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기서(奇書) 산해경(山海經)
중국에 기서(奇書) 산해경(山海經)
산해경(山海經)은 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 및 지리서이다. 우(禹)의 협력자 백익(伯益)의 저서라고도 전하나 이것은 가설이고, 춘추 시대부터 한대(漢代) 초기까지 걸쳐서 호기심 많은 학자들이 한 가지씩 첨가한 것인데, 남산경(南山經)에서 시작하여 해내경(海內經)으로 끝나는 총 1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晋)나라(265-420)의 곽박(郭璞)이 기존의 자료를 모아 편찬하여 주(註)를 달았다. 본래 《산해경》은 인문지리지로 분류되었으나, 현대 신화학의 발전과 함께 신화집의 하나로 인식되고 연구되기도 한다. 《초사》의 <천문>과 함께 중국 신화를 기록한 귀한 고전이다. 고대 천문학의 개론서이라고 한다.
청구국의 여우는 네 발에 꼬리가 아홉이다. - 해외동경
산경(山經)과 해경(海經)으로 되어 있으며, 중국 각지의 산과 바다에 나오는 풍물을 기록하였다. 내용 중에는 상상의 생물이나 산물이 있어서 지리서라고 하지만 전설 속의 지리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사기》에서 사마천은 감히 말할 수 없는 기서라고 하여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산해경에는 중국의 역사로서 포함되기도 하는 황제 (전설), 치우, 소호, 전욱, 고신씨, 예, 요임금, 순임금이나, 조선, 청구, 천독 등의 실제로 있었던 지명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며, 다음과 같은 신화적 · 지리적 · 백과사전적인 내용들이 있다. "동쪽 끝 탕곡(湯谷)에 부상(扶桑)의 나무가 있다. 10일간 햇빛을 받는데, 9일은 하지(下枝)에 받고 1일은 상지에 받는다."(<해외동경>)란 태양에 관한 이야기이고, "서쪽에 왕모(王母)의 산이 있어… 봉황의 알을 먹고, 감로(甘露)를 마시고"(<대황동경>)란 서왕모에 대한 이야기이다. "황제(黃帝)가 치우(蚩尤)와 싸웠을 때, 풍우를 진압하기 위해서 왕녀인 발(魃)을 하계에 내려 보냈는데, 전후(戰後)에 발이 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전조(田祖)인 숙균(叔均)의 권유로, 발을 적수(赤水)의 북쪽으로 쫓았다"(<대황북경>)라고 한 것은, 한발(旱魃)이란 말의 유래를 설명한 것이다. 또한 곤륜(崑崙)의 위치나 약수(弱水)의 원류(源流) 등을 설명한 점은 《우공(禹貢)》과 비슷한 지리(地理) 서적이며, 순초(荀草)가 미인이 되는 약이라는 등 많은 약초를 소개하는 것은, 후세의 《본초(本草)》(한방의 약학)의 원류를 이루는 것이다.
"낯선 지방의 생산물과 강과 육지의 풀 ,나무,새,짐승,곤충,기린,봉황이 사는곳과 상서로운 조짐이 보이는 곳 및 이 세상 바깥으로 떨어진 나라나 색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기록하였습니다 토지에 따라 공물을 정하고 백익 깨선 사물의 좋고 나쁨을 유별하여 이 산해경을 지었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상산해경표 中 유흠
"산해경을 읽는 세상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 책이 황당무계하며 기피하고 유별난 말이 많기 때문에 의혹을 품지 않는 이가 없다"
"천하의 지극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더불어 산해경의 의미를 말하기 아렵다. 아! 통달하고 박식한 사람이 이를 거울로 삼을것이다. "
<!--[if !supportEmptyParas]--> <!--[endif]-->
- 주산해경서中 곽박
"산과 내의 줄기를 탐색하여 가없는 경지를 두루 살피고 그 가운데에 괴변을 서술하여 백성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하였으니, 아름답도다! 우의 공덕이여! 그 밝은 덕 무궁하로다. 본래 신성한 존재가 아니고서야 누가 이 책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후세의 독자들은 이 책을 이견의 기록의 비기고 제해 같은 책에 견주었으니 슬프지 아니한가! "
- 산해경소서中
중세의 고서에서는 중국 선진시대에 쓰인 것으로 기록된 고서이다.산해경 자체의 존재는 사마천 등의 그 이전 시대의 사람들도 언급하고 있으며, 저자가 누군지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은, 하나라의 우(禹)왕이나 계포 혹은 백익이라는 사람이 지었다는 설인데 전한시대의 유흠에 의해 주장되어져서 다른 중세의 학자들에 의해 이런 의견이 계속 주장 되어 왔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하지만 후세로 내려가면 갈수록 이러한 의견들은 여러번 지적을 받게 되고 드디어 현대에 오면서 하나라의 우나 백익같은 태고시대에 살았던 전설적인 가상의 인물에 의해 저술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형성된뒤,근대와 현대의 여러 학자들은 대체로 춘추전국시대쯤에 제작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하지만 이 견해 조차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된다.
