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30. 08:11ㆍ서예일반
<文字學 資料>
書 體 의 變 遷 |
陳泰夏 稿 |
(1) 甲骨文 殷(商)나라 20代 王인 盤庚으로부터 마지막 王인 31代 帝辛 때 殷이 멸망하기까지 (B.C.1112)의 8代 12王의 273년간 사용된 文字. 殷나라가 멸망한 뒤 땅 속에 매몰되었다가 淸나라 光緖25년(1899년)에 河南省 安陽縣 小屯村 洹河(원하)변 남쪽 밭에서 출토되면서 당시 金石學者인 王懿榮(왕의영)에 의하여 殷代의 文字로 고증됨. 甲骨文이란 명칭은 龜甲獸骨文 곧 주로 거북의 腹甲과 소의 어깨뼈에 새겼던 文字였기 때문에 '甲骨文'이라고 명명하였다. 殷墟, 書契, 殷契, 契文, 甲文, 殷墟文字, 貞卜文字, 卜辭文字, 甲骨卜辭라고도 칭한다. 지금까지 출토된 甲骨片은 약 16만편이며, 발견된 甲骨文의 字數는 약 4,500여자로서 그 중 완전 해독된 것은 1,000여자에 이른다. 부언할 것은 甲骨文은 東夷族의 上古史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므로 우리의 젊은 학자들이 甲骨文을 연구해야 우리의 上古史를 올바로 찾을 수 있다. (2) 鐘鼎文 '鐘鼎文'이라고 칭한 것은 주로 周代의 鐘이나 鼎에 鑄造한 글자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古代의 銅器를 크게 나누면, 禮器와 樂器로 구분되는데 禮器에는 鼎 곧 솥이 제일 많고 樂器에는 鐘이 제일 많기 때문에 鐘鼎으로써 銅器를 총칭한 것이다. 그러나 銅器에는 鐘과 鼎 외에도 '尊(준), 溦(이), 篑(화), 盤(반), 敦(돈), 爵(작), 溙(이), 盂(우), 壺(호)' 등 많이 있는데 '鐘鼎文'이라고 칭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하여 오늘날은 일반적으로 '金文'이라고 칭한다. 先秦時代에는 '銅'을 '金'이라고 칭한데서 '金文'이라고 한다. '吉金文'이라고도 칭하는데 이것은 '祭禮'를 古代에는 '吉禮'라고 칭했으므로 '祭禮'에 사용했던 銅器를 '吉金'이라고 칭한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銅器上의 籌字 방법은 凹字形(요자형)의 陰文이 대부분이나, 凸字形(철자형)의 陽文도 있는데, 凹字形을 '款(관)', 凸字形을 '識(지)'라고 칭하므로 '鐘鼎款識'라고도 칭한다. 戰國時代 이후에는 鑄造한 뒤에 刻字한 것도 있다. 靑銅器상의 銘文은 商代 후기에 시작하여 周代에 이르러 크게 발흥하여 秦, 漢代로 계승되었다. 그러므로 '金文'의 시대적 한계는 殷, 周, 秦, 漢代까지의 靑銅器上의 金文을 말한다. (3) 大篆 許愼의 說文解字 斲文에 "今敍篆文, 合以古狤"라 한데서 '古狤(고주)'라는 명칭이 나오고, "及宣王太史狤著大篆十五篇, 與故或異"라고 한 것으로 보면, '古文'이란 말은 靑銅器에 새겨진 銘 곧 '金文'을 일컫는 것이며. '狤文'은 西周후기에 쓰였던 字體로서 '古文'의 자형과는 좀 달랐던 글자로서 '大篆'이라고도 칭하였음을 알 수 있다. (4) 小篆 秦始皇의 七國 統一 이전에는 各 나라의 字形이 달랐던 것인데, 칠국을 통일(B.C.221)하고서 李斯와 趙高로 하여금 종래의 서체인 '大篆'을 省改하여 字形을 統一한 것을 '小篆'이라고 한다. 秦始皇 때 통일된 書體라 하여 '秦篆'이라고도 칭한다. (5) 隸書 秦나라가 七國을 통일한 뒤 獄事가 많이 일어나 업무처리가 복잡하여지자 간편한 방법을 구하여 번잡한 篆書體를 간략히 만들어 쓴 書體가 '隸書'이다. 실은 春秋戰國 이래 민간에서 쓰여오던 通俗體를 처음으로 정리하여 隸書體로 만든 이가 秦나라 때 '程邈(정막)'이다. '隸書'라는 말은 당시 徒隸 곧 胥吏들이 쓰던 書體라는 뜻에서 취해진 명칭이다. (6) 楷書 '楷書'體는 西漢末에 일어나 東漢末에 성숙되고, 魏晉 이후에 크게 성행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楷'字에 대하여 淮南子에 "楷木生孔子家上, 其幹枝疎而不屈, 以質得其直也"라고 한 바와 같이 '楷'는 본래 木名으로서 楷樹의 가지처럼 곧바른 書體의 명칭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楷書를 '眞書, 正書'라고도 칭한 것은 곧 字體가 方正하고 筆篐이 平直하여 法式과 模範의 書體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漢代에 王次中이 隸書를 변형하여 楷書體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西漢末에도 간간히 正書體가 쓰였다고 한 기록으로 보면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書體임을 알 수 있다. (7) 行書 '行書'는 楷書의 변체로서 곧 正書와 草書의 중간체로서 通行되는 서체라는 뜻에서 '行書'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다. 後漢 때 劉德昇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역시 여러 사람에 의하여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書體라고 할 수 있다. 行書는 晉代의 王羲之, 王獻之 父子에 이르러 정점을 이루었으며, 붓으로 쓸 때는 오늘날까지 일반적으로 널리 통행되고 있는 서체이다. (8) 草書 '草書'는 書體의 발달과정으로 보아 '行書'體가 더욱 速筆體로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漢代 初에 '章草'에서 시작하여 '今草'가 나오고 唐에 이르러 '狂草'로 발전하였다. '草書'는 漢初에 '隸書'로부터 발전하였는데 史游가 쓰기 시작하였으며, '急就章'에서 '章草'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杜度가 이 書體를 처음 썼는데, 漢나라 章帝가 좋아하여 '章草'라는 명칭이 생겼다고도 한다. 隋, 唐이후 '今草'가 널리 유행하면서 '章草'는 쇠퇴하였다. '今草'는 後漢의 張芝에서 시작된다고 전한다. 東晋이후에 草書가 크게 유행하였으며, 역시 王羲之, 王獻之 父子 때 절정을 이루었으며 '狂草'는 唐代의 張旭, 懷素의 자유분방한 서체에서 얻어진 명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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