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백의 시
이백의 시
宣州谢朓楼饯别校书叔云
弃我去者,昨日之日不可留。
乱我心者,今日之日多烦忧。
长风万里送秋雁,对此可以酣高楼。
蓬莱文章建安骨,中间小谢又清发。
俱怀逸兴壮思飞,欲上青天览明月。
抽刀断水水更流,举杯消愁愁更愁。
人生在世不称意,明朝散发弄扁舟。
<해석>
宣州謝脁樓餞別校書叔雲(선주사조루전별교서숙운)-선주의
사조 누에서 교서 숙운을 전별하다
棄我去者(기아거자) : 날버리고 가는 사람
昨日之日不可留(작일지일불가류) : 어제는 말리지
못하고
亂我心者(란아심자) :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
今日之日多煩憂(금일지일다번우) : 오늘은 근심이
많아라
長風萬里送秋雁(장풍만리송추안) : 만리 긴 바람에 가을 기러기 보내나니
對此可以酣高樓(대차가이감고루) : 이러한 때 높은
누각에서 술취하기 좋아라
蓬萊文章建安骨(봉래문장건안골) : 봉래의 문장과 건안의 풍골
中間小謝又清發(중간소사우청발) : 중간에는
소사가 있어 또 맑아진다
俱懷逸興壯思飛(구회일흥장사비) : 뛰어난 흥취 함께 품고 굳센 생각 일어나
欲上青天攬日月(욕상청천람일월) :
푸른 하늘에 올라 해와 달을 잡으리라
抽刀斷水水更流(추도단수수경류) : 칼을 뽑아 물을 끊어도 물은 다시
흐르고
舉杯消愁愁更愁(거배소수수경수) : 술잔 들어 근심을 씻어도 수심은 더욱 수심이 된다
人生在世不稱意(인생재세불칭의) : 사람이
이 세상 살면서 세상과 뜻 맞지 않으니
明朝散髮弄扁舟(명조산발롱편주) : 내일은 산발한 머리로 일엽편주 타고서
놀아보리라
雲想衣裳花想容 구름 보면 옷 떠오르고 꽃 보면 얼굴 떠오르니
春風拂檻露華濃 봄바람 창을 스치고 이슬이 짙은 때로구나
若非群玉山頭見 만약 군옥산 머리에서 보지 못했다면
會向瑤臺月下逢 아마 요대의 달 아래에서 만나었겠지
구름처럼 아름다운 옷맵시에 꽃처럼 어여쁜 얼굴의
양귀비(楊貴妃)
봄바람이 창을 스치고 이슬이 농염한 시절에 더욱 빛나는 그녀는
군옥산 위의 서왕모인가, 아니면 요대의 선녀란 말인가?
*군옥산(群玉山):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전설적인 산 이름. 서쪽에 있으며 서왕모(西王母)와 아름다운 선녀들이 산꼭대기에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요대(瑤臺): 《초사(楚辭)》에 나오는 선경(仙境). 선녀들이 사는 곳이다.
