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書藝畵鑑賞

운룡도

水西散仁 2013. 1. 9. 09:38

작자 미상 "운룡도" - 용이 여의주를 얻듯 비상하라

▲ 작자 미상 ‘운룡도’ 종이에 색. 103×61.5㎝. 삼성리움미술관

새날이 밝았다. 임진(壬辰)년 아침이 열렸다. 새로운 시작이다. 같은 해라도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르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임진년은 흑룡(黑龍)의 해다. 용의 몸이 검어서 흑룡이 아니다. 임진(壬辰)의 천간(天干)이 되는 임(壬)이 오행(五行)상으로 물(水)을 뜻하는 북방(北方)을 가리키는데 북방의 색이 검은색(黑)이기 때문에 흑룡이라 한다.

드디어 용이 물을 만났다. 쫄쫄쫄 흐르는 시냇물이 아니라 큰물을 만났다. 용이 승천하기 위해서는 큰물이 필요하다. 임(壬)은 물 중에서도 큰물이다. 큰물을 만나지 못해 잠룡(潛龍)인 채 때를 기다리고 있던 용이 큰물을 만났으니 드디어 물살을 가르고 승천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 아침에 당신은 용처럼 비상하는 꿈을 꾸며 자신을 위한 용비어천가를 부르라. 새해 아침은 오직 당신만을 위해 문이 열렸으니.

지도자의 최고 덕목은 조화로움

‘운룡도(雲龍圖)’는 검은 구름 속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그린 작품이다. 용은 구름을 휘감은 채 용틀임을 하면서 화려하게 변신한 자유로움을 마음껏 즐기는 중이다. 걸림 없는 하늘을 무대 삼아 힘차게 승천한다.

비속(卑俗)의 껍질을 벗고 단박에 신령스러운 영물(靈物)로 부활한 용이 여의주를 들고 마음껏 조화를 부리고 있다. 화공은 용의 늠름한 몸체가 더욱 눈부시도록 청적황백흑(靑赤黃白黑)의 오방색(五方色)으로 단장을 했다. 용은 우주를 가득 채운 색채에서 에너지를 받아 자유자재한 능력을 과시한다.

‘운룡도’는 용의 해에만 그리는 특별한 그림이 아니다. 용의 영험한 힘을 빌려 사악한 액을 물리치려는 의도로 정초에 세화(歲畵)로 많이 그렸다. 뿐만 아니라 사신도(四神圖), 왕관, 향로, 제기, 기와, 해시계, 나침반, 칼, 범종, 군기(軍旗), 의장기, 도자기 등 다양한 용구에 용의 형상을 활용했다.

기원전 58년에 부여의 해모수가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내려와서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을 시초로 우리 민족의 삶과 신화 속에는 언제든지 용이 있었다. 박혁거세의 왕비는 계룡(鷄龍)의 딸이며, 석탈해는 용성국 왕의 아들이다.

백제 무왕은 지룡(池龍)의 아들이며, 견훤의 출생도 용과 관련되어 있다. 문무왕은 사후에 호국룡(護國龍)이 되었고, 왕건의 할아버지는 용녀와 결혼했다. 불교에서도 용은 호법신(護法神)·호국신(護國神)으로 환영받아 건축·조각·공예·불화에 끊임없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민간신앙에서 용은 용왕굿이나 용왕제, 풍어제나 기우제를 통해 사람들 속으로 강림한다. 농경민족에게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면 타들어가는 가뭄에 비를 불러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살리는 용을 숭배하고 섬긴 이유가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용은 실재하지 않는다. 상상의 동물이다. 십이지(十二支) 중 유일하게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동물이다. 사람들은 상상력으로 용을 만들면서 다른 짐승들의 장점만을 취하여 ‘파워 종결자’를 탄생시켰다. 용은 아홉 가지 동물의 특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머리는 낙타(駝), 뿔은 사슴(鹿), 눈은 토끼(兎), 귀는 소(牛), 목덜미는 뱀(蛇), 배는 큰 조개(蜃), 비늘은 잉어(鯉), 발톱은 매(鷹), 주먹은 호랑이(虎)와 비슷하다. 각 부족 간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합체(合體)’로서의 용이 탄생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용은 ‘파워 종결자’답게 탄생하자마자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봉황(鳳), 기린(麟), 거북(龜)과 더불어 사령(四靈)의 반열에 올랐고 최고의 지배자인 왕에 비유되었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 왕의 자리는 용상(龍床), 임금의 옷은 용포(龍袍), 용위, 용거, 용주, 용루로 격을 달리했다.

