤에 차를 마실 때는 달빛의 향기도 함께 들이마셨습니다. 초의선사는 찻물 끓는 소리를 대숲소리ㆍ솔바람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한 잔의 차를 통해 우주를 보았고, 그 우주의 이치를 헤아렸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호칭에서도 차에 대해서는 너무 인색합니다. 홍차ㆍ국화차ㆍ결명자차ㆍ과일차 등을 그냥 ‘차'로 뭉뚱그려 말하면서도 커피는 헤이즐넛ㆍ블루마운틴ㆍ에스프레소ㆍ카푸치노 등 만드는 방법과 재료, 원산지에 따라서 아주 정확하게 분류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차는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것만을 가리키는 데 말입니다.
‘다반사(茶飯事)'란 말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란 뜻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차를 마시는 일이 다반사가 되면 좋겠습니다.
직장 선후배와 찻자리를 가져도 좋겠습니다. 옛 조상들처럼 차를 취미로 삼아도 좋고요. “첫 잔은 목구멍을 적시고 둘째 잔은 고독한 번민 씻어 주네.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 살펴주니 생각나는 글이 오천 권. 넷째 잔에 가벼운 땀 솟아 평생의 불평 흩어지고, 다섯째 잔에 기골이 맑아지네. 여섯째 잔에 신선과 통하고 일곱째 잔에 두 겨드랑이 맑은 바람 솔솔 이네”라는 이규보의 말을 한 번 믿어 보시죠. ◆ 어떻게 보관하는 것이 좋은가 차는 흡착성이 강해 다른 물질의 향을 흡수하고 공기 중에 노출되면 금방 변질되기 때문에, 보관할 때는 꼭 밀봉해야 한다. 햇빛에 직접 닿으면 폴리페놀 성분이 산화되므로 그늘에 두는 것이 좋으며, 수분을 흡수하지 않도록 건조한 장소에 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 어떤 차가 좋은 차인가 마른 모양이 균질한 것, 표면에 윤기가 흐르는 것을 선택한다. ◆ 우전은 뭐고 중작은 뭐지? 차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발효 정도와 찻잎을 채취한 시기에 따라 나누며, 산지나 공장에 따라 지칭하는 이름이 달라진다. 우전ㆍ중작 등은 채취 시기에 따른 명칭으로, 우전차는 곡우 전에 차나무 첫 새순으로 만든 차를 말한다. 처음 만드는 차이기에 귀하고 비싸다.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난 새순을 따서 만든 차는 세작(여린차), 양력 6월 하순에서 7월 사이에 잎이 좀 더 자라 넓게 퍼진 잎을 따서 만든 차는 중작(보통차), 양력 8월 하순에서 9월까지 다 자란 잎을 따서 만든 차는 대작(끝물차)이라고 부른다. ◆ 어떻게 마시는 게 좋은가 찻잎이 부드러운 여린 차일수록 약한 온도에서 우려야 은은한 향과 함께 빛깔을 음미할 수 있다. 우전차를 우려내는 온도로는 60~70℃ 정도가 적당하며, 티백은 80℃ 정도에서 우려낸다. 우려내는 시간은 2분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맛이 텁텁해진다.
지근화 / 자유기고가 (사진 최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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