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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덕무/ 記遊北漢(북한산 유람기)

水西散仁 2015. 6. 8. 09:17

二宿五飡. 觀山內外寺十一. 菴與亭樓各一.

두 밤을 자고 다섯 끼니를 먹었으며, 이 산 안팎의 11개 사찰과 암자, 정자, 누각을 하나씩 구경하였다.

 

不見者一菴二寺. 曰奉聖. 曰輔國.

구경하지 못한 것은 한 개의 암자와 두 개의 사찰인데, 봉성사와 보국사다.

 

僧曰是刹之最下者.

승려가 말하기를, “이것은 사찰 가운데 가장 하급입니다.”라고 하였다.

 

皆遊者. 子休. 汝修曁吾三人.

함께 유람한 사람은 자휴 子休, 여수 汝修, 그리고 나 세 사람이다.

 

試共四十一. 菴寺亭樓各有記.

시는 모두 41편이고, 암자, 사찰, 정자, 누각에는 각각 기문을 지었다.

 

山蓋百濟古都. 我祖宗. 鍊兵峙穀. 爲保障之地.

북한산은 백제의 옛 도읍지인데, 우리 조종 祖宗께서 군사를 훈련하고 군량을 저장하는 보장의 장소로 삼았다.

 

距漢師三十里.

도성과는 30리 거리다.

 

從文殊門以入. 出城西門.

문수문을 따라서 들어갔다가 산성의 서쪽문으로 나왔다.

 

時辛巳九月晦也.
때는 신사년(1761년, 영조 37년) 9월 30일이다.

洗釰亭 세검정
緣萬石以上.

수많은 암석을 따라 올라갔다.

 

亭在大磐陀.

정자는 넓은 반석 위에 있었다.

 

石白色. 溪間石以流.

돌은 흰 빛인데, 계곡의 돌 틈새로 물이 흘렀다.

 

倚欞而眺水聲掠衣履去也.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니 콸콸 흐르는 물소리가 옷과 신을 스쳐갔다.

 

亭名洗釰.

정자의 이름은 세검정이다.

 

左有立石. 鐫曰鍊戎臺
왼쪽에는 돌이 서 있는데, 연융대라고 새겼다.

 

세검정


註) 종로구 신영동(상명대학교 앞)에 위치하고 있다.

 

小林菴 소림암
亭之北數十号. 石室開. 三石佛坐焉

세검정 북쪽으로 수십 보쯤에 석실이 있는데, 3개의 석불을 안치하였다.

 

古以徃香火不絶也.

옛날부터 전해오는 향화(香火)가 끊어지지 않았다.

 

余幼時見窟而無龕.

내가 어렸을 때는 굴만 있었고, 감실 龕室 은 없었다.

 

今以小屋覆之.

지금은 작은 지붕을 덮었다.

 

苾芻日净和.
승려는 이것을 정화 淨和라고 하였다.

 

註)소림암(현재는 소림사)은 세검정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文殊寺 문수사
日晡至文殊.

해가 저물 때 문수사에 도착하였다.

 

瞰平地. 疑到天半也.

평지를 내려다보니 하늘의 절반까지 오른 듯했다.

 

佛龕當大石窟.

불상을 모시는 감실은 큰 석굴이었다.

 

仍龕左右. 逶迤以行.

감실의 좌우를 따라 걸어갔다.

 

水如雨滴人衣.

물방울이 비오듯하여 옷을 적셨다.

 

行盡有石泉紺寒.

석굴 끝에는 돌샘이 있는데 푸르고 시원했다.

 

左右五百石羅漢坐累累也.

좌우 양쪽에는 5백 나한羅漢을 벌려서 앉혔다.

 

窟名普賢. 或曰文殊.

석굴은 보현사 또는 문수사라고 부른다.

 

有三佛.

세 개의 불상이 있다.

 

石曰文殊. 玉曰地藏. 金塗者. 爲觀音菩薩.

돌로 만든 것은 문수보살이고, 옥으로 만든 것은 지장보살이며, 금으로 도금한 것은 관음보살이다.

 

以是亦曰三聖窟.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삼성굴이라고 한다.

 

窟旁有臺. 名七星.

굴 옆에는 대(臺)가 있는데, 칠성대라고 부른다.

 

留以飯.

밥을 먹고 휴식하였다.

 

北入文殊城門.
북쪽 문수성문을 통해 들어갔다.

 

 

註)문수사는 구기매표소에서 대남문 정상 바로 전 왼쪽의 문수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普光寺 보광사
日暮抵城門.

날이 저물어서 성문에 도착하였다.

 

乃山之臬處.

바로 산이 끝나는 곳이다.

 

門以下地稍底. 多楓楠松杉.

성문 아래쪽은 지형이 약간 낮았으며, 단풍나무, 남나무, 소나무, 삼나무가 수없이 많았다.

 

曠然谷易應. 寒氣始襲人也.

넓은 골짜기는 메아리가 잘 울려 퍼졌으며, 차가운 기운이 처음으로 사람을 엄습하였다.

