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애지기(天涯知己)
예전에는 벗에게 주는 선물로
짚신을 정성껏 곱게 삼아 보내는 일이 많았다.
볏짚으로 만든 신발인 초혜(草鞋), 또는 망리(芒履)라고도 부르는
짚신을 보내 그 신발을 신고 한 번 다녀가기를 청하는 뜻이 담긴 선물이다.
짚신처럼 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붉은 콩을 보내는 관습도 있었다.
'상사자(相思子)'라고도 부르는 붉은 콩 홍두(紅荳)를 보냈던 것이다.
그 외에 '청당(靑棠. 자귀나무)'이나 그 잎을
「천애지기(天涯知己)」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중국에서는 이 '청당(靑棠. 자귀나무)'을 뜰에 심으면 미움이 사라지고
친구의 노여움을 풀고자 할 때는 잎을 따서 보내어
친구의 불편한 심기를 풀곤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청당(靑棠)'은 줄기로 절구공이로 만들어
부엌에 두고 쓰면 집안이 화목해진다는 이야기가 있고,
서양에서는 '청당(靑棠)'을
비단나무(Silk tree)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좋은 이미지의 나무인 것은 틀림없다.
특히 '청당(靑棠)'의 깃털 모양의 나무잎은 낮이면 활짝 피지만
밤이되면 양쪽의 잎새가 서로 합쳐져서
꼭 껴안은 듯한 모양으로 밤을 지샌다.
이를 두고 나무들이 밤이면 사랑한다고 하여
금실 좋은 합환목(合歡木) 또는 합혼수(合婚樹)라고 하여
연인들이 선물로 주고 받기도 했다.
그런 의미가 있어 '청당(靑棠)'은 「천애지기(天涯知己)」에게 보내는
선물 품목에 들기도 했던 모양이다.
중국 청(淸)나라 후기 때 대학자 옹방강(翁方綱*1733~1818)은
추사 김정희의 스승이기도 한데,
서재의 이름이 청당실(靑棠室)이었다.
추사와 동갑이던 그의 아들 옹수곤(翁樹崑*1786~1815)은
아버지의 서재와 짝이 되게 자신의 서재에
홍두실(紅荳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천애지기(天涯知己)」였던 조선의 문신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에게
홍두 두 그루를 보내어 우정을 표현했으며
추사에게는 홍두산장(紅荳山莊)이라는 편액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홍두(紅荳) 역시 벗들에게 보내는 사모의 선물 중의 하나였다.
사랑과 정성을 담은 붉은 마음 단심(丹心)을 상징해서였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알아주는 각별한
「천애지기(天涯知己)」친구에게 보내는
일종의 초청장과 같은 선물들인 것이다.
술을 좋아해서 아호(雅號)가 '취부(醉夫)'인
조선 중기 문신 윤결(尹潔.1517~1548)은
친구가 보내 온 짚신을 받고 이런 시를 남기기도 했다.
〈'산승이 짚신을 보내주어서(山人奇鞋)〉
「벗이 멀리서 신발 한 컬레를 보낸 것은
내 뜰에 푸른 이끼 덮인 걸 알아서겠지
그리워라, 작년 저문 가을 절을 찾아서
온 산 가득한 붉은 단풍잎을 밟고 다녔지」
故人遙奇一雙來 知我庭中有綠苔
(고인요기일쌍래 지아정중유록태)
仍憶去年秋寺暮 滿山紅葉踏穿回
(잉억거년추사모 만산홍엽답천회)
연암 '박지원'은 "벗은 제2의 나"라고 했고,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천애지기(天涯知己)」'홍대용'에게는
"그대와 나눈 대화가 10년 독서 보다 낫소"라고도 했다.
당나라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을 생각하며 지은 시(詩)
「춘일억이백(春日億李白)」에 나오는
"이곳 위수 가에는 봄 나무가 싹트나
그곳 강동에는 해가 구름에 지(暮)리다.
어느 때나 함께 술잔을 나누며
다시 한 번 마냥 글을 논하리오."
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위북춘천수 강동일모운
何時一樽酒 重興細論文 하시일준주 중흥세논문
이라고 한 詩에서
벗에 대한 사모의 정이 일어 남을 비유하는
'봄철의 수목과 저녁 무렵의 구름'이라는 두보의 시어(詩語)
「춘수모운(春樹暮雲)」이라고 한 이후
「천애지기(天涯知己)」는 멀리있는 친구를 그리는 성어가 됐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으로 '간서치(看書癡)'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는
평생 읽은 책이 2만권이 넘고 베낀 문자가 수백 권이다.
그런 '간서치' 이덕무는 친구에 대해 이런 명 문장을 남기기도 했다.
"만약 나를 알아 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애를 쳐 손수 오색실을 물들이리라.
열흘에 한 가지 빛깔을 이룬다면
50일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룰 수 있으리.
따뜻한 봄볕에 말린 다음, 아내에게 부탁해 백 번 정련(精鍊)한
금침으로 벗의 얼굴을 수 놓게 하리라.
그런 후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오래된 옥으로 축(軸)을 만들어
높은 산과 양양히 흐르는 강물 사이에다 펼쳐 놓고 말없이 마주 보다가
뉘엿뉘엿 해 질 녘에 품에 안고 돌아 오리라."
이 얼마나 절절하게 벗을 갈망하는 감동적인 친구 예찬의 글인가?
마음으로 만나고 싶은 친구,
가슴으로 따스함 전해 줄 수 있는 친구,
오롯이 사람의 길을 함께 가고자하는 친구,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相敬相愛)
자기의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 (知己之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