誰家玉笛暗飛聲 어느 집 옥피리가 가만히 소리
날리나
散入春風滿洛城 봄바람에 흩어져 들어 낙양 가득한데
此夜曲中聞折柳 이 밤 곡조 속에 이별 가사 듣고서
何人不起故園情 그 누가 고향 생각 떠오르지 않으리
망여산폭포수(望廬山瀑布水)-이백(李白)
여산폭포수를
바라보며-이백(李白)
西登香爐峰(서등향로봉) : 서쪽으로 향로봉에 올라
南見瀑布水(남견폭포수)
: 남쪽으로 폭포수를 바라본다
掛流三百丈(괘류삼백장) : 삼백 높은 곳에 걸려 흘러
噴壑數十里(분학수십리) : 수십리 골짜기로
뿜어져내린다
欻如飛電來(훌여비전래) : 문득 나는 번개 같이 내리고
隱若白虹起(은약백홍기) : 숨은 것이 흰 무지개 같이
일어난다
初驚河漢落(초경하한락) : 처음에는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 놀라
半洒雲天裡(반쇄운천리) : 반쯤은 구름 낀 하늘 속에서
뜰어진다
仰觀勢轉雄(앙관세전웅) : 올려다 볼수록 그 형세 웅장하니
壯哉造化功(장재조화공) : 장쾌핟다, 조화옹의
공이여
海風吹不斷(해풍취불단) : 바닷바람은 끝없이 불어오고
江月照還空(강월조환공) : 강의 달이 비춰 도리어
고요하다
空中亂潀射(공중란종사) : 공중에서 어지럽게 물살이 쏟아져
左右洗青壁(좌우세청벽) : 좌우로 푸른 벽을
씻는구나
飛珠散輕霞(비주산경하) : 구슬이 날 듯 놀이 흩어지고
流沫沸穹石(류말비궁석) : 흘러 내리는 물보라 큰 바위에
용솟음친다
而我樂名山(이아악명산) : 내가 명산을 좋아하니
對之心益閑(대지심익한) : 명산을 대하자 내 마음 더욱
한가해진다
無論漱瓊液(무론수경액) : 옥 같이 맑은 물에 이 닦는 일 말하지 말라
且得洗塵顏(차득세진안) : 때 묻은 얼굴을 씻을
만하다
且諧宿所好(차해숙소호) : 내가 좋아하던 이곳에 살고 자면서
永願辭人間(영원사인간) : 영원히 인간 세상 떠나고
싶어라
登高壮观天地间 大江茫茫去不还 黄云万里动风色 白波九道流雪山
이백의 시 《庐山谣寄卢侍御虚舟》의 한 소절인데요.. 장강의 기상천만한 경치를 묘사한 구절입니다.
로산 산봉에 높이 올라 멀리 천지를 바라보니 장강이 호호탕탕하게 흘러 동해로 흘러들어 다시 되돌아올수 없고 어두컴컴한 풍운이 감돌아 기상이 순식간에 변화하며, 장강에는 아홉굽이가 있는데 그 아홉굽이가 일으키는 파도는 마치 설산과 같다. |
시의 제목은 行路難. 작자 : 이백
金樽淸酒斗十千(금준청주두십천)
황금 잔에 담긴 맑은 술은 만 냥 가치가 있고
玉盤珍羞値萬錢(옥반진수치만전)
옥반의 진수성찬 역시 만 냥짜리건만
停杯投箸不能食(정배투저불능식)
마음이 불편해 도저히 먹고 마시지 못하겠기에
拔劒四顧心茫然(발검사고심망연)
마음 달래려 칼 빼어들고 사방을 살펴도 막막하기는 여전하구나.
欲渡黃河氷塞川(욕도황하빙색천)
황하를 건너 큰 뜻 이루고 싶지만 얼음이 가로막고
將登太行雪滿山(장등태항설만산)
태행산에 올라 천하를 논하고 싶으나 온 산에 눈만 가득하구나.
閑來垂釣碧溪上(한래수조벽계상)
차라리 강태공 닮아 세월을 낚을까?
忽復乘舟夢日邊(홀부승주몽일변)
아니면 伊尹을 본 따서 꿈이라도 꾸어볼까?
行路難 行路難 (행로난 행로난)
어렵고 어렵구나! 인생살이 힘들구나.
多岐路 今安在 (다기로 금안재)
갈 길은 험난한데 나는 지금 도대체 무엇 하는 중인가.
長風破浪會有時(장풍파랑회유시)
<세상쾌락 좋은 술 맛있는 안주, 잠시 참고> 큰 바람불어 파도를 헤칠 때 오면
直掛雲帆濟滄海(직괘운범제창해)
구름 같은 돛 달고서 푸른 바다 헤쳐가리.
<내 나름대로의 뜻풀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셔도 용서하시기를. 세월을 낚다가 周 文王에게 발탁된 姜太公과 배를 타고 해와 달 주위를 맴돈 꿈을 꾼 후 殷나라 蕩王을 만난 名 宰相 伊尹의 고사를 빗대어 이백은 자기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후진타오는 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 결구만 인용했지만 그 앞에는 이런 사연이 도사리고 있다.
