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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전각의 편액을 휩쓴 [여초 김응현]의 글씨

水西散仁 2017. 6. 6. 08:30

칠불사 전각의 편액을 휩쓴 [여초 김응현]의 글씨

 

 

1. 여초의 형 일중 김충현

 

올 새해벽두부터 인사동에서 좀체 보기 어려운 현판전시회가 열렸는데, 해방 이후 우리나라 서예계를 이끈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1921-2006)의 현판 글씨 기획전이 그것이다.

여간 명망 있는 서예가라도 주로 사찰 고택 등에나 남길 수 있는 현판글씨는 한정이 있어 특별전시회를 하기는 쉽지 않은 일임을 감안하면 현판에 관한 일중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현판전시회를 알리는 신문기사에 일중의 명성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광복 후 애국선열을 기리는 비문(碑文)은 대부분 국학자이자 민족지사인 위당 정인보가 지었다. 유관순 열사비, 윤봉길 의사비, 충무공 기념비, 효창공원 백범 기념비.

이것들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글씨다. 위당은 비문 의뢰가 들어오면 하나를 꼭 물었다고 한다. "글씨는 누가 쓰는가." 만약 다른 사람이 쓴다고 하면

"나는 일중 글씨가 아니면 짓지 않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만물상에서 발췌)

 

이 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중은 해방 후 한글 서예의 발전에 독보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명성에 걸맞게 전국 사찰에서 새로 전각을 세우게 되면 능력 있는 사찰에서는 일중의 글씨를

전각의 편액으로 달고자 했으니, 특히 사찰의 대문격인 일주문 편액을 일중의 글씨로 장식한 기라성 같은 주요 사찰들의 편액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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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의 兜率山禪雲寺(도솔산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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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내소사의 楞伽山來蘇寺(능가산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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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제 금산사의 母岳山金山寺(모악산금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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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송광사의 終南山松廣寺(종남산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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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의 僧寶宗刹曹溪叢林(승보종찰조계총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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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양평 龍門山龍門寺(용문산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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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逍遙山自在庵(소요산자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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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虎踞山雲門寺(호거산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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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八公山把溪寺(팔공산파계사) 등이다.

      

 

 

그러나, 유서 깊은 명찰이 많이 있는 지리산자락 사찰의 일주문에서는 아쉽게도 일중의 글씨를 볼 수 없다.

지리산 자락 사찰의 일주문에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미 해방 이전부터 당대 최고의 명필들이 남긴 일주문 편액(화엄사의 의창군 이광, 천은사의 원교 이광사, 쌍계사의 해강 김규진)

한국전쟁 와중에도 잘 보관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기 때문에 새롭게 글씨를 받아 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주요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중의 글씨를 지리산 자락에서는 볼 수 없는 대신, 그에 버금가는 필력으로 일중 글씨의 맛을 엿볼 수 있는 글씨가 있으니 칠불사다.

 

 

2. 지리산에 있는 여초의 편액

 

칠불사는 한국전쟁의 와중에 거의 전소되어 편액은 고사하고 전각마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폐허에서 1980년대 제월당 통광(霽月通光:1940-2013 의신의 원통암 안쪽 새로

조성한 승탑의 주인)스님의 헌신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사격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때 중창된 전각들의 편액글씨를 쓴 분이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1927-2007)으로

바로 일중과 동문수학하였으며 당대의 한국 서예계를 함께 이끈 일중의 친동생이다.

 

 

여초은 秋史이래 여초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추사의 예서체 필체를 이어오면서도 독특한 서미를 풍기는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 받아 새것을 창조해냄)의 창의적인 필력으로 서법의 본고장 중국서예계를 매료시킨 바가 추사의 이력을 따르고 있어 이와 같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전국 각지의 편액에서 그의 글맛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칠불사의 전각 편액은 모조리 여초의 작품이라 칠불사에 가면 산중 고찰의 그윽한 적요미에 더하여 여초의 글씨 덕분에 동국제일선원 다운 禪家기풍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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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東國第一禪院(동국제일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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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普說樓(보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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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大雄殿(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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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亞字房(아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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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說禪堂(설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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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圓音閣(원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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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文殊殿(문수전)

 

 

칠불사의 편액은 모조리 여초의 글씨로 장식되었다고 하지만 몇점 되지 않은 편액으로는 여초의 글씨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한다면, 아직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각 전각의 기둥 마다 달린 주련(柱聯)의 글씨가 대부분 필체를 달리하여 아낌없이 써내려간 여초의 글씨이다.

