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암(亨菴)의 송표도(松豹圖)
사직(絲織) 바탕에 엷게 채색한 조선 후기 그림으로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27.8cm, 세로 20.8cm의 소폭으로 과거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이홍근(李洪根)씨가 수집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작품입니다.
[제화글의 원문과 내용]
烟烟雙瞳明迅電(연연쌍동명신전) 연기나는 두 눈은 밝고 번개같이 빠른데
哮哮一咲起寒風(효효일소기한풍) 어흥하는 한 소리에 찬바람이 이네.
亨菴題 형암이 적는다.
* 烟烟(연연) : (연기가)피어나다. 피어오르다.
* 哮哮(효효) : 많은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느낀점]
모시 바탕에 엷은 채색으로 소나무와 표범이 그려져 있는 조선후기 민화(民畵)입니다.
그림의 왼쪽 여백에 행서로 칠언절구의 시가 적혀있고 글씨의 말미에 ‘형암(亨菴)’이란
호를 적었는데, 이 분이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옛 부터 민화는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이름없는 민중 화가에 의해 그려진 그림으로써
가장 대표적인 민화가 신년 초에 각 집안의 대문이나 방문 앞에 붙이는 호작도였습니다.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호작도, 국립중앙막물관]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호작도, 미국 필라델피아박물관]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호작도 두점]
이런 호작도(虎鵲圖)는 경물이 주로 소나무와 호랑이, 까치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그림이
대부분인데, 소나무는 신년(新年), 호랑이는 보(報), 까치는 희(喜)를 상징하여
「신년보희(新年報喜)」의 뜻을 지녀 새해에 좋은 소식이 집안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길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신년이 왔을 때 기쁜 소식이 오기를 기원하는 풍습은 조선후기뿐만 아니라 이미 그 이전
오래전부터 흘러 내려온 우리 고유의 전통으로써, 조선 전기 태수(太綏) 이불해(李不害)의
그림으로 전칭되고 있는 묘작도(猫雀圖)에서도 새순이 돋아나는 고목위의 까치와 대화를
하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조선전기 전(傳) 이불해의 묘작도, 국립중앙박물관]
소나무 위에 앉은 까치와 그를 쳐다보는 호랑이 그림에 대하여 또 다른 의미로 전해
오는 것은 호랑이는 부패한 관리이고 까치는 선량한 백성으로서 부패한 관리와 위정자를
선량한 백성이 조롱하며 꾸짖는 그림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호랑이를 산신령에 비유하고
까치를 무당으로 보아 세상의 모습이나 행태를 무당이 산신령께 일러바치는 모습으로
보기도 하였습니다.
옛 부터 호랑이는 ‘호축삼재(虎逐三災’)라 하여 호랑이는 영험스러운 짐승이라서 사람에게
해를 가져오는 화재(火災), 수재(水災), 풍재(風災)를 막아주고, 병난(兵難), 질병(疾病),
기근(饑饉)의 세 가지 고통에서 지켜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년에 이런 재난(災難)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대부 집안에서는 호족도(虎族圖)를
걸어두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호족도,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호족도, 미국 덴버미술관]
이러한 길상의 의미를 지닌 이 그림은 호랑이 대신 표범이 그려져 있습니다.
함께 그려진 소나무가 신년(新年)의 의미로 보았을 때, 표범은 ‘표(豹)’가 ‘보(報)’로 의미
전환되어 ‘알린다’라는 뜻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제화시에서 표범의 민첩함과 용맹을 말하고 있어 삼재(三災)를 예방하고자 하는
의미도 들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과거 홍간조어객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표작도에서도 이와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조선시대에는 이런 길상적인 민화에 재난의 예방과 악귀에게 무서움을
알린다는 의미로 호랑이와 표범을 같은 의미로 혼용하여 사용된 것 같습니다.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표작도, 소재 불명]
실제로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호족도(虎族圖)에서는
호랑이의 새끼 중에 표범 새끼가 함께 있어, 이런 두 가지의 의미를 함께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호작도 부분도]
그림을 다시 살펴보면, 튼튼한 뿌리가 일부 드러난 굵은 줄기의 소나무는 흘러온 지난
세월을 의미하는데, 소나무가 가지에서 또 다른 가지가 새로 뻗어 잎의 성장이 건강해
보이니 이는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표범은 꼬리를 들어 뻗어나온 소나무와 걸쳐 있고 표범이 걸어가는 방향이 소나무 가지가
뻗은 방향과 같으니 신년이 되었음을 알리며 함께 가고자 하는 의미가 있는데, 제화 글에서
눈이 부리부리하고 몸이 날래며, 우는 소리에 찬바람이 인다고 했으니 이는 무서움으로써
삼재(三災)를 가진 악귀가 침범해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인화의 기법과 품격이 느껴지는 이 그림도 신년을 맞이하여 액운을 예방하려는
소망을 담은 아름다운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