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정약용과 혜장선사(丁若鏞과 惠藏禪師) - 茶詩

水西散仁 2017. 8. 2. 15:42

     

    다산 정약용과 혜장선사(茶山 丁若鏞과 惠藏禪師)

     

    다산이 康津(강진) 流配地(유배지)에 머물 때 이웃 白蓮寺(백련사) 住持(주지)는 혜장이었다. 그가 高僧(고승)임을 안 다산은 만나러 가서 반 나절이나 이야기 하면서도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作別(작별)하고 떠난지 얼마 후 혜장이 부리나케 쫓아왔다.

     

    “公(공)은 어찌하여 사람을 속이시는가? 그대가 與猶堂(여유당) 아니신가? 小僧(소승)은 밤낮으로 思慕(사모)하였는데 어찌 차마 이같이 하시는가?” 손을 잡고 돌아와 함께 묵었다. 밤새 이야기 하다 周易(주역)에 이르렀다. 다산이 물어보니 막힘이 없었다. 다산은 크게 놀라 “과연 宿儒(숙유)로다!” 하고 稱頌(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주역과 論語(논어)를 좋아하여 硏究(연구)함에 빠뜨림이 없었고 易學(역학) 音樂(음악) 性理學(성리학)을 精密(정밀)하게 鍊磨(연마)하여 俗儒(속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는 다산이 혜장의 浮屠塔(부도탑)에 쓴 碑文(비문)이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혜장은 大端(대단)한 學僧(학승)이었던 모양이다. 다산은 茶道(다도)를 혜장에게서 배웠다. 그들의 茶談(다담)은 그 얼마나 香氣(향기)로웠을까?

     

    一簾山色靜中鮮  일렴산색정중선

    碧樹丹霞滿目姸  벽수단하만목연

    叮囑沙彌須口茗  정촉사미수구명

    枕頭原有地漿泉  침두원유지장천

     

    발에 비친 산빛이 고요한 가운데 신선해

    푸른 나무 붉은 노을이 눈에 가득 곱구나

    사미승에게 차 끓이도록 하니

    베개 머리에 원래 지장의 샘물 있었던 듯.

     

    이는 山居雜興(산거잡흥)의 한 首(수)인 茶詩(다시)다.

    ‘地漿(지장)’은 黃土水(황토수)로서 韓方(한방)의 藥(약)이다.

     

    登嶺採茶  등령채다

    引水灌花  인수관화

    忽回首山日已斜  홀회수산일이사

    幽菴出磬  유암출경

    古樹有雅  고수유아

    喜如此閑如此樂如此嘉  희여차한여차락여차가

     

    고개마루에 올라 찻잎 따고

    물 끌어들여 꽃에 물 주네

    문득 고개 돌리니 해는 기울었는데

    깊은 암자에 풍경이 우네

    고목엔 까마귀 깃드나니

    기쁘도다 이러한 한가함이, 이러한 즐거움이, 이러한 아름다움이.

     

    이 시는 和中峰樂隱詞(화중봉악은사) 第三首(제삼수)다.

    大抵(대저) 猶太人(유태인)들은 隱者(은자)의 存在(존재)를 認定(인정)하지 않았으나 中國(중국)이라면 事情(사정)이 달라진다. 道家(도가)의 理想(이상)은 ‘世上(세상)에 숨는 일’이었던 까닭이다. 우리의 혜장선사라고 무엇이 달랐겠는가? 隱居(은거)의 즐거움을 그 어떤 은자보다도 明澄(명징)하게 노래하고 있음에랴!

     

    “道德經(도덕경)에 ‘氣(기)를 한 곳으로 모아 능히 어린 아이처럼 純粹(순수)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는데 그대는 固執(고집)이 세고 굽히지 않는다. 어린애처럼 부드러울 수 정녕코 없겠는가?”

     

    일찍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자 혜장은 스스로 호를 兒庵(아암)이라고 하였다.

     

    삼베옷 입고 山門(산문)을 내려가지 않았는데

    지금껏 道(도)를 이루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그 누가 잣나무 공부에 힘을 얻을까?

    다만 蓮花 世界(연화 세계)에 이름을 떨치리라

    시름 겨우면 미친 듯 노래부르고

    술에 취하면 맑은 눈물 흘린다네

    부들 방석에 홀로 앉아 失笑(실소)하니

    하늘 백성되려고 하지 않으리. - 혜장 -

     

    이 시는 중국에까지 전해졌고 金石學(금석학)의 大家(대가)였던 翁方綱(옹방강)은 너무 기쁜 나머지 忘形之契(망형지계) 즉 ‘꾸밀 必要(필요)가 없는 사이’를 宣言(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옹방강은 自身(자신)의 肖像畵(초상화)와 詩集(시집) 등의 膳物(선물)을 秋史(추사) 편에 보냈다. 이 일로 추사와 혜장의 만남이 이루어졌으니 시 한 편의 위대한 힘이 이와 같다고 하겠다.

     

    參考(참고)로 적자면 혜장 또한 草書(초서)로 一家(일가)를 이룬 名筆(명필)이었다는 사실이다. 知音(지음)이라는 말은 有名(유명)한데 知書(지서)하는 말은 왜 없을까?

     

    “祖師(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庭前栢樹子).”

     

    柏林禪寺(백림선사)의 스님들과 趙州禪寺(조주선사)의 禪問答(선문답)이 바로 ‘잣나무 공부’ 이야기임은 勿論(물론)이다.

     

    白墜紅瓢綠滿枝    백추홍표녹만지

    凄凉芍藥與薔薇    처량작약여장미

    微香正在窓前竹    미향정재창전죽

    時復臨風誦杜詩    시부림풍송두시

     

    흰꽃 떨어지고 붉은 꽃 바람에 날리고 잎은 가지 가득한데

    처량하노니 작약과 장미로다

    은은한 향기는 창 앞 대숲에서 풍겨나오니

    때로 바람 쏘이며 두보의 시를 읊조리네. - 혜장 山居雜興 -

     

    이 시는 山居雜興(산거잡흥) 二十首(이십수) 가운데 한 편이다.

     

    自然(자연)과 더불은 生活感情(생활감정)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流露(유로)해낼 地境(지경)이라면 스님이기 以前(이전)에 한 사람의 風流客(풍류객)이 아니었으랴? 사람들이 그를 文人學者(문인학자)로 規定(규정)한 까닭을 비로소 알 듯도 싶음에랴.

     

    優曇華(우담화)가 빛남이여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누나

    가볍게 날아드는 金翅鳥(금시조)여

    머물다 또 나는구나

    슬프다 이 아름다운 修道者(수도자)여

    책이 있어도 전할 이 없네

    그대와 함께 떠나려 했거늘

    손으로 검은 열쇠를 열었는가?

    고요한 밤 낚시를 걷으니

    밝은 달빛만 배에 가득하구나

    늦은 봄은 입 다물어

    숲만 더욱 고요하다

    이름은 장수하는 아이인데

    하늘은 수명에 인색했도다

    명색은 스님이지만 행실은 선비라서

    군자가 더욱 애석해 하는 바이네. - 다산 -

     

    혜장선사가 40세를 一期(일기)로 別世(별세)하자 다산은 蓮坡大師塔文(연파대사탑문)에 이렇게 哀悼(애도)했다. 大學者(대학자)의 애도를 받을 정도라면 짧은 생애를 어찌 不遇(불우)하다고만 할 수 있으랴?

     

출처 : zerocan
글쓴이 : 東素河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