 

遂抵普光法堂.

마침내 보광사 법당에 도착하였다.

 

右藻井. 大書三人字姓.

오른쪽 조정(藻井)에 세 사람의 성명(姓名)을 크게 썼다.

 

和尙皆談兵. 壁室. 貯鎗刀弓矢.

화상(和尙)은 모두 전쟁과 관련한 것이었고, 벽실에는 창, 칼, 활, 화살 등을 저장하였다.

 

黃昏抵太古寺宿
해질 무렵에 태고사에 도착하여 유숙하였다.

註) 보광사는 지금의 대성문에서 북한산성으로 하산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대성사 부근으로 생각된다.
太古寺 태고사
寺東峯下. 有高麗國師普愚碑.

태고사 동쪽 산봉우리 아래는 고려의 국사였던 보우의 비석이 있다.

 

牧隱撰. 書者. 權鑄也.

목은 이색이 글을 짓고 권주가 글씨를 썼다.

 

師謚曰圓證. 太古爲號.

보우의 시호는 원증圓證이고 태고太古는 호다.

 

辛旽用事. 上書論其罪. 爲時君所逐.

신돈이 정권을 마음대로 하자, 상소하여 죄를 논하였기 때문에 당시 임금이 축출하였다.

 

卓乎桑門之有節者.

불가에서는 흔하지 않는 충신이다.

 

旣寂. 舍利百枚.

입적할 때 사리 백 개가 나왔다.

 

三浮屠以莊之.

이것을 세 곳의 부도에 매장하였다.

 

碑陰有我 太祖微時爵姓諱.

비의 후면에는 우리 태조가 나라를 세우기 전의 벼슬과 성명姓名이 있다.

 

爵曰判三司事.

벼슬은 ‘판삼사사判三司事’였다.

 

上之今年. 持命閣以覆焉.

영조는 금년에 특별히 명하여 비각을 세우고 지붕을 덮었다.

 

有肅敏上人者. 稍識字冲澹. 可與語.

숙민肅敏이라는 승려가 있는데, 글을 조금 알고 성품이 온화하며 담박하여 말을 나눌 만하였다.

 

朝飯向龍巖寺. 
아침을 먹고 용암사로 출발하였다.

 

태고사

 

태고사 원증국사탑비

 

태고사 원증국사탑

 

북한산 태고사/이호선

 

註) 태고사는 북한산성 계곡의 중흥사터를 지나 옛 북한산성대피소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龍巖寺 용암사
是寺最北漢之東隩也. 
용암사는 북한산의 가장 동쪽 깊숙한 곳에 있다. 

 

北有五峯. 大者三.

북쪽에는 다섯 봉우리가 있는데, 큰 것은 세 개다.

 

曰白雲. 萬景. 露積. 故三角名焉.

백운봉, 만경봉, 노적봉을 삼각산이라고 부른다.

 

仁壽. 龍巖小者.

인수봉과 용암봉은 작았다.

 

註) 용암사는 옛 북한산대피소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부근의 용암문을 수비하기 위하여 창건된 절이다.


重興寺 중흥사
捨龍巖. 遵去路以下.

용암사를 출발하여 오던 길을 따라 내려갔다.

 

地稍平. 有寺焉. 曰重興.

지형이 조금 평평한 곳에 사찰이 있는데, 중흥사라고 부른다.

 

麗時建也.

고려 시대에 건립하였다.

 

十一寺最爲古且大.

11개의 사찰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크다.

 

全佛坐者. 過丈.

앉아 있는 금불의 높이만 해도 한 길〔丈〕이 넘는다.

 

僧將開府以處. 領八路僧兵. 名曰軌能. 織曰摠攝.

승장僧將이 부를 창설하여 주둔하고, 팔도의 승병을 통솔했는데, ‘궤능軌能’이라고 불렀으며, 직책은 ‘총섭’이다.

 

旁有磨石. 仍巖石以刻. 
옆에는 마석이 있는데 암석에 조각하였다.

전성기때의 중흥사

 

복원공사를 하다가 중단된 중흥사

 

註) 중흥사는 일제때 방화로 소실되기 이전에는 대사찰이었다. 가는 길은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중성문을 지나면 만나게 된다.


山映樓 산영루
迤重興以西. 林木翳然. 溪淸而鳴.

중흥사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면 숲이 하늘을 가리고 맑은 시냇물은 콸콸 흐른다.

 

多大石如冠如舟.

큰 돌이 많은데, 갓 모양이나 배 모양과 같다.

 

積而爲臺者. 間有之.

쌓여서 대臺를 이룬 것도 가끔 있다.

 

蓋如洗釰亭奧過之. 
대개 세검정과 비슷하지만 더 그윽하다.

산영루의 전경

 

산영루 현재의 모습으로 뒤의 보이는 주춧돌이 산영루가 있던 곳이다.

 

혜촌 김학수화백/ 산영루


扶旺寺 부왕사
寺在漢之南奧.

부왕사는 북한산 남쪽 끝에 있다.

 

洞名曰靑霞洞.

