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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清. 1644-1911) 왕원기, (王原祁, 1642-1715) 방 왕몽 하일산거도(仿王蒙夏日山居圖) 족자(軸), 종이에 수묵담채, 96.5 x 49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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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원기의 자는 무경(茂京), 호는 녹대(麓臺)로 강소성 태창(太倉) 사람이며 청대 “사왕(四王)”의 우두머리 왕시민(王時敏, 1592-1680)의 손자이다. 천부적인 재능에 노력을 보태어 28세에 향시(鄕試)에 급제하여 거인(擧人)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강희(康熙) 39년(1700)에 ‘우춘방우중윤(右春坊右中允)’에 임명되어 내부(內府, 청 궁정)에서 서화(書畫)를 감정하는 일을 하고, 훗날 ‘직남서방(直南書房)’에 들어가 ‘어전염한(御前染翰)’이 되어 전문적으로 황제를 위해서 그림을 그렸었으며, ”畫圖留與人看”이란 구절을 하사받고 이를 인장에 새겨 그림에 자주 사용하였다. 강희(康熙)44년(1705)에는 어명을 받들어 《패문제서화보(佩文齋書畫譜)》를 편찬하였다. 왕원기는 화론서인 《녹대제화고(麓臺題畫稿)》와 《우창만필(雨窗漫筆)》을 남겼는데 책 속의 문장을 통해 구도와 필묵, 채색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중요한 청대의 회화 이론들이 여기에 실려있다.
이 그림은 세밀하고 구성이 매우 복잡하면서도 짜임새가 있는데 원대(元代) 왕몽(王蒙, 1308-1385)의 작품과 매우 유사하다. 전체적으로 바위들이 층층히 쌓여 큰 산을 이루고, 필묵이 반복되고 융합되면서 색이 더욱 진해지고 있다. 먼저 담묵으로 윤곽을 그린 다음 다시 칠하고 또 건필로 빡빡한 붓질을 한 후, 다시 진한 먹으로 강조 효과를 주고 있다. 그림 상단의 하늘만 여백으로 남겨두고 그 외에는 모두 숲과 산봉우리, 푸르고 무성한 나무들로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본원 소장품인 왕몽의 ”단대춘효(丹臺春曉)”는 일찌기 왕시민(王時敏)이 소장했던 작품으로 단대춘효도의 특징적인 명암과 허실의 강렬한 대비가 이 작품 중에서도 보이는데 이와 관련하여 왕원기의 《녹대제화고(麓臺題畫稿)》에는 “먹은 반드시 담담하게 써야하며 담담함 중의 짙음을 추구해야 한다(墨須用淡, 要求淡裏之濃)”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왕원기의 작품은 항상 퇴적되고 또는 교차하여 쌓이는 평면체들로 가득한데 그 전후 배열 순서는 송대와 원대 그림 중의 수직적인 연장 방식과 다르다. 산석과 경물이 오고 가는 도약으로 연결되고, 화면은 공간의 호응으로 동세가 형성된다. 이 그림은 왕원기의 나이 53세 때 그려진 것으로 왕몽을 방(仿)한 그림 중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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