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해강 김규진 간찰
拜晤經年하니 甚悵이로다 謹未審 此時旱炎에 侍體節萬旺이니 溸祝不已로다
生은 間作東都之行인데 因親患急電으로 慌慌歸國이나 而尙此焦憂中也라
悶然奈何오 多少留矣리라 不備禮라
七月卅日에 金圭鎭 拜上
만나 뵈온지 일년이 지나가니 아주 씁쓸합니다. 요즘같은 가뭄과 더위에 부모님 모시고 지내는 형편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운 맘 끝이 없습니다.
나는 낙양으로 왔는데 부모님의 병환이라는 급한 전보를 받고 보니 급히 귀국해야되지만 아직고 이렇게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그냥 지고고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저금으 더 머무를 듯 합니다. 예를 갖추지 못합니다.
7월 30일에 김규진 드림
<해강의 글씨라고 보기에는 다소 억지같은 느낌이 있기도 한 글씨이다. 이 편지는 인터넷의 금요고서방인가 코베이고서방인가 에서 스크랩한 내용인데 우선 해강 김규진의 편지라는 사실 때문에 끌리게 되었다.
이 편지에서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실은 글씨가 종이에 꽉 찬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먹이 짙고 글씨가 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인상적인 것은 바로 첫 행의 年, 6행의 都, 9행의 何 등의 글자에서 수획을 길게 늘어뜨린 점이다.
11줄 밖에 되지 않는데 거기에서 세번이나 수선을 늘어뜨린다는 것은 대단히 모험적인 장법이다. 왜냐하면 수선을 늘어뜨린다는 자체가 이미 장법에서 파격적인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파격을 세번이나 구사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한 파격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남발해서 오히려 파격한 느낌을 전혀 주지 못하는 식상한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식상하거나 어필할 수 없는 것을 고려하고서도 이렇게 3번이나 파격을 한 것은 바로 이 작품의 독창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선을 늘어뜨릴때에 대부분의 자업ㅂ은 계단식을 선호하는데 이 작품은 삼각형의 모양을 취하여서 3개의 수선 자체가 작품 속에서의 또하나의 도형이나 書眼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요즘 사람들은 글씨를 쓸 때 무조건 크게 쓰고 굵게 쓰는 경향이 많다. 그래놓고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을 작품속에서 구사하기란 참 힘이드는데 어떻게 보면 이 편지가 바로 요즘의 글씨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글씨는 작품의 사이즈에 비해서 크고, 굵으며 또한 지나치게 수선을 3번이나 늘여뜨려서 과도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아마 글씨의 대가가 아닌 사람이 이렇게 썼다면 혹평을 했을 법 하다.
게다가 초서 자형도 지극히 안정적이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글자의 모양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글자의 모양을 제대로 익힌 상태인데 이렇게 썼다면 글씨를 쓴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이 편지의 초서 모양은 글씨를 오래 쓴 사람인데 초서의 모양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썻거나, 글씨를 잘 모르면서 초서모양만 잘 아는 상태에서 쓴 것이라는 것이다. 4행의 節자를 쓴 운필 상태를 보면 아직 초서의 모양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도는 선의 모습이 매우 불안정하여 원형의 모습이 아닌 상태이다.
초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모양이 가장 많다. 이런 운필은 초서의 기본인 것이다. 이 기본 운필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의문이 가는 것이다.
10째 줄의 備자 또한 매우 자형이 좋지 않다. 글자를 모르니까 이런 모양이 나올 수도 있고, 초서를 많이 쓰지 않아서 이런 모양이 나올 수도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질 때 획의 모양이 너무 좋지 않다. 힘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游絲]를 사용해서 오히려 글씨를 어지럽게 만들고 부활되게 만드는데 그런 경우에는 [필단의련]의 의미를 잘 생각해서 끊임없는 연마를 해야겠지만 , 이곳의 경우에는 아예 유사처리해서는 안될 부분인데 오히려 획이 끊어지거나 힘을 받지 못한 경우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