골짜기 이름은 청하동이다.

 

門其幽而寂. 它皆難與之侔.

골짜기 입구가 그윽하고 적막하여 다른 곳과 비교할 수가 없다.

 

有壬辰僧將泗溟師像.

임진왜란 때 승장 사명대사의 초상이 있다.

 

據梧執白塵尾.

난간에 의지하여 백주미 잡았다.

 

落髮而存其髯過腹也.

모발은 빠져서 없고 배를 지나는 긴 수염뿐이었다.

 

西壁有敏環像焉.

서쪽 벽에는 민환敏環의 초상이 있다.

 

憩而午飯. 
휴식하면서 점심을 먹었다.

부왕사지

註) 부왕사지는 북한산 의상능선 부암동 부근의 밑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圓覺寺 원각사
登南城門.

남쪽 성문에 올랐다.

 

見西海. 與天接也.

서쪽 바다를 바라보니 하늘과 경계를 이루었다.

 

摩尼諸山. 間於海. 如奉也.

마니(摩尼)의 여러 산이 바다 사이에 있는데, 주먹정도 크기였다.

 

有羅漢峯. 巍然如浮屠立也.

나한봉이 있는데, 높이 솟은 모양이 부처와 같았다.

 

其下有寺墟.

그 아래에 사찰의 터가 있다.

 

麗時三千僧處焉. 仍名曰三千僧洞也. 
고려 시대에는 3천 명의 승도가 거처하였기 때문에 ‘삼천승동三千僧洞’이라고 불렀다.

원각사터로 추정되는 곳

 

註) 원각사는 의상능선 상의 '부왕동암문' 못미친 중취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절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석축이 남아 있다. 지금은 삼천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鎭國寺 진국사
背山映樓. 﨑嶇而北. 三丈石. 銘白雲洞門.

산영루를 뒤에 두고 구불구불한 길을 찾아 북쪽으로 가면 세 길 정도의 돌에 ‘백운동문白雲洞門’이라고 새겼다.

 

循石路. 到寺門.

돌길을 따라 진국사 문에 도착하였다.

 

紅樹白石. 壑而泠泠. 
붉은 나무와 흰 돌이 빽빽하였고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현재의 노적사의 전경과 뒤의 노적봉

註) 진국사는 노적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노적사의 옛 이름

 

祥雲寺 상운사
自鎭國到祥雲.

진국사를 출발하여 상운사에 도착하였다.

 

嶺以間之. 曰積石.

고갯마루가 그 사이에 있는데, 적석(積石)이라고 부른다.

 

日入抵寺.

해질녘에 사찰에 도착하였다.

 

飯而宿.

저녁을 먹고 유숙하였다.

 

朝向西巖谷.

아침에 서암사 계곡으로 갔다.

 

行三四里. 水成瀑逶迤.

3, 4리쯤 가니 물이 폭포를 이루어서 콸콸 흘렀다.

 

以卧槩嶺之左右. 殊其曠奧也. 
대체로 고갯마루 좌우는 상당히 넓고 깊었다.

 

상운사 대웅전

 

註) 상운사는 백운대와 원효봉 사이의 영취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西巖寺 서암사
近城西門. 大樓臨水石之交.

산성의 서쪽문 가까운 곳에 큰 누각이 있는데, 물과 돌이 교차하였다.

 

風湍松籟. 曠而生韻. 翛如雨. 對語不辨音也.

바람을 일으키는 거센 여울과 소나무 바람소리, 텅 빈 중에 쏴쏴하는 빠른 소리는 비오는 듯하여 서로 보면서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았다.

 

寺最卑. 獨以淸曠聞.

이 사찰은 가장 밑에 있지만 매우 깨끗하고 시원하기로 소문이 났다.

 

飯向津寬.
밥을 먹고 진관사로 출발하였다.

서암사터의 거북바위

註) 서암사터는 북한산성 탐방안내 센터에서 계곡탐방로를 따라 진행을 하다보면 원효봉으로는 길 이정표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津寬寺 진관사
出西門十里. 野多田. 高處爲人壙.

서쪽문에서 10리쯤을 가면, 들에는 밭이 많고, 높은 곳에는 사람들의 묘지가 있다.

 

南尋小壑. 始有林木.

남쪽으로 작은 골짜기를 찾아가니 처음으로 숲이 나타났다.

 

寺是高麗津寬大師居也.

진관사는 고려 시대에 진관대사가 거처하던 곳이다.

 

大石柱樓十. 尙列溪左焉.

큰 돌기둥 수십 개가 아직도 시냇물 왼쪽에 나란히 있다.

 

林石之佳. 雖不如內山. 佛畵之靈異. 獨不讓也. 
숲과 돌의 아름다움은 성안의 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불화佛畫의 영묘하고 기이함은 매우 뛰어났다.


 

북한산 응봉능선에서 내려다 본 진관사

 

진관사 대웅전


출전 : 『李德懋 』「靑莊館全書 」'記遊北漢'

 

출처 : 소창대명(小窓大明)
글쓴이 : 바람난 공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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