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향련은 임방울 명창과 같은 광주 송정리에서 1944년 태어났다. 명창 정응민, 정권진, 장영찬에게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김소희 명창의 수제자였는데, 제3회 남원명창대회에서 조상현, 성창순에 이어 장원을 한 소리꾼이다.
스승인 김소희 명창은 생전에 안향련을 '나를 능가하는 명창'이라고 추켜세웠다. 이는 김소희 명창의 겸손한 표현일 수도 있으나 그 정도로 그녀의 타고난 천구성(애원성이 가미된 맑고 고운 소리)과 아무 사설에나 곡만 붙이면 소리가 될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자태와 타고난 천구성에 수리성으로 일세를 풍미하던 안향련은 어느 화가와의 못다 이룬 사랑을 비관하여 지난 1981년 12월 수면제를 과다복용하는 것으로 서른일곱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사랑하는 제자 안향련이 죽자 김소희 명창은 너무나 애통하여 진도씻김굿을 해주었다. 좋은 곳으로 가서 소리의 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일부 평자는 "남자 명창은 임방울, 여자 명창은 안향련"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안향련을 연구한 경기대 국문과 김헌선 교수는 "예술가는 적당히 불우해야 한다. 타고난 조건이 그러할 수도 있고,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해서 갈 수도 있다. 사치와 향락, 그리고 돈에 안주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기질을 알아주는
남자를 만나서 마음 속 깊이 사랑을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안향련의 판소리 예술이 훌륭했던 것은 그러한 불행한 조건을 서슴지 않고 받아들여 예술을 위해 통째로 바쳤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판소리하는 분들은 흔히 '심청가에 휘말리면 죽는다'고 한다. 안향련은 처절한 심청가를 기가 막히게 뽑아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받은 좌절과 슬픔이 한이 되어 일찍 생을 마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