산해경의 최초의 교정본은 유흠이 쓴 상산해경표로 그 당시 산해경의 기존32편을 18편으로 정리 하였으며. 현재의 산해경은 동진 시대의 곽박(郭璞)이 주산해경서라는 교정본을 내서 정리한 것으로 시작하여 청나라의 학위행이 산해경소서를 써서 다시금 교역한 것.
이외의 명나라~청나라시기의 산해경 교정본으로 산해경보주,산해경석의,산해경광주,산해경교본등이 있다.
지은이 뿐만 아니라 그 실체 역시 오리무중이다. 이름이 산해경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산과 강, 바다 등의 지형과 지리에 대한 책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 지형과는 잘 연결되지 않으며각 지역에 대한 설명도 그 곳에 사는 상상의 동물에 대한 기이한 설명이 주류라서 많은 사람들이 산해경은 주변 세상의 풍물을 상상하여 써놓은 중국 신화서 혹은 환상종 도감(…)으로 간주한다. 당연하게도 실제 지리서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으며, 그 지리적 배경에 대해서도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 중심지역인지, 장강 유역인지, 중국 남부지역인지, 중국 동북 발해만 일대인지조차 불분명해 각 지역이 원류라는 많은 설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도대체 어느 시대의 신화나 전설이 반영된 것인지 역시 알 수 없다. 일단 성립시기는 전국시대 후기로 보이지만,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의 영향도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히 누군가 쓴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지리서의 형태인데다 내용도 뒤죽박죽이고 읽기에 쉽지 않은 형식이라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대체 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는가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단순히 장난 삼아 쓰인 글이나 민담의 모음집이라기엔 산해경이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춘추전국시대(선진시대)는 '글을 알고' 어떠한 지식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굉장히 귀했던 시대라는 점이 문제. 이 때문에 산해경이 불로장생을 꿈꾸는 왕들을 속이기 위한 가짜 보고서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 희귀동물이 약으로 쓰일 수는 있는데, 구하기 힘들고 독성이 쩌니 사용 안 하는게 좋아요...라는 내용.
더욱이 은대 갑골문자에서 산해경에 언급된 제(帝)의 이름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전해지지 않은 모종의 고대의 지식이 반영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초고대문명설?
이런저런 설들이 나오고 있지만 산해경 자체와 산해경의 존재에 대한 언급 이외에는 산해경에 대한 자료도 거의 없으며, 현재까지 여전히 정체불명의 책이다.
전한 시대부터 이미 정체를 알 수 없는 황당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곽박 역시 이런 평가를 염두에 두는 모습을 보인다. 근래에는 고대 중국인의 지리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가치나 신화집으로서의 성격이 주목받고 있다.
현대까지도 전해져 오는 수많은 떡밥(치우, 황제의 싸움 등)의 원전으로서 가치가 높으며 번역판도 제법 있는 편. 한국어로는 정재서 교수의 역본이 있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은 믿을 수 없는 책이라고 했지만 여기서 인용한 이야기를 사기에 써 고대사 떡밥의 원인을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