여러 짐승들의 장점만을 취해 탄생한 용의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로움이다. 용에게 조화로움은 외모와 맡은 역할 양쪽에서 모두 중요한 덕목이다. 왕이나 권력자들이 만백성이 경외하는 용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욕심낸 것은 당연하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만큼 용이 가진 신(神)적인 권위를 가져보겠다는 뜻이다. 동질감을 악용하여 권력을 잡은 뒤 다른 생명체들을 괴롭힐 때 우리는 그를 지도자가 아닌 독재자라 부른다. 독재자의 말로가 어떤지는 세계 역사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거창하게 세계사까지 갈 필요도 없다. 작은 커뮤니티의 대표가 그렇고 한 집안의 가장이 그렇다. 권위가 사라지고 권위의식만 남은 서글픈 초상화를 우리는 주변에서 언제든지 발견할 수 있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 용이 되는 잉어처럼

신화와 전설과 설화의 지존으로 등극한 용도 한때는 이름 없는 물고기였다. 자수성가하여 하늘과 땅을 자유자재로 휘젓고 다니는 거물이 되기까지 이무기라고 손가락질 당하며 잠룡으로 살았다. 그래서 나오게 된 이야기가 ‘등용문(登龍門)’ 신화다. 이야기는 중국 황하 상류에 사는 잉어에서 비롯된다. 곤륜산에서 발원한 물이 적석산을 통과하면 용문폭포에 이른다.

복숭아꽃이 필 무렵 용문폭포 밑에는 수천만 마리의 잉어가 모여서 폭포 위로 뛰어오른다. 불가능을 향해 몸을 던지는 물고기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의 모습을 단순히 물고기의 회귀본능으로 치부해 버리면 과학상식이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엮어 내면 예술이 된다. 잉어의 회귀본능을 백과사전식의 정보제공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그림이 ‘약리도(躍鯉圖·잉어가 뛰어오르는 그림)’와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그림)’이다.

날개 없는 물고기가 오로지 자신의 ‘점프’ 실력 하나만 믿고 천 길 낭떠러지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몸짓이 얼마나 지난하고 불가능해 보이는가를. 누가 저 평범한 잉어가 용이 될 수 있으리라 예측하겠는가. 경쟁률이 치열한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의 심정이 그와 같을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물려받은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잡대(지방의 잡다한 대학)’라고 무시 당하는 지방대 출신이라 학연(學緣)이나 인맥이 받쳐주는 것도 아니다. 그 어려운 장애를 전부 극복하고 목적지에 도달했으니 그의 성공스토리는 용문을 뛰어올라 용이 된 잉어에 비교될 만하다. 그래서 ‘등용문’이라는 말은 크게 출세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당신은 어떤 여의주를 물고 있는가

등용에 성공한 용이 승천하기 위해서는 여의주가 필요하다. 여의주가 없으면 용은 다시 도룡뇽이나 뱀, 악어 같은 범속한 생물로 추락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여의주가 구슬처럼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운룡도’에서 복주머니처럼 보이는 붉은색 물건이 여의주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물고기나 이무기처럼 비루한 삶을 살다 용처럼 승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여의주가 있어야 한다.

그 여의주는 새로운 계획일 수도 있고 야망일 수도 있고 열정일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고 자비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어떤 빛깔의 여의주든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여의주는 남에게서 뺏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마치 조개가 돌멩이를 삼켜 진주를 만들 듯 자기만의 힘으로 움켜쥐어야 한다. 올해 당신은 어떤 여의주를 물고 비상하려는가. 용이 영묘(靈妙)한 구슬을 얻어 넓은 창공을 비상하듯 당신의 1년도 그런 해가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