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자성어

횡행개사(橫行介士)

水西散仁 2022. 9. 24. 20:23

사해(四海)를 횡행(橫行)하는 게
옛 그림 속에는 게를 그린 것이 많다.
게 그림에 반드시 함께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갈대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어째서 게 그림에는 갈대가 같이 그려지는 걸까?
게가 갈대를 물고 있는 그림은 전려도(傳臚圖)라 한다.
려(臚)는 전한다는 뜻인데, 중국 음이 갈대 로(蘆)와 같다.
아래 명나라 때 화가 서위(徐渭)가 그린 그림에도 전로(傳盧)라는 두 글자가 또렷하게 적혀 있다.
전려는 예전 과거 시험에서 합격자를 발표하던 일종의 의식과 관련된 말이다.
전시(殿試)에서 합격자 등수를 발표하는 날, 황제가 전각에 이르러 선포하면
각문(閣門)에서 이어받아 계단 아래로 전달한다. 그
러면 호위 군사가 일제히 그 이름을 받아 큰 소리로 외친다.

합격자의 이름이 한 사람 한 사람 발표될 때마다 각문 밖에선 무수한 탄식과 환호가 엇갈렸다.
생각만 해도 마음 설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게는 한자로 해(蟹)다. 각 지역에서 보는 향시(鄕試)에서 합격한 사람의 명단을 중앙 정부에 올려
서울의 과거에 응시하게 하는 것을 발해(發解)라 하였다.
해(解)와 해(蟹)의 음이 같고, 또 게는 등딱지가 갑옷처럼 되어 있어 과거에 갑제(甲第),
즉 1등으로 합격하라는 의미가 된다. 즉, 이 그림은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라는 뜻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대학이나 고시 합격을 축원하는 그림인 셈이다.

명나라 서위(徐渭)의 <전려도(傳臚圖)>
아래 김홍도의 그림에는 갈대와 게 두 마리를 그렸다.
그림 위에는 '바다 용왕이 계신 곳에서도 옆으로 걷는다[海龍王處也橫行].'라고 적었다.
횡행(橫行)이란 거리낌 없이 멋대로 다닌다는 뜻인데, 게가 바로 걷지 못하고 옆으로 기는 것을
이렇게 재미나게 말한 것이다.
이것은 임금 앞에서 제멋대로 군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제 뜻을 펼친다는 의미이다.
게의 별명이 횡행개사(橫行介士)이다. 임금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바른 말을 하는 강직한 선비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