비록 주련은 대선사들의 선시(禪詩)구절이 대부분이라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는 더더욱 어렵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칠불사에 서서 둘러보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향기보다도 더 짙은 여초의 필향에 흠뻑 젖어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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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대웅전 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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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문수전 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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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설선당 주련

 

여초의 주련으로는 화엄사 명부전에서도 낙관에 뚜렷이 수기한 [如初]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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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명부전 주련

 

    

이때의 칠불사 중창불사가 끝나고 한참 뒤에 별도로 세운 주차장 앞 일주문의 편액은 낙관에 수기한 通光에서 알 수 있듯 통광스님이 단정하게 직접 써서 달았다.

의신 원통암 편액도 당연 원통암을 복원한 통광스님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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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 일주문에 있는 통광스님의 智異山七佛寺(지리산칠불사)

 

 

*칠불사의 운상선원(雲上禪院)의 편액은 선원에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담 넘어 대강만 보았지 누구의 글씨인지 자세히 보지 못하였다.

 

 

 

3. 전국 사찰 일주문에 있는 여초의 글씨

       

당대의 서예 대가들의 작품이 걸려있는 일주문 편액으로 따져도 여초는 일중과 쌍벽을 이루며 두 형제가 전국 사찰의 대문을 싹쓸이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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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三角山吉祥寺(삼각산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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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三角山奉國寺(삼각산봉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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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三角山淨土白蓮寺(삼각산정토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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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木覓山忠正寺(목면산충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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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靈長山奉國寺(운장산봉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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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洛袈山普門寺(낙가산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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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泰華山麻谷寺(태화산마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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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鷄龍山東鷄寺(계룡산동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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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직지사 東國第一伽藍黃嶽山門(동국제일가람황학산문)뒷면의 覺城林泉高致(각성임천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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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望雲山花芳寺(망운산화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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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해남 頭輪山大興寺(두륜산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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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진도 尖察山雙溪寺(첨찰산쌍계사)

 

   

이 밖에도, 영광 불갑사 범종루, 내장사 향적원, 길상사 극락전, 봉국사 천왕문, 도선사 천불전, 보문사 삼성각, 봉선사 청풍루, 낙산사 보타전 및 보타락,

동학사 상원암 관음암, 직지사 명월료 및 청풍료, 운문사 피하당, 파계사 범종각, 울진 불영사 청운당 등 전국 각지 사찰에서 쉽게 여초의 글씨를 볼 수 있다.

 

 

4. 여초의 낙관

 

여초는 많은 호를 사용했던 추사나 해강처럼 여초(如初) 이외에도 완여(頑如), 완도인(頑道人), 경안재(景顔齋). 무외헌(無外軒), 벽산려(碧山廬) 등의 여러 호를 사용했는데,

대부분 편액의 낙관으로는 [如初居士] 혹은 [如初]만 적거나 [如初 金膺顯]의 수기를 쉽게 볼 수 있으며, 수기 아래 인장으로 [金膺顯] [無外軒] [頑如]을 찍어놓았으나

인장은 전서체로써 읽기는 어렵다. 간혹 서울 봉국사에서처럼 수기로 [無外軒主人]이라 수기해놓은 것도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칠불사 편액의 낙관에는 여초 특유의 수기는 없고 몇 편액에 인장만 보인다.

 

소주 처음처럼의 브랜드명은 광고인 손혜원이 신영복교수의 에세이집 제목 처음처럼에서 빌려온 것인데, 그 보다 훨씬 전에 처음처럼을 사용한 사람이 여초로서

[如初(여초)]가 바로 처음처럼이라는 뜻이다.

 

 

 

5. 고택에 걸려 있는 여초의 글씨

 

당대의 명필 답게 여초의 글씨는 사찰 뿐만 아니라 수당고택을 비롯하여 유서 깊은 고택과 누정에도 많이 걸려 있는데 대표적인 편액으로는

당대의 풍류객들이 머물면서 글씨를 남겨 화려한 편액의 경연장 같은 강릉 선교장의 동별당에 [鰲隱古宅(오은고택)] 편액이 선교장 사랑채의 깊은 맛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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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의 鰲隱古宅(오은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