큰 뜻을 펴기 위해 은인자중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제는 온 세상에 중국인의 기개를 떨쳐 보이겠다는 속내가 아닐까?
酒仙으로 불리는 이백이 그 맛있는 술과 안주를 마다하고 엎드려 때가 오기를 기다렸던 심정을 빌려 이제 중국이 세계의 지도를 바꾸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속내야 어땠든 이백의 호방한 시를 빌려 심경을 토로하는 중국 지도자들의 박학다식이 참으로 부럽다.
桃李不言, 下自成径 :
비유. 복숭아·오얏나무가 말을 안 해도 아래로는 저절로 길이 난다. 훌륭한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찾는다.
情深潭水 :
우정
야숙산사(夜宿山寺)
이백(李白)
危樓高百尺 백길 높은 누각에 오르니
手可摘星辰 손 내밀면 별이라도 따겠소.
不敢高聲語 감히 큰 소리를 내다니
恐驚天上人 하늘이 놀랄까 두렵소.
將進酒 장진주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지수천상래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부터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廻 분류도해불부회 바삐 흘러 바다로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을
又不見 우불견 또한, 보지 못하였는가
高堂明鏡悲白髮 고당명경비백발 고당의 거울에 비친 백발의 슬픔을
朝如靑絲暮如雪 조여청사모여설 아침에 검던 머리가 저녁에 희어졌다네
人生得意須盡歡 인생득의수진환 인생이란 기쁨이 있을 때 마음껏 즐겨야지
莫使金樽空對月 막사금준공대월 금잔에 헛되이 달빛만 채우지 말지니라
天生我材必有用 천생아재필유용 하늘이 준 재능은 반드시 쓰여질 날 있을 터니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산진환부래 재물은 다 흩어져 없어져도 다시 돌아오는 것을
烹羊宰牛且爲樂 팽양재우차위락 양을 삶고 소는 저미며 즐겁게 놀아보세
會須一飮三百杯 회수일음삼백배 모름지기 술을 마시려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岑夫子,丹丘生 잠부자,단구생 잠부자여, 그리고 단구생이여
將進酒,君莫停 장진주,군막정 술을 마시게나, 잔을 쉬지 말게나
與君歌一曲 여군가일곡 그대를 위해 노래 한 곡조 부르리니
請君爲我側耳聽 청군위아측이청 원하건대 아모쪼록 내 노래를 들어주시게나
鍾鼎玉帛不足貴 종정옥백부족귀 보배니 부귀가 무엇이 귀할 것인가!
但願長醉不願醒 단원장취불원성 그저 마냥 취해서 깨고 싶지 않을 뿐이라네
古來賢達皆寂莫 고래현달개적막 옛부터 현자 달인은 모두 쓸쓸하기만 했으니
惟有飮者留其名 유유음자유기명 다만, 마시는 자만이 이름을 남기리라
陳王昔日宴平樂 진왕석일연평락 그 옛날 진왕은 평락전에 연회를 베풀고
斗酒十千恣歡謔 두주십천자환학 한 말 술 수천금에 사서 호탕하게 즐지기 않았던가
主人何爲言少錢 주인하위언소전 주인인 내가 어찌 돈이 적다고 말하겠나
且須沽酒對君酌 차수고주대군작 당장 좋은 술을 사와서 그대들께 권하리라
五花馬,千金紌 오화마,천금구 귀한 오색 말과 천금의 모피 옷을
呼兒將出換美酒 호아장출환미주 아이를 시켜 좋은 술과 바꾸어오게 하여
與爾同銷萬古愁 여이동소만고수 그대들과 더불어 만고의 시름을 녹이도록 하겠노라
이백과 두보에 대해서 비교하시오
「詩仙(시선)」이라 불리는 이백 중국 성당기(盛唐期)의 시인.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며,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존한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간쑤성[甘肅省] 룽시현[西縣]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이었다고 전한다. 출생지는 오늘날의 쓰촨성[四川省]인 촉(蜀)나라의 장밍현[彰明縣] 또는 더 서쪽의 서역으로서, 어린 시절을 촉나라에서 보냈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따라서 장난[江南]·산둥[山東]·산시[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젊어서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그는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안릉(安陵:湖南省)·남릉(南陵:安徽省)·동로(東魯:山東省)의 땅에 체류한 적도 있으나, 가정에 정착한 적은 드물었다. 맹호연(孟浩然)·원단구(元丹邱)·두보 등 많은 시인과 교류하며, 그의 발자취는 중국 각지에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불우한 생애를 보내었으나 43세경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창안[長安]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던 1, 2년이 그의 영광의 시기였다. 