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28. 09:27ㆍ알아두면 조은글
음탕한 아프로디테(3)
Correggio. Mercury with Venus and Cupid (The School of Love). c.1525.
알몸으로 자고 있던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후닥닥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청동실 그물 때문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둘은 그물에서 헤어나려고 발버등을 쳤지만, 그럴수록 그물은 점점 사나운 기세로 몸을 옥죌 뿐이었다.
"잘 논다." 벌거 벗은 채 그물을 쓰고 누운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를 내려다보면서 제우스가 말했다.
"자네 헤파이스토스가 부러운가, 아니면 아레스가 부러운가?"아폴론이 헤르메스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지요?" 헤르메스가 되물었다.
"질투하는 헤파이스토스가 부러운가, 무안당하는 아레스가 부러운가,그 말이야."
"둘 다 부럽소."
"자네도 저 그물에 한번 갇혀 보고 싶다, 그 말인가?"
"그물이 세 곱절쯤 질겨서 영원히 저렇게 갇혀 있을수 있으면 좋겠소."
· 전쟁신 아레스는 힘이 천하장사였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튼튼하고도 정교한 그물은 힘으로 어떻게 해 볼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기가 민망해진 신들은 헤파이스토스에게 어서 이 둘을 풀어 주라고 말했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씩씩거리고 서 있을 뿐 그물을 풀어 주려고 하지않았다.
· 포세이돈이 나서서 아레스에게 애원했다. 헤파이스토스는 아레스에게서 사과와 보상의 약속을 받아 주겠다는 포세이돈의 말을 듣고서야 마지못해 그물을 풀어 주었다.
· 서기 1세기 로마의 작가 오비디오스는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o에서 처녀 레우코노에의 입을 빌려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이 책에 나오는 로마식 고유명사는 모두 그리스식으로 바꾸었다.
·
........아프로디테와 아레스가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는 현장을 엿본 분도 바로 이 태양신.
태양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없는 법‥‥‥.
이들의 괴망한 짓을 괘씸하게 여기신 태양신,
아프로디테의 지아비인 헤파이스토스에게 밀고 했다.
헤파이스토스가 누구인가?
헤라여신의 아들이자 아프로디테의 지아비가 아닌가?
헤파이스토스를 보라
아내가 다른 신과간통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하늘이 노래질 수밖에
헤파이스토스는 충격을 받고 만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벼리고 있던 연장을 다 떨어뜨렸다니까.
곰곰 생각하던 헤파이스토스.
즉시 청동을 두들겨,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가는 실을 만들고. 이 실로 사슬과 그물과 올가미를 만든다.
헤파이스토스가 손수 베틀에 걸어 짠 이 그물은,
천장의 들보에 매달린 거미줄보다 더 가늘고 정교했다.
건드리기만 해도 탁 걸려들게 되어 있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이렇게 만든 사슬과 그물과 올가미를
자기 침대에다 쳐 놓고는,
자기 아내가 다른 신을 불러 들이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줄도 모르는 아프로디테,
또 한 번 아레스를 그 침대로 꾀어들여 사랑을 나눈다.
헤파이스토스가 손수 만들었는데 여부가 있을 리 없지.
남의 지아비를 탐낸 아프로디테와 남의 아내를 탐낸 아레스는
꼼짝없이 이 사슬과 그물과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다.
렘노스의 신 헤파이스토스,
옳다꾸나 하고, 신들을 모두 불러다 놓고 침실 문을 열었다.
발가벗은 채 서로 껴안고 있는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모습,
신들에게는 참으로 볼 만한 구경거리였을 터,
신들 중 한 분이 하신 말씀,
"치욕을 당해도 좋으니,
나도 발가벗은 채로 아프로디테와 한번 저렇게 갇혀 보았으면......."
·신들은 이 둘의 꼴을 보고는 배를 잡고 웃었는데,
이게 천궁에서는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로 신들의 입에 올랐더란다.
음탕한 아프로디테(4)
Angelica Kauffman. Venus Persuades Helen to Fall in Love with Paris.
그물에서 풀려나자 아레스는 제 신전이 있는 트라키아로 도망쳤고, 아프로디테는 처녀의 샘이 있는 퀴프로스섬으로 갔다. 당시 퀴프로스에는 몸을 담그기만 하면 처녀성을 잃은 여성도 처녀로 거듭나게 해 주는 처녀의 샘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샘이 그 섬에 실제 있었다면 여성의 정조 관념도 다소 희박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퀴프로스 여성들이 음란한 여성, 웃음을 파는 여성으로 불렸던 것은 바로 퀴프로스에 그런샘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물에 걸린 채 알몸으로 버둥거리는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를 내려다보면서 헤르메스가 했던 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물이 세 곱절쯤 질겨서 영원히 저렇게 갇혀 있을수 있으면 좋겠소."
헤르메스는 아프로디테의 유혹을 받게 될 날을 진심으로 기다렸던 것임에 분명하다.
헤르메스는 재간 덩어리, 꾀주머니 신이다. 그는 제우스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헤라의 아들은 아니다. 말하자면 제우스가 다른 데서 낳아 온 자식인 것이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질투심 많기로 유명한 헤라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특이한 신이다. 그만큼 재주가 많고 꾀가 많다.
원래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심부름을 도맡는 전령신(傳令神)이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전령신으로 삼으면서 지팡이 하나와 날개가 달린 가죽신을 내렸다. 지팡이는 신이든 인간이든 건드리기만 해도 잠이 들게 하는 마법의 지팡이, 가죽신은 하루에 만리 길을 너끈하게 달릴 수 있게 하는, 말하자면 축지법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의 신발이었다.
올림포스의 신들 중에서 제우스의 심부름으로 이승과 저승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신은 헤르메스 밖에 없다. 또 헤르메스는 말솜씨가 좋고 거짓말을 표 안나게 잘 해서 상업, 도박, 돈놀이 같은 것을 주관하기도 한다. 그리스에는 신들의 석상이 많다. 신들의 석상중에 뱀이 감고 올라가는 지팡이를들고 있는 신의 석상이나 날개 달린 가죽신을 신고 있는 신의 석상은 모두 헤르메스의 석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아프로디테는 이 헤르메스와도 사랑을 나누었다. 누가 유혹했을까? 아프로디테에게는 마법의 띠 '케스토스히마스'가 있다. 아프로디테가 이띠를 매고 유혹하면 신이든 인간이든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헤르메스에게 있는 것은 마법의 지팡이와 마법의 신발뿐이다. 따라서 아프로디테가 유혹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 사이에서 두 아들이 태어난 것을 보면. 이들이 잠깐 밀회를 즐겼던 것도 아닌 모양이다. 먼저 낳은 아들의 이름은 헤르마 프로디토스(Hermaphroditos), 나중에 낳은 아들의 이름은 에로스인데.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이름이 심상치 않다. 헤르메스(Hermes)와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이름을 합성한 이름이 바로 헤르마프로디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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