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遊桃源圖
안견
夢遊桃源圖
화가 | 안견(安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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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작품 설명: 1447년(세종 29) 작.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 38.7×106.5cm.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 소장
안평대군(安平大君)이 꿈에 도원에서 논 광경을 안견에게 말하여 그리게 한 것으로,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그 양식도 여러 가지 특색을 지니고 있다.
특징은 그림의 줄거리가 두루마리 그림의 통례와는 달리 왼편 하단부에서 오른편 상단부로 전개되고 있으며 왼편의 현실세계와 오른편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고, 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큰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왼편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보고 그렸으나 오른편의 도원세계는 부감법(俯瞰法)을 구사하였다.
안평대군의 발문을 보면, 안견은 이 그림을 3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하며, 거기에는 안평대군의 제서와 시 1수를 비롯해 당대 20여 명의 고사(高士)들이 쓴 20여 편의 찬문이 들어 있다. 그림과 그들의 시문은 현재 2개의 두루마리로 나뉘어 표구되어 있는데, 이들 시문은 저마다 친필로 되어 있어 그 내용의 문학적 성격은 물론, 서예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그림은 안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 후의 한국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2. 안평대군의 夢游桃源記
정묘년 (1447) 4월 20일 밤에 내가 막 베개를 베고 누우니, 정신이 갑자기 아득해지며 잠이 깊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문득 보니 박팽년과 함께 어느산 아래에 다다랐는데, 겹친 봉우리는 험준하고 깊은 골짜기는 그윽하였으며 복숭아꽃 핀 나무 수십 그루가 서 있었다.
오솔길이 숲 가장자리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서 머뭇거리고 있자니 시골 옷차림을 한 사람이 하나 나왔다. 그는 내게 공손히 인사를 하며 말하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를 들어서면 바로 도원입니다."하는 것이었다.
박팽년과 내가 말을 채찍질하여 찾아가 보니 절벽은 깎아지른 듯하고 수플은 빽빽하고 울창하였다. 또 시내가 굽이지고 길은 꼬불꼬불하여 마치 백 번이나 꺾여 나간 듯 곧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 골짝에 들어서자 골 안은 넓게 탁 트여 2,3 리는 될 듯했다. 사방엔 산들이 벽처럼 늘어섰고 구름과 안개는 가렸다가 피어오르는데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복숭아나무로 햇살에 얼비치어 노을인 양 자욱했다.
또 대나무 숲 속에 띠풀 집이 있는데 사립문은 반쯤 닫혀 있고 흙섬돌은 이미 무너져 있으며 닭이며 개,소와말 따위도 없었다. 앞 냇가에는 조각배가 있었지만 물결을 따라 흔들거릴 뿐이어서 그 정경의 쓸쓸함이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며 바라보다가 박팽년에게 말하였다. "바위에 나무얽고 골짝에 구멍 뚫어 집을 지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걸 말 한게 아니겠나? 참말 도원 골짝일세!" 그때 옆에 누군가 몇 사람이 뒤쪽에 서 있는 듯하여 돌아다 보니, 최항과 신숙주 등 평소 함께 시를 짓던 사람들이었다.
제각기 신발을 가다듬고서 언덕을 오르거니 내려가거니 하면서 두루 살펴보며 즐거워 하던 중에 홀연히 꿈에서 깨고 말았다. 아! 사방으로 통하는 큰 도시는 참으로 변화하니 이름난 고관대작이 노니는 곳이요. 골짝이 다하고 절벽이 깎아지른 곳은 바로 그윽하게 숨어사는 은자들의 거처다. 그러므로 몸에 화려한 관복을 걸친 자들의 자취는 깊은 산림에까지 미치지 아니하며, 돌과샘물 같은 자연에 정을 둔 사람들은 꿈에도 궁궐의 고대광실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성품이 고요한 이와 번잡한 을 좋아하는 이가 서로 길이 다른 까닭에 자연스러운 이치로서 그리 된 것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낮에 한 일이 밤에 꿈이 된다." 고 하였다. 나는 궁중에 몸을 다망 밤낮으로 하는 일이 많은데 어째서 그 꿈이 산림에까지 이르렀던가? 또 갔더라도 어떻게 도원까지 다다른 것인가? 또 나는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하필이면 도원에서 놀며 이 몇몇 사람들과만 함께하게 된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내 성격이 고요하고 외진 곳을 좋아하여 평소에 자연을 그리는 마음이 있으며, 그 몇 사람과 특히 두텁게 사귀었던 까닭으로 그렇게 된 것이리라.
그리하여 안견에게 명하여 내 꿈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다만 옛날부터 일러오는 도원이라는 곳은 내가 알지 못하니, 이 그림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보는 사람들이 옛그림을 구해서 내 꿈과 비교 해 본다면 반드시 무어라고 할 말이 있으리라. 꿈꾼 지 사흘 째 되는 날, 그림이 다 이루어졌으므로 비해당의 매죽헌에서 쓴다.
천하의 풍류가가 꿈에 도원에서 논 광경을 삼절도 모자라 쌍삼절이라 일컫는 그도 그려낼 수 없어 지곡사람 가도에게 그림으로 부탁하였네 그야말로 꿈 속 이야기를 두루마리 한폭에 그리자니 꼬박 3일이 지나서야 거기에 친히 제서를 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3년 후 감회에 다시젖어 제시하나 덧붙였네
世間何處夢桃源 이 세상 어느 곳이 꿈에본 도원인가
野服山冠尙宛然 시골사람(隱者)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著畵看來定好事 그림 그려 두고 보니 참으로 좋을씨고
自多千載擬相傳 여러 천년 전해지면 오죽 좋을까
(後三年正月一夜) 옛 꿈후 삼년지난 정월 어느 밤에
在致知亭因故有作 淸之 치지정에서 마침 종이가 있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