도사(道士) 오균(吳筠)의 천거로 궁정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의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지위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는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이다. 이것으로 그의 시명(詩名)은 장안을 떨쳤으나, 그의 분방한 성격은 결국 궁정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창안을 떠났다. ![]() 창안을 떠난 그는 허난[河南]으로 향하여 뤄양[洛陽]·카이펑[開封] 사이를 유력하고, 뤄양에서는 두보와, 카이펑에서는 고적(高適)과 지기지교를 맺었다. 두보와 석문(石門:陝西省)에서 헤어진 그는 산시[山西]·허베이[河北]의 각지를 방랑하고, 더 남하하여 광릉(廣陵:현재의 揚州)·금릉(金陵:南京)에서 노닐고, 다시 회계(會稽:紹興)를 찾았으며, 55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쉬안청[宣城:安徽]에 있었다. 적군에 쫓긴 현종이 촉나라로 도망하고 그의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이 거병, 동쪽으로 향하자 그의 막료로 발탁되었으나 새로 즉위한 황자 숙종과 대립하여 싸움에 패하였으므로 그도 심양(尋陽:江西省九江縣)의 옥중에 갇히었다. 뒤이어 야랑(夜郞:貴州)으로 유배되었으나 도중에서 곽자의(郭子義)에 의하여 구명, 사면되었다(59세). 그 후 그는 금릉·쉬안청 사이를 방랑하였으나 노쇠한 탓으로 당도(當塗:安徽)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에게 몸을 의지하다가 그 곳에서 병사하였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고, 때로는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쓰촨성 각지의 산천을 유력(遊歷)하기도 하였으며, 민산(岷山)에 숨어 선술(仙術)을 닦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랑은 단순한 방랑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를 찾는 ‘대붕(大鵬)의 비상(飛翔)’이었다. 그의 본질은 세속을 높이 비상하는 대붕, 꿈과 정열에 사는 늠름한 로맨티시스트에 있었다. 또한 술에 취하여 강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에게도 현실 사회나 국가에 관한 강한 관심이 있고, 인생의 우수와 적막에 대한 절실한 응시가 있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는 방식과 응시의 양태는 두보와는 크게 달랐다. 두보가 언제나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고 인간 속에 침잠하는 방향을 취한 데 대하여, 이백은 오히려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까지도 그것을 혼돈화(混沌化)하여, 그 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하였다. 술이 그 혼돈화와 비상의 실천수단이었던 것은 말할것도 없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俠氣)와 신선(神仙)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다. 두보의 시가 퇴고를 극하는 데 대하여,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다. 두보의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대하여, 악부(樂府)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장기로 한다. ‘성당(盛唐)의 기상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의 이백은 한편으로 인간·시대·자기에 대한 커다란 기개·자부에 불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개는 차츰 전제와 독재 아래의 부패·오탁의 현실에 젖어들어, 사는 기쁨에 정면으로 대하는 시인은 동시에 ‘만고(萬古)의 우수’를 언제나 마음속에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그의 시문집은 송대(宋代)에 편집된 것이며, 주석으로는 원대(元代) 소사빈(蕭士)의 《분류보주 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청대(淸代) 왕기(王琦)의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 등이 있다.
「詩史(시사)」라고 불리는 두보 시대적 배경 당대는 중국 고유의 문화가 개화된 시기로서, 문학, 예술 방면에 뛰어난 인재가 수없이 배출되었고, 도시의 발달과 수공업의 번영으로 새로운 시민계층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민족과 활발하게 교류함으로써 당의 수도 장안은 국제적인 문화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 시대는 당의 문학의 전성기였다. 시(詩)문 모두 현저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문학사상 초당(初唐:국초에서 현종까지 약 100년간)·성당(盛唐:현종∼숙종 50년간)·중당(中唐:代宗∼文宗 70년간)·만당(晩唐:문종∼唐末 80년간)의 4기로 나누고 있다. 특히 관리를 임용하는 선거에서 작시(作詩)를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시는 공전절후의 성황을 이루어 오언 및 칠언의 율시와 절구의 형식이 완성되어 성당기에 이백·두보의 2대 시성을 비롯하여 시화일치의 묘미를 보여준 왕유, 전원과 자연을 읊은 맹호연, 정로이별을 읊은 고적·왕창령 등이 나오고, 중당기에는 백거이·원진, 만당기에는 두목(杜牧)·이상온·온정균이 나왔다. 이백과 두보의 비교 당시(唐詩)라고 하면 으레 이백과 두보를 첫손으로 꼽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왕유와 백거이와 두목과 이상은 같은 대가들이 있지만, 이백과 두보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시대에 같은 길을 걸었으면서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시의 최고봉을 더불어 누렸다. 이백을 시의 신선(시선; 詩仙)으로 받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보를 시의 성인(시성; 詩聖)으로 받들기도 한다. 사실 이백은 선천적인 재질이 뛰어나서 주변의 온갖 것을 시화(詩化)해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일체가 시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까 이백에게는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두보는 온갖 것을 시로 엮어 내는 고심과 재치가 남달랐다. 이태백과 두보에게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굳이 비교한다면 각자의 특색이 있을 따름이다. 이태백이 연꽃처럼 청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환상적으로 그려내 우리를 높고 우아한 정신세계로 이끌었다면, 두보는 뼈를 깍는 학습과정과 노력으로 인생과 사회를 반영하면서 우리를 넓고도 광활한 현실사회로 인도하였다. 그러므로 이태백이 낭만적이라면 두보는 사실적이다. 이태백이 유미주의적이라면 두보는 현실주의적이다. 이태백이 개인주의적이라면 두보는 사회주의적이다. 이태백이 귀족적이라면 두보는 평민적이다. 이태백이 하늘을 거니는 신선(神仙)이었다면 두보는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가시밭길을 걸었던 성인(聖人)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태백의 작품은 광할하게 시작하여 섬세한 부분으로 진행하고, 두보는 섬세한 부분에서 시작하여 광활한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 이태백의 작품은 청신하고도 표일한 맛이고, 두보는 침울한 가운데 비장하다. 아내 넷을 두고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았던 이백과 달리, 두보는 첩을 둔 적 없는 애처가였다. 그는 황태자 소속 호위부대의 인사계라는 천직으로 관계에 나섰고, 막내 아들이 아사(餓死)하는 등 호강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자는 개인적 불운을 인간 전체에 대한 동정으로 승화시킨 두보에 대해 ‘박애(博愛)라는 단어로도 그의 숭고함을 표현할 수 없다’고 높게 평한다. 고래로 제기돼 온 ‘이두우열론(李杜優劣論)’에 대해, “두보는 이백처럼 표일(飄逸·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 세속에 얽매이지 않음)한 정취가 있는 시를 지을 수 없고, 이백은 두보처럼 침울한 시을 지을 수 없다”는 남송 시대 엄우(嚴羽)의 설명에 동조한다. 속박되지 않은 정열과 에너지(이백), 대지에 뿌리 둔 든든한 건조물 같은 의지와 구성력(두보) 등, 둘은 전혀 다른 색채를 전개했다. 두보는 시 이외에는 모든 것이 서툰 악문(惡文)이었지만 격(格)에 맞춘 칠언율시에 특히 능했고, 이백은 주색(酒色)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칠언가행·